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무명’ 묘역서 참배하는 대구지하철 유족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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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핏줄이 내밖에 없어가 매년 내가 옵니다. 거서 얼매나 고생이 많겠노. 20년 만에 제일 편안하게 추모식하네. 예전엔 이 동네 주민들이 밀가루에 계란까지 쌓아 놓고 들오도 못하게 했다 아입니까. 그 설움 말도 몬 합니다."
추모식이 열린 시민안전테마파크는 대구지하철참사를 계기로 지난 2008년 국·시비 200억원과 국민 성금 50억원을 들여 만들어졌지만, 상인들 반발로 추모의 뜻이 담긴 이름을 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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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핏줄이 내밖에 없어가 매년 내가 옵니다. 거서 얼매나 고생이 많겠노. 20년 만에 제일 편안하게 추모식하네. 예전엔 이 동네 주민들이 밀가루에 계란까지 쌓아 놓고 들오도 못하게 했다 아입니까. 그 설움 말도 몬 합니다.”
김정강(81)씨는 20년 전 잃은 두 조카딸의 묘역을 바라보며 지팡이를 짚고 서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난 18일 오전 9시58분, 대구시 동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오전 9시58분은 2003년 참사가 발생한 시각이다.
김씨의 안도가 무색하게 추모식 시작 시각에 맞춰 어김없이 주변 상인들이 맞불 집회를 시작했다. 유족들은 매년 인근 상인들의 반대에 위령탑 참배조차 어려웠다. 2019년에서야 이곳에서 추모식을 열었지만, 매년 팔공산 동화지구 상가번영회와 대치했다. 경찰은 이날도 경력 160여명을 배치해 만일의 상황을 대비했다.
추모식은 상인들이 틀어 놓은 트로트 음악과 섞인 채 진행됐다. 상가번영회 쪽은 “청정지역 동화지구에 추모행사 웬말이냐”고 소리쳤다. 한 상인은 “저 행사 진행 못 하도록 소리를 더 높이자”며 노골적으로 추모행사를 방해했다. 이들은 “유족과 싸움 붙여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대구시는 각성하라”며 대구시에 책임을 묻기도 했다. 추모사업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트램 설치 등 관광 사업을 하기로 한 협의를 지켜달라는 주장이다.
추모식이 열린 시민안전테마파크는 대구지하철참사를 계기로 지난 2008년 국·시비 200억원과 국민 성금 50억원을 들여 만들어졌지만, 상인들 반발로 추모의 뜻이 담긴 이름을 담지 못했다. 테마파크에는 희생자 192명의 이름이 적힌 위령탑과 희생자 32명의 주검을 수목장한 묘역이 있다. 하지만 위령탑은 ‘안전조형물’로 불리고, 묘역은 이름도 없다. 유족들은 시민안전테마파크 명칭에 ‘2.18기념공원’을 함께 쓰고, 위령탑과 묘역에 참사의 기억을 담은 이름을 붙여주길 바란다. 권영진 전 대구시장 시절 상인회 쪽과 협상 시도가 있었지만 흐지부지됐다.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는 추도사에서 “20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는 재난의 예방, 대응, 회복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기를 관리할 시스템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정부도 없었다. 이 모습이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태원 참사에서도 되풀이되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놀랍다. 이 참사를 사회적으로 기억해야 피해자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참사 기억과 마주하고 추모탑과 추모공원을 조성하려는 이유”라고 말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전동차에서 방화로 인한 불이나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참사 뒤 불에 잘 타는 재질로 만들어졌던 전동차 소재는 모두 불연성 소재로 바뀌었다. 방화범과 기관사는 형사 처벌을 받았지만, 지하철 운영 주체인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현 대구교통공사)는 처벌받지 않았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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