80년 모은 '보물' 곰팡이에 전멸…서울대 연구실 대참사 전말

김홍범 2023. 2. 1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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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생명과학부가 70~80년간 모은 동물 표본 수백점이 2021년 표본실에 창궐한 곰팡이 때문에 모조리 폐기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임영운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이 사건을 다룬 ‘표본실 진균(곰팡이) 대재앙:수많은 동물의 흔적을 지운 단 일주일’이란 논문을 지난해 12월 미생물학회지에 수록했다.

지난 2021년 8월 서울대 24동 지하 표본실을 덮은 진균(곰팡이). 사진 서울대 진균생태계통학 연구실


19일 임 교수와 서울대 진균생태계통학 연구실 등에 따르면 표본들은 2007년 서울대 자연과학대가 위치한 24동의 지하실로 옮겨진 후 담당 교수를 통해 관리돼왔다. 그러나 2021년 2월 해당 교수가 은퇴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교수의 은퇴로 연구원들까지 떠나 아무도 온도조절기 이상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상 섭씨 23도, 습도 약 20%로 유지됐던 표본실 온·습도는 2021년 8월 10일 발견 당시엔 섭씨 30도, 습도 70%를 넘어섰다. 높은 온·습도 탓에 방치된 표본실에는 곰팡이가 창궐했다. 임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표본실의 문을 열자 곰팡이 냄새가 강하게 났다”며 “대형 박제들과 플라스틱병들이 층층이 있었는데 모두 검고 흰 곰팡이가 덮인 모습이었다. 습도가 높아 축축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난 2021년 8월 서울대 24동 지하 표본실에선 벽과 바닥, 플라스틱 용기 등에서도 곰팡이가 발견됐다. 사진 서울대 진균생태계통학 연구실


표본실엔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지난 70~80년 간 모은 동물 수백점의 박제 등 표본이 있었다. 특히 연구 가치가 큰 천연기념물 따오기 등 멸종위기종의 박제도 있었는데, 멸종위기종의 경우 우연히 동물의 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진 새 표본을 만들기 어렵다.

그러나 결국 학교 측은 이 표본들을 전량 폐기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곰팡이는 닦아 낼 수 있지만 곰팡이가 어디까지 침투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논문에 참여한 김지선 연구원은 “귤의 경우에도 일부분만 곰팡이가 보여도 버려야 하는 것처럼, 곰팡이는 한 곳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피면 실제로는 전체적으로 퍼져있다고 봐야 한다. 표본실 전체가 곰팡이에 덮여 있었던 만큼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모두 처분했다”고 전했다.

또 진균류는 호흡을 통해 폐에 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 임 교수의 연구팀은 시료 채취 후 전문 업체를 불러 표본실을 청소해야 했다. 임 교수는 “동물 표본은 중요한 기록 자료로 추후에 한반도 생물 주권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고, 유전 공학이 발달하면서 공룡화석에서 DNA를 뽑아 쓰듯이 나중에는 이 표본 속 DNA가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며 “공룡화석은 귀하게 생각하면서 표본은 중시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논문을 썼다”고 전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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