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수상한 전복 선물…선관위 완도에 조사팀 급파, 결말은
지난해 9월 대구 지역의 농협 조합장 A씨는 조합 직원 120여명의 집으로 개당 4만5000원인 전복 선물세트를 보냈다. 올해 3월 열리는 차기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추석을 맞아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차원이었다.
이를 제보받은 대구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조합 직원에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준 것이냐”고 캐물었지만, 이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선관위는 전복 양식 재배가 활발한 전남 완도로 조사팀을 급파했다. 며칠 동안 고생한 끝에 결국 주문자가 A씨임을 확인한 선관위는 선물 수령자 중에서도 투표권이 있는 조합원 8명과 그 가족 18명을 확인했다. 선관위는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투표권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위탁선거법 위반)로 A를 지난 1월 말 고발했다.
다음달 8일 전국 1346개 농협·수협·산림조합의 조합장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투표소만 3551개에 달하는 전국 선거다. 4년 임기의 조합장을 동시에 뽑는 전국 선거는 2015과 2019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조합장은 2억원 정도의 고액 연봉을 받고 운전 기사가 딸린 전용 차량까지 제공받을뿐 아니라 수많은 조합 직원의 인사권까지 휘두르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그렇다 보니 금품을 뿌리며 조합원에게 표를 호소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하지만 이는 ‘선거를 앞두고 조합장 임기 만료일 180일 전(지난해 9월 21일)부터 선거일(올해 3월 8일)까지 금품을 제공하면 안 된다’는 위탁선거법에 반한다. 금액과 관련 없이 이같은 기부행위를 하면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2005년부터 조합장 선거를 위탁받아 관리해온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도 조합장 후보들의 위법행위를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연·학연으로 얽힌 지역에서 치러지는 선거인 탓에 조합장 선거의 부정 문제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16일 기준으로 이번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선관위가 고발, 수사 의뢰, 경고 조치한 경우는 총 149건이다. 지난번 선거 때 같은 기간 223건이 적발된 것과 비교해선 33% 감소한 수치다. 선관위 관계자는 “일반 공직선거와 달리 조합장 선거는 후보자와 조합원 간의 친분이 두터워 은밀하게 돈과 현물이 오가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적발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전남의 한 조합장 후보는 지난해 9월 조합원 215명에게 3만원가량의 굴비 세트(총 650만원)를 보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 조합원의 집을 방문해 “도와달라”며 현금 100만원을 건넸다. “으레 주는 추석 선물인 줄 알았는데 받아보니 자꾸 (선물 준 사람이) 생각이 나더라”는 게 수령자들의 말이다.
부산의 한 조합장 후보는 지난해 9월 추석 선물을 빙자해 어묵 선물세트(총 486만원)를 조합원 162명의 집으로 보냈다. 그는 이번 설에는 조합원 288명에게 유과 선물세트(총 518만원)를 일일이 택배로 부쳤다. 지난해 틈틈이 조합원들에게 ‘명품 구포 국수세트’도 보냈다. 지역 특산물을 골라 선물해 은근히 표심을 자극한 셈이다. 하지만 선관위는 두 사례 모두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고발했다.
기부행위 위반 사례가 잘 줄어들지 않자 선관위는 17일부터 특별단속에 들어갔다. ▶‘돈 선거’ 발생이 우려되는 특별관리지역에 단속 전문 인력을 상주시키고 ▶휴일·야간 등 취약 시간에도 상시 신고 체계를 갖추도록 정비하는 등의 조치에 나선 것이다. 박찬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이날 17개 시·도선관위에 “이번 조합장 선거를 통해 고질적인 돈 선거 관행을 타파하고 깨끗한 선거 질서가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모든 단속 역량을 집중해달라”고 당부했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부터 신고 포상금도 최대 3억원(이전에는 1억원)으로 높였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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