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다이어리] 밸런타인데이 단상

베이징=김현정 2023. 2.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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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칭런제(情人節)라 부르는 밸런타인데이(2월14일)가 지난 뒤, 베이징을 비롯한 전역에서는 '밸런타인데이 쓰레기 수집가'가 화제가 됐다.

밸런타인데이를 고백의 기회로 삼았다가 실패한 수많은 남성들이나 상대방의 마음을 거절한 여성들이 꽃다발과 선물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으니, 좋은 몫(?)만 잘 지키고 있으면 값나가는 것들을 구할 수 있다는 일종의 노하우가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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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중국에서 칭런제(情人節)라 부르는 밸런타인데이(2월14일)가 지난 뒤, 베이징을 비롯한 전역에서는 '밸런타인데이 쓰레기 수집가'가 화제가 됐다. 여성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 이날은 남자가 여자에게 장미꽃과 함께 선물을 주며 마음을 고백하는 날이다. 고백하는 날에 쓰레기 수집이라니. 무슨 생뚱맞은 조합인가 살펴보니, 사정은 이랬다.

밸런타인데이를 고백의 기회로 삼았다가 실패한 수많은 남성들이나 상대방의 마음을 거절한 여성들이 꽃다발과 선물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으니, 좋은 몫(?)만 잘 지키고 있으면 값나가는 것들을 구할 수 있다는 일종의 노하우가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도는 버려진 꽃다발 사진. (출처=웨이보)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도는 버려진 꽃다발 사진. (출처=웨이보)

진위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쓰레기통이나 길 한 쪽에 버려진 꽃다발 사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왔다. 아이폰이나 붉은 봉투에 든 현금에 금팔찌까지, 꽃 사이에 숨겨진 선물을 주웠다는 경험담도 함께다. 수집가가 되는 방법에 대한 안내도 제법 상세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된 글에 따르면 수집에 가장 좋은 시간은 오후 8시 정도이고, 핫스팟으로 베이징의 싼리툰, 청두의 IFS, 상하이의 IFS 등 고급 레스토랑과 상점 밀집 지역이 꼽혔다. 제보에 따르면 허베이성 지방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쓰레기에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으므로 쓰레기를 뒤지지 말라'는 내용의 안내 메시지를 배포하기도 했으며, 현지 매체인 양쯔완바오의 한 기자는 실제로 쓰레기통을 뒤져보는 취재를 통해 반지 한 쌍과 목걸이를 주웠다며 이를 기사로 쓰기도 했다.

젊은 세대들은 '쓰레기 수집가'를 점차 우스꽝스럽게 과장하며, SNS상의 놀이로 일을 키웠다. "누군가에게 도달하지 못한 로맨스가 나에게로 와서 선물이 됐다", "수치심만 내려놓으면 당신도 보물을 찾을 수 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혹자는 "밸런타인데이가 부유한 커플들에게만 행복한 시간이 아니고, 수집에 동참한 모두에게도 행복한 시간이 됐다"고 적었다. 이렇게 웃어넘기는 태도 이면에는 경기 둔화와 청년실업 직격탄을 맞은 데 대한 자조와 비관도 엿보였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졸업식 축하 꽃다발이 중고거래 앱에 쏟아졌다는 뉴스가 나온다. 꽃값이 오르고 밸런타인데이가 겹쳐 수요가 늘면서 한 다발 가격이 5만~7만원에 육박하자, 사진만 찍고 되파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닉'에 따르면 밸런타인데이 데이트 비용이 가장 비싼 도시 1위는 중국 상하이(655달러, 약 84만원)라고 한다. 2위인 미국 뉴욕도 600달러대에 달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바레인 마나마, 러시아 모스크바, 프랑스 파리,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역시 500달러 후반대를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황제의 허락 없이도 서로 사랑하는 젊은 연인을 결혼시켜준 죄로 순교한 사제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밸런타인데이. 이제는 연인 간의 사랑뿐 아니라 누군가의 처지까지 확인시켜주는 날이 된 것 같아 씁쓸하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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