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갑’과 ‘을’ 판별하기

2023. 2. 1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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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의 쌍방을 표현하는 '갑'과 '을'을 빌려 권력 관계에서 강자를 '갑'이라 하고 그의 부당한 처사를 '갑질'이라 하는 것이 어느새 일상어가 됐다.

그런데 이 땅에 을은 넘쳐나는 반면 스스로 갑이라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고 자기가 갑질을 한다고 하는 사람은 아예 없다.

"겉으로는 그래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제가 을이랍니다. 요즘은 노동자·보좌진·대학원생·전도사가 갑이에요." 그러고는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경험담도 몇 개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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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철(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


계약서의 쌍방을 표현하는 ‘갑’과 ‘을’을 빌려 권력 관계에서 강자를 ‘갑’이라 하고 그의 부당한 처사를 ‘갑질’이라 하는 것이 어느새 일상어가 됐다. 그런데 이 땅에 을은 넘쳐나는 반면 스스로 갑이라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고 자기가 갑질을 한다고 하는 사람은 아예 없다. 그럼 어떻게 갑과 을을 판별할 수 있을까?

갑은 보통 자기가 갑인지 모르거나 잘 실감하지 못한다. 자신이 갑인지 모르니 당연히 자기의 갑질도 알지 못한다. 신문에 나오는 의도적이고 악독한 갑질도 있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갑질은 당하는 사람만 안다. 갑질한 사람이 순진한 얼굴로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노라 한다면 슬프게도 사실일 공산이 크다. 반면 을은 자신이 을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뿐 아니라 모든 순간에 유념한다. 유럽에서 만난 아프리카 친구는 백인 사회에서 살면서 자신의 피부색을 의식하지 않을 때가 단 한 순간도 없다고 말했다.

갑은 작은 손해에 매우 민감하다. 평소에는 자기가 갑인 줄도 모르지만 손해를 보면 자신의 억울함을 적극 표현한다. 급기야 자기가 을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재벌·국회의원·교수·목사에게 “당신이 갑”이라 하면 그중 태반은 대략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겉으로는 그래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제가 을이랍니다. 요즘은 노동자·보좌진·대학원생·전도사가 갑이에요.” 그러고는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경험담도 몇 개 읊는다. 그러나 진짜 을은 자신의 억울함을 함부로 토로하지 못한다. 갑질을 폭로할 때는 이미 갑을 관계를 청산하고 추운 벌판으로 나갈 결심을 한 뒤다.

자기 잘못에 둔감한 것도 갑의 특징이다. 내가 하는 큰 잘못은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을의 잘못은 반드시 바로잡으려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을이 똑같은 생각을 한다. 을은 자기가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늘 조심하지만, 갑의 잘못에 대해서는 충분히 분노하지 않는다. 남의 잘못에 신경 쓸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갑은 구체적 상황이나 눈앞에 있는 사람보다 법이나 규칙, 일관성을 더 중히 여기고 좋아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 ‘정상적’ ‘보편적’ ‘중립적’ 기준은 을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 당장 굶어 죽게 된 사람에게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라 하면 참 서러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서 “법대로 합시다”는 약자의 호소보다 강자의 으름장인 경우가 더 많다. 요즘 검찰이 좋은 예다.

더욱 불행하게도 시간은 보통 갑의 편이다. 갑은 시간을 질질 끌 여유가 있지만 을은 한시가 급하다. 을이 뱉은 거짓말은 금방 들통나지만 갑이 되풀이해서 오래오래 퍼뜨리는 가짜뉴스는 진짜가 된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을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해결할 시간이 없지만 갑은 끝까지 버티며 자기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 “끝내 진실이 밝혀진다”는 말은 멋있지만 을에게는 한가한 미신이다.

갑과 을을 관찰하고 그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갑질을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잠깐이라도 강자의 자리에 섰을 때 내가 갑인지 판별하지 않으면 어느새 갑질이 시작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집단이 갑의 태도를 체화하면 그 해악은 더 크고 위험해진다. 성경도 이런 상황을 경계한다. 하나님은 이집트 노예 출신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압제의 시절을 상기시키며 약자를 섬길 것을 요구하고, 권력으로 남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외치며 미래가 아닌 현재의 결단을 요구하고, 율법의 문자적 수호를 핑계로 눈앞의 약자를 외면하는 바리새인을 꾸짖으신다. 슬프게도 그 경고와 꾸짖음이 사회의 을이었다가 갑이 된 한국교회를 정통으로 향하고 있다.

손화철(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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