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진주성 함락 직전 마지막 음식…남편·자식 향한 절절한 마음
임진왜란과 진주비빔밥
전주와 진주, 비빔밥 원조는 어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비빔밥의 원조는 어디일까. 대부분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전북 전주를 꼽는다. 그래서 전주비빔밥은 우리에게 고유명사로 각인된 지 이미 오래다. 그렇지만 경남 진주에 가서 이렇게 말하면 이곳 사람들의 표정이 금세 굳어진다. 진주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장을 비빔밥의 탄생지로 알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그래서 비빔밥의 원조를 두고 전주와 진주 사람들이 서로 논쟁을 벌이면 쉽게 그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런 논쟁을 자주 경험했는데 어머니 고향이 전주이고, 아버지 고향이 진주 생활권에 속하는 산청이어서다.
내 아버지는 고향에 갈 때마다 진주 중앙시장 안에 있는 제일식당을 늘 찾았다. 이 식당은 시장 안에 있어 허름해도 진주비빔밥의 전통을 지닌 유명한 곳이다. 이 허름한 식당에 LG그룹 구자경 선대회장도 자주 들렸다. 그의 고향이 진주여서지만 이 식당 비빔밥이 그의 입맛을 사로잡아서다. 그런데 구씨 집안은 우리나라 재벌 중에서 입맛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LG그룹이 서울 테헤란로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운영했을 때 이 호텔 식당에서 전경련 회의가 열렸던 건 구씨 집안의 탁월한 미각 때문이다. 중앙시장 입구에도 천황식당이란 비빔밥 전문식당이 있는데, 여기는 박정희 대통령이 들려서 유명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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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민의 진주대첩 쾌거서 한몫
빨리 먹고 소화 잘되는 전투식량
병사들 먹기 쉽게 나물 숨 다 죽여
원기 채우려 육회 얹는 것도 특징
2차대첩서 패하며 6만여명 희생
400년 전 전투의 뜨거운 감동이…
」
전주비빔밥은 육회 대신 익힌 고기
진주비빔밥과 전주비빔밥의 차이는 언뜻 봐도 잘 드러난다. 가장 큰 차이는 비빔밥을 구성하는 나물 상태이다. 진주비빔밥은 나물을 삶고 나서 숨을 다 죽이는 데 반해 전주비빔밥은 나물을 삶았는데도 여전히 숨이 살아 있다. 진주비빔밥에서 나물의 숨이 죽은 건 나물을 무칠 때 많이 치대어 비벼서다. 그런 탓인지 진주비빔밥은 잘 치대지는 호박나물·숙주나물·고사리나물을 주로 사용한다. 이에 반해 전주비빔밥은 나물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래서 나물의 갖가지 색깔이 확연히 드러나 비빔밥 모양이 제법 화려하다. 이런 화려함이 미각에 앞서 우리 시각을 자극하는 요인이지 않을까.
진주비빔밥이 나물의 숨을 죽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진주대첩 때 병사들에게 제공되던 일종의 전투식량이어서다. 진주대첩은 한산도대첩, 행주산성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데 이 싸움에서 아군이 큰 승리를 거뒀다. 그런데 이 승리에 비빔밥이 한몫했다. 좋은 전투식량이 되려면 병사들이 빨리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소화도 잘돼야 한다. 진주비빔밥은 이런 요건을 갖추기 위해 나물의 숨을 최대한 죽였다. 여기에 육회를 얹은 건 잘 싸우도록 격려하기 위해서다. 한편 전주비빔밥은 육회 대신 익힌 쇠고기를 채 썰 듯 썰어서 놓는다. 지금은 진주비빔밥을 흉내 내선지 전주 돌솥비빔밥에는 육회를 얹는다.
진주대첩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해인 1592년 10월에 있었다.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은 3800명의 병사를 이끌고, 2만여 명의 일본군을 상대로 6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진주성을 방어했다. 의병장 곽재우와 최경회 군대는 진주성 바깥에서 일본군 배후를 공격해 아군의 공격력을 높였다. 한양이 함락되고 왕도 멀리 도망갔으니 항복을 권유했어도 김시민은 결연히 싸움을 택했다. 이 전투에서 진주목사 김시민은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는데 그의 명성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한동안 일본인에게 두려움의 상징이 되었다. 목사가 일본어 발음으로 ‘모쿠소(木曾)’인데 두렵다는 의미로 자리 잡아서다. 이 싸움의 승리로 호남의 곡창지대가 지켜졌다.
그런데 진주성 싸움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1년도 채 안 돼 1593년 6월에 다시 벌어졌다. 싸움이 다시 벌어진 건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복수심 때문이었다. 이 싸움이 있기 전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는 평화협상이 진행돼 일본군은 남쪽으로 철수하기로 돼 있었다. 이에 한양에 머물던 고니시 군과 함경도로 진출했던 가토 군은 남해안으로 물러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진주대첩 패배로 자존심이 크게 상한 도요토미가 남해안으로 내려가던 일본군에게 총동원령을 발동해 진주성을 다시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니 한풀이로 싸움을 걸었다. 명나라는 휴전협정 위반으로 이 싸움을 말려야 했는데도 협상 타결에 급급한 나머지 도요토미 심기를 거스르기 싫어 방치했다.
의병장 최경회와 논개의 최후
아군 측에서도 싸움의 재개 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한쪽은 진주성이 이미 고립되었으니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다른 한쪽은 진주성이 험준한 곳에 있어 사수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적군을 상대하기에 버거우므로 전략적으로는 진주성을 비우고 주위 산성 등으로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를 두고 청야(淸野)작전이라 한다. 의병장 곽재우도 이 방책을 지지해서 진주성에 함께 들어가 싸우지 않았다. 실제로 조선군은 함양 황석산성 전투 등에서 청야작전을 벌여 일본군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대처한 바 있다. 이것이 임진왜란 때와 달리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한양을 점령하지 못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2차 진주대첩 때는 의병장 김천일(金千鎰)이 진주목사 서예원을 대신해 전투의 총지휘를 맡았다. 일본군은 9만여 군사를 진주성 바깥에 집결시킨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10일간 쉬지 않고 공격해 진주성을 함락시켰다. 이때 3500여 조선 병사와 6만여 백성은 성안에서 장렬히 싸우다 죽거나 포로가 되어 학살되었다. 죽은 장수로는 충남 금산 이치전투의 영웅 황진(黃進)도 있었고, 호남 의병장 출신 최경회(崔慶會)도 있었다. 이들의 죽음은 사실상 예고된 거나 다름없었기에 아무리 장렬한 죽음이라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논개의 의로운 죽음도 이로써 생겨났다. 첫 부인과 사별한 최경회가 논개를 내실로 삼았기에 논개도 남편의 길을 주저 없이 따라서다.
치열한 충정이 담긴 비빔밥 한 그릇
야사에 따르면 진주성이 함락되기 전날 성안에 있던 모든 병사와 백성들은 다음날 성이 함락될 것을 미리 알고 함께 식사했다. 이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모든 식자재를 한꺼번에 모아서 비볐다. 그러니 마지막 식사도 비빔밥이었던 셈이다.
이 비빔밥을 함께 먹을 때 이들이 지녔던 비장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다음날 동문이 뚫리면서 여기로 일본군이 몰려들어 오자 전투는 끝이 났다. 동문이 뚫린 건 경상감사 김수(金睟)가 성의 규모가 작다고 해 동쪽의 낮은 평지를 확장해서 다시 성을 쌓아서다. 일본군은 여기를 노렸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동문에 이르면 400여 년의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죽은 이들의 비통함이 여전히 가슴에 전해진다.
전주비빔밥이 호남의 풍부한 물산과 멋에서 비롯되었다면 진주비빔밥은 치열한 전투의 소산이다. 이 때문에 전주비빔밥에선 부잣집 며느리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지고, 진주비빔밥에선 내 자식 내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뜨거운 모성애가 느껴진다. 어떤 비빔밥을 선택할지는 먹는 사람의 몫이다. 그렇지만 비빔밥에 스토리가 얹히면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이런 점에서 진주비빔밥의 스토리가 훨씬 가슴으로 와 닿는다. 이 감동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의 퇴역군인 샌더스 대령 스토리나 ‘바바리코트’의 전투용 비옷 스토리와 비교될 수 없다. 거기에 더해 남편 최경회를 위해 논개가 정성껏 마련한 비빔밥이라면 더욱 감동적이지 않겠는가.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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