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위 추격도 버거운데 2위 수성 비상…세계 파운드리 ‘4强 구도’ 재편되나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2. 1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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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1위인 대만의 TSMC와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에 이어 일본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TSMC를 제외하고는 파편화된(fragmented) 시장 구조를 보이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2위 수성을 위한 대응 전략도 짜야 할 판이다.

‘반도체 대국’ 부활 노리는 日

실현 가능성 회의적 시선도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1강(TSMC) 구도에서 다자간 경쟁 체제로 변화할 조짐이 나타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TSMC는 점유율 59%로 압도적 1위다. 점유율 12%의 삼성전자가 2위다. 3위 대만 UMC(7%), 4위 미국 글로벌파운드리(6%) 순이다.

파운드리 산업 지형도가 요동치는 것은 최근 미국 인텔에 이어 일본까지 사활을 건 ‘나노미터(㎚·1나노=10억분의 1m)’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나노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의미하는데, 선폭이 좁을수록 한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미세공정을 고도화할수록 팹(반도체 제조공장) 건설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점이다.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장비는 대당 수천억원을 호가한다. 성능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기 위해서는 나노 경쟁에서 승기를 잡는 것이 필수다.

최근 일본 정부는 기업 ‘연합군’과 함께 민관 협력 체제를 꾸려 과거 1980년대 누렸던 반도체 대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단단히 벼르는 중이다. 그 일환으로 설립된 회사가 일본의 ‘라피더스’다. 라피더스는 토요타와 소니, 소프트뱅크, 키옥시아, NTT,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8개 기업이 뭉친 반도체 회사다. 일본 기업들이 73억엔(약 710억원)을 출자했고 일본 정부가 700억엔(약 6800억원)을 투자했다.

일본이 구상하는 반도체 전략은 우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라피더스는 삼성처럼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등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반도체(IDM) 모델을 지향하지 않는다. 시스템 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에 특화한 전문주의 조직으로 정체성(identity)을 정하고 역량을 쏟는다는 그림이다. 라피더스가 공언한 계획은 매우 공세적이다. 외신에 따르면, 라피더스는 2027년 2㎚ 이하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2나노 양산을 위해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2025년 상반기 시제품 라인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라피더스의 이런 그림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회의론의 근거는 이렇다. 파운드리 세계 1, 2위인 TSMC와 삼성전자조차도 아직 3나노 양산 수율(정상품 비율)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두 회사 모두 3나노 양산을 위한 피 말리는 수율 경쟁을 벌인다. 3나노 공정의 경우 삼성전자가 지난해 세계에서 처음 양산을 시작했고 TSMC는 지난해 말 양산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반도체 등 대부분 기술은 누적적인(cumulative) 발전 경로를 거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사실상 세계 반도체 시장의 변방으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석박사급 고급 인력 공급 시스템이 와해됐고 반도체 밸류체인도 단절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랬던 일본이 불과 2년 뒤 2나노 공정에서 시제품을 만들고 이어 양산에 나선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해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주역들이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日, 美·대만과 협력 관계 강화

삼성 파운드리, 내우외환 직면

그럼에도 삼성전자를 긴장시키는 대목이 있다. 일본은 직접적인 경쟁자라 할 수 있는 미국, 대만과 밀월 관계를 강화하는 등 ‘make or buy’ 즉 내재화와 외재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스템 반도체의 핵심 역량인 설계 역량은 내재화를 지향하되, 핵심 역량 주변부에서는 전략적 협업 관계에 기반한 외재화를 추구함으로써 기술 개발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 TSMC는 현재 일본 소니그룹, 덴소와 함께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총 투자 규모는 86억달러(약 10조6880억원)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이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4760억엔(약 4조5824억원)을 지원한다. TSMC는 일본에 두 번째 반도체 공장 건설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라피더스는 미국 IBM과도 상호 기술 협약을 맺었다. IBM은 2021년 2나노 반도체 시제품 생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라피더스는 미국에 직원을 파견하고 관련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사정이 이렇자 파운드리 세계 2위 삼성전자가 ‘내우외환’의 복합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높다.

무엇보다 학계에서는 삼성이 내부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핵심 역량(core capabilities)’의 ‘핵심 경직성(core rigidities)’으로의 돌변을 꼽는다(Strategic Management Journal, 1992년). 이는 쉽게 말해, 작금의 평판(reputation)과 지위(status)를 가져다준 핵심 역량이 기술 환경이 돌변한 상황에서는 전략 유연성을 가로막는 경직성의 원인이 된다는 의미다.

실제 메모리와 비메모리에서 요구되는 혁신 역량이 서로 다르다는 점은 삼성을 괴롭히는 딜레마다. 삼성은 메모리 시장에서 익숙한 혁신에 몰두하며 탁월한 성과를 거둬왔다. 표준화한 대량 생산 체제를 기반으로 한 메모리 산업에서는 중앙 집중적인 개발 방식이 요구된다. 반면, 비메모리 산업에서는 반도체 밑그림을 설계하고 이를 고객 요구에 맞춰 양산 가능하도록 세부적인 공정 프로세스를 재규정하는 등 고도의 설계 역량이 요구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반도체 산업 환경은 점차 삼성 같은 종합반도체 회사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반도체가 적용되는 각종 IT 기기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표준화된 생산능력으로는 특정 용도와 목적에 맞게 특화한 수요에 대응하기 힘들어졌다. 가령, 자율주행이나 인공지능(AI) 등의 영역에 쓰이는 반도체는 설계와 디자인이 모두 제각각이고 설계와 공정의 난도가 무척 높다. 이에 따라 반도체 산업은 종합반도체 중심 IDM 모델에서 팹리스(fabless) 또는 팹라이트(fablite) 모델로 점차 변모 중이다.

외부적으로도 삼성전자를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산적해 있다. 특히 국가 전략 기술과 정치 경제의 동조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개별 기업 역량만으로 반도체 산업의 대응 전략을 짜는 것이 매우 힘들어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는 주문 생산을 하므로 주문하는 기업이 있어야 생산을 할 수 있는데 애플, 아마존, 엔비디아 등 미국 글로벌 기업은 ‘슈퍼 을’ TSMC의 눈치를 보고 있다”며 “이런 역학 관계를 기업의 역량만으로 조정할 수 없다. 정치 영역에서 풀어주는 논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연구원은 “미국은 반도체 기업에 500억달러(약 62조원) 이상 보조금 혜택이 포함된 반도체법을 시행하고 일본도 핵심 소재와 제조 장비 분야에서는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며 “미국의 역량이 올라오는 2025년에는 대만-한국-미국, 2027년에는 일본을 포함해 파운드리 4강 구도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6호 (2023.02.15~2023.02.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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