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모은 '보물' 곰팡이에 전멸…서울대 연구실 대참사 전말
서울대 생명과학부가 70~80년간 모은 동물 표본 수백점이 2021년 표본실에 창궐한 곰팡이 때문에 모조리 폐기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임영운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이 사건을 다룬 ‘표본실 진균(곰팡이) 대재앙:수많은 동물의 흔적을 지운 단 일주일’이란 논문을 지난해 12월 미생물학회지에 수록했다.
19일 임 교수와 서울대 진균생태계통학 연구실 등에 따르면 표본들은 2007년 서울대 자연과학대가 위치한 24동의 지하실로 옮겨진 후 담당 교수를 통해 관리돼왔다. 그러나 2021년 2월 해당 교수가 은퇴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교수의 은퇴로 연구원들까지 떠나 아무도 온도조절기 이상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상 섭씨 23도, 습도 약 20%로 유지됐던 표본실 온·습도는 2021년 8월 10일 발견 당시엔 섭씨 30도, 습도 70%를 넘어섰다. 높은 온·습도 탓에 방치된 표본실에는 곰팡이가 창궐했다. 임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표본실의 문을 열자 곰팡이 냄새가 강하게 났다”며 “대형 박제들과 플라스틱병들이 층층이 있었는데 모두 검고 흰 곰팡이가 덮인 모습이었다. 습도가 높아 축축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표본실엔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지난 70~80년 간 모은 동물 수백점의 박제 등 표본이 있었다. 특히 연구 가치가 큰 천연기념물 따오기 등 멸종위기종의 박제도 있었는데, 멸종위기종의 경우 우연히 동물의 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진 새 표본을 만들기 어렵다.
그러나 결국 학교 측은 이 표본들을 전량 폐기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곰팡이는 닦아 낼 수 있지만 곰팡이가 어디까지 침투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논문에 참여한 김지선 연구원은 “귤의 경우에도 일부분만 곰팡이가 보여도 버려야 하는 것처럼, 곰팡이는 한 곳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피면 실제로는 전체적으로 퍼져있다고 봐야 한다. 표본실 전체가 곰팡이에 덮여 있었던 만큼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모두 처분했다”고 전했다.
또 진균류는 호흡을 통해 폐에 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 임 교수의 연구팀은 시료 채취 후 전문 업체를 불러 표본실을 청소해야 했다. 임 교수는 “동물 표본은 중요한 기록 자료로 추후에 한반도 생물 주권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고, 유전 공학이 발달하면서 공룡화석에서 DNA를 뽑아 쓰듯이 나중에는 이 표본 속 DNA가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며 “공룡화석은 귀하게 생각하면서 표본은 중시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논문을 썼다”고 전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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