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1700억원 증발? 예비 유니콘 ‘그린랩스 미스터리’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문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moon.jimin@mk.co.kr) 2023. 2. 1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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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억원.

지난해 1월 국내 애그테크(농업기술) 스타트업 ‘그린랩스’가 유치한 투자액이다. 2017년 설립된 그린랩스는 한국 애그테크 시장 ‘최고 유망주’로 꼽혀왔다. 효율적인 농장 관리를 돕는 ‘스마트팜 솔루션’ 그리고 플랫폼을 통한 직거래 방식의 ‘농산물 유통’ 사업을 앞세워 시장을 주도했다. 그린랩스는 디지털 전환에 소외돼 있는 국내 농업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혁신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았다. 책정된 기업가치만 약 8000억원에 달했다. 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은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대규모 투자 유치로부터 딱 1년이 지난 현재.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린랩스는 지금 ‘자금난’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회사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수익성 위주로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섰다. CEO가 급여를 자진 삭감하는가 하면 공동 대표이자 창업자인 안동현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사임했다. 그 정도로 돈이 없다는 얘기다. 블라인드나 잡플래닛 같은 직장인 익명 SNS에서는 ‘월급이 안 나올 것’ ‘회사가 망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끓는 중이다.

국내 스타트업업계 총아로 여겼던 그린랩스의 추락은 의미하는 바가 적잖다. ‘계획된 적자’ ‘성장이 곧 성공’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기존 스타트업 성공 방정식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1700억원을 투자받은 지 1년 만에 자금이 바닥나버린 이른바 ‘그린랩스 사태’를 통해 국내 스타트업 현주소를 살펴본다.

차기 유니콘으로 꼽혔던 ‘그린랩스’

1700억원 유치…대표는 다보스 연설도

먼저, 그린랩스가 어떤 회사인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린랩스가 내세운 비전은 ‘농업 시장의 디지털화’다. 농작물 계획에서부터 재배, 유통에 이르기까지 농업 생애주기 전 과정을 다루는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사업 축은 크게 3개다. 첫째 농민들이 모이는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앱) ‘팜모닝’이다. 농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농사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앱이라고 보면 이해가 편하다. 둘째는 ‘스마트팜 솔루션’이다. 그린랩스는 효율적인 농장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초 클라우드 기반의 ‘스마트팜 솔루션’을 보유했다. 그린랩스가 설계·관리한 국내 스마트팜만 20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는 스마트팜에서 생산된 양질의 농산물 도매 유통을 돕는 플랫폼 ‘신선하이’다. 그린랩스가 보유한 농산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자와 바이어(대량 상품 구매자) 사이 농산물을 중개, 유통에 대한 농민 부담을 덜고 수익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린랩스는 지난해 1월 1700억원 규모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다. BRV캐피탈매니지먼트가 앞장서서 1000억원, 이후 SK스퀘어와 스카이레이크가 각각 350억원을 투자했다. 그린랩스가 던진 ‘데이터 농업’이라는 화두에 시장이 크게 공감을 한 결과다.

안팎에서 ‘상복’도 터졌다. 지난해 12월 열린 ‘2022 중소기업 경영혁신대회’에서 그린랩스는 경영혁신 유공자로 선정돼 대통령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그린랩스를 주목했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총회 ‘다보스포럼’에는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가 연사로 나서 디지털 솔루션을 통해 전 세계 식량 문제를 풀어나갈 방안에 대해 연설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그 많던 투자금, 다 어디로 갔을까

농산물 도매, 수백억원 미수 채권 발생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였다. 화려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던 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1700억원이라는 거금이 1년 만에 말라버린 걸까.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무리한 사업 확장, 자본 시장 위축, 과도한 인재 인프라 투자 등이 맞물린 결과다.

가장 큰 원인은 야심 차게 키워가던 농산물 도매 유통 시장에서 수백억원대 ‘미수 채권’이 발생한 탓이다. 그린랩스는 지난해부터 농산물 유통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사업 모델을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린랩스가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농민에게 직접 구매해 시세보다 싼 가격으로 바이어에게 판매한다는 것. 데이터 기반으로 수요·공급을 예측해 과도하게 발생하는 기존 유통 마진을 줄여보겠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 사업에는 생각보다 많은 유동성이 필요하다. 농산물 유통 구조상 현금 대신 ‘어음’이 오고가는 구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린랩스가 농민으로부터 100억원어치 농산물을 구입해 바이어에게 판매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바이어는 그린랩스에 당장 100억원을 현찰로 넘겨주지 않는다. ‘언제까지 100억원을 갚겠다’는 어음(채권)을 써준다. 그린랩스 입장에서 100억원은 ‘외상 매출’인 셈이다. 하지만 그린랩스도 당장 농민에게 줄 돈이 필요하다. 그린랩스는 금융사로부터 외상 매출을 담보로 또 한 번 대출을 받아 유동성을 마련한다. ‘매출채권 팩토링’이라는 금융이다. 바이어가 대금을 납부하는 대로 금융사 대출을 천천히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채권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발생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사들이 매출채권 팩토링 금융을 중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린랩스와 팩토링 금융 협력 관계에 있던 롯데카드도 마찬가지였다. 외상 매출을 담보로 ‘운전 자금’을 마련하고 있던 상황에서 팩토링이 중단되자 그린랩스는 한 번에 막대한 금액의 대출을 상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남은 것은 미수 채권뿐. 단번에 유동성이 말라버리게 되는 셈. 이렇게 받지 못한 외상 매출 금액만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 큰 문제는 그린랩스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바이어 영업’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린랩스 농산물 도매 유통 관련 매출은 2021년 5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2500억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신생 유통사나 다름없는 그린랩스가 빠른 시일 내에 덩치를 키울 수 있었던 이유는 영업을 위해 바이어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액수를 외상으로 주거나 납부 기한을 관대하게 설정하는 식이다. 심지어 질권 설정이나 담보 설정 같은 최소한의 위험 회피 장치도 없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추어 같은 행보가 피해를 더욱 키운 셈이다. 그린랩스 관계자는 “공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바이어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했다”며 “상반기까지는 미수 채권 절반 정도는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업 영역이 늘어나면서 무리하게 회사 규모를 키운 것도 화근이 됐다. 취재 결과 지난 1년간 그린랩스가 인건비를 비롯한 판매·관리비에 쏟아부은 돈이 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2022년 1월 220명 규모였던 직원 수는 현재 650명에 달한다. 개발자 등 우수 인력 영입 경쟁이 과열되면서 인건비가 크게 뛰었다. 그린랩스 관계자는 “헤드헌터 채용 보상금이나 개발자 사내 추천금으로 많게는 500만원까지 썼다. 그만큼 우수 인재 영입에 필사적이었다. 바이어 영업이나 농민 고객 관리 등 농산물 도매 사업을 위한 인력도 급히 늘려야 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진 역시 실책을 인정했다.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는 “너무 성장만 외치며 달려오다 보니 거시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그동안 농산물 유통을 전문으로 하던 회사가 아닌 스타트업이다 보니 시장 환경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고 급하게 달렸다”며 “리스크 관리를 더 잘했어야 했다. 직원에게 죄송스럽다. 보상안 마련 등 구조조정에 따른 임직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추가 투자 유치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린랩스도 위기에 손만 놓고 있지는 않다. 온라인 플랫폼 팜모닝 등 새로운 사업으로 돌파구를 마련 중이다. (그린랩스 제공)
직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불만’

회사 방향성 모르겠다 줄줄이 호소

그린랩스 위기를 내부 직원은 일찌감치 느끼고 있었다. 3~4개월 전부터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리멤버, 잡플래닛에 회사 위기를 ‘경고’하는 내용이 줄줄이 올라왔다.

부실한 경영을 지목한 글은 2년 전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시 직원들은 주로 ‘애매모호한 회사의 방향성’ ‘임원진의 방만한 경영’ 2가지를 지적했다. ‘농업 회사인데 농업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큰 조직을 경영하지 못한 일부 풋내기 임원에게 회사가 너무 쉽게 휘둘린다’ ‘회사 규모에 비해 내실이 부족하다’ 등의 내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직원은 “스펙 좋은 직원이 많지만, 개개인 능력에 비해 뚜렷한 성과가 부족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회사 방향성이 모호하다는 평가도 많았다. 전 그린랩스 직원은 “스마트팜으로 투자를 받았는데, 사업 활용을 잘 못하니 방향을 갑자기 유통으로 틀었다. 녹록지 않은 유통업에 뛰어들면서 외형을 키우려다 보니 실속은 사라지고 돈만 잡아먹는 사업 구조만 남았다”고 말했다. 2022년 기준 그린랩스 스마트팜 사업 매출은 없다시피 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17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의심하던 시선도 다소 누그러졌지만 잠잠해진 여론은 지난해 말부터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영업·마케팅 직군이면 가지 말라’는 말이 업계에서 차츰 돌기 시작했다. 개발자와 비개발자 대우와 복지 차이가 상당하다는 소문도 퍼져나갔다. 각종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회사 조직 체계가 안 잡혔다’ ‘시스템이 주먹구구다’라는 반응이 자주 올라왔다. 결국 올해 1월, 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을 통보하면서 눌러왔던 불만이 폭발했다. 비교적 여론이 갈리던 2년 전과 달리, 직원 대부분이 회사 경영진에 반발했다. 잡플래닛에 평가를 올린 한 그린랩스 직원은 “급작스러운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이 단행됐다. (경영진은)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회사가 괜찮다고 했다. 회사를 이끄는 리더들이 책임 회피를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대표가 회계 이슈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국세청이 세무 조사로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와 같은 확인되지 않은 루머도 퍼져 나갔다. 취재 결과 해당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린랩스 측은 지방 국세청에 민원이 올라와 일부 직원이 참고인 조사를 받기는 했지만 회사가 국세청 본청의 특별·정기 세무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투자사 ‘선관주의의무’ 책임은

급격한 금리 인상, 시장 변화 대비 실패

그린랩스에 투자한 업체도 비판받는 실정이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은 투자와 동시에 적잖은 피투자 기업 지분을 확보한다. 그린랩스 지분 역시 BRV캐피탈매니지먼트가 약 10%,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가 약 7%를 보유 중이다. 이들은 ‘선관주의의무’가 뒤따르는데, 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선관주의의무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의 줄임말이다. 어떤 업무를 맡아 수행하는 사람이 그 직업이나 지위에 대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반드시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1000억원 이상 자금이 소멸되다시피 한 상황을 방치했다는 점에서 ‘선관주의의무’를 저버린 것 아니냐는 의미다. 국내에서는 사모펀드 운용자들의 선관주의의무를 자본시장법 제244조에 명시해놓고 있다. 해당 조항은 ‘집합투자재산을 보관·관리하는 신탁업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재산을 관리하고 투자자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타인의 돈을 받아 투자한 만큼, 투자 기업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투자사로서 관리·감독하라는 조항이다.

특히, 스카이레이크, BRV 등은 사실상 준조세 성격이 강한 연기금에서 출자한 돈을 대신 운용하는 만큼 ‘선관주의의무’를 더 엄격히 적용, 관리해야 하는 곳이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투자사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선관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이슈가 여러 번 있었고 연기금에서 출자한 돈이 그린랩스에도 투입된 만큼 투자사는 자금 관리에 더욱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사들도 “두 손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며 항변한다. 투자사들은 “2022년 하반기부터 사태를 인지했다. 4분기에 자금 경색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을 사전에 전달받았다. 수시로 경영 보고를 받고 있다. 현재는 그린랩스 측과 소통하며 자금 경색의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며 부실 징후 인지 후부터 투자사로서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사들은 급격한 금리 인상을 미리 예상하지 못한 점을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꼽는다. 금리 인상으로 거래처 자금 사정이 악화됐고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거래를 이어오던 중소 규모 업체들을 상대로 채권 회수가 막혀서 생긴 문제다. 그린랩스에 돈을 지급해야 하는 곳들의 상황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사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를 못한 부분이 아쉽다. 경험 부족이다.” 그린랩스 A투자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부 투자사 관계자는 벤처 투자 성격상 리스크 감수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린랩스에 투자한 B투자사 관계자는 “투자사 입장에서 시리즈C나 D 정도의 단계는 벤처 투자에 해당한다”며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변론했다. 이어 “리스크를 모르고 투자한 건 아니지만 해외 투자사도 이 단계에서는 투자 성공 확률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린랩스 투자사들은 스타트업 위기론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국내 최대 애그테크 기업인 그린랩스의 사업 모델은 여전히 높게 평가한다. 현시점에서도 농업 분야는 여전히 미래 유망 산업”이라며 “벤처 기업 경영 환경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잘 극복한다면 향후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을 확신한다.” 그린랩스에 투자한 C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향후 캐시카우가 될 만한 신사업이 순항 중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저탄소 사업’이 대표적이다. 그린랩스 관계자는 “저메탄 사료로 키운 소고기 유통 사업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월 2억원 넘는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ESG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저메탄 사료 탄소 저감 활동을 통한 ‘탄소배출권’ 거래 등 추가 수익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그린랩스 사태, 시사점은

성장주의·네트워크 이펙트의 종언

위기에 처한 그린랩스 사태가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규모만 키우면 된다’ ‘돈 떨어지면 투자받아서 또 쓰면 된다’는 식의 이른바 ‘성장만능주의’는 끝났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동안 시장에는 막대한 자금이 흘러나왔다. 넘치는 유동성 덕분에 스타트업들은 투자를 수월하게 받았다. ‘괜찮은 사업 모델(BM)과 개발자 1명만 있으면 억대 투자는 기본’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조시영 ‘스타트업 대표가 돼볼까 합니다’ 저자는 “절대 투자해서는 안 되는 비즈니스 모델(BM)을 가진 기업에도 돈이 쏟아졌다. 넘쳐나는 유동성 시장에서 ‘빨리 벌고, 빨리 나오자’는 헛된 욕심이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언젠가 터질 폭탄을 돌리면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시각. 어찌 보면 잘못 돌아간 코인판과 똑같았다”고 지적했다. 자금이 넘쳐나는 덕분에 스타트업들은 내실을 다지는 대신 외형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적자가 아무리 심해도 ‘성장성’만 증명하면 문제없다는 논리가 업계를 휩쓸었다. 돈이 얼마나 들든 이용자 수만 늘리면 된다는 아마존이나 쿠팡식 모델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린랩스도 마찬가지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으로 사업을 키우는 데만 집중했다. 수익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탓에, 자금이 말라버리자 회사 존폐가 위태로운 상태가 되고 말았다. 회원 수와 거래액에 집착해 비용만 늘리다 현금흐름 한계에 부딪히는 ‘네트워크 이펙트의 오류’가 현실화된 모습이다. 신상훈 대표는 “성장보다는 자생력과 수익성이라는 키워드로 사업을 다시 재편할 계획이다. 리스크가 큰 사업이었던 농산물 도매 사업은 비중을 줄이고 자체 플랫폼 ‘팜모닝’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짜고 있다. 성장성만 증명하면 됐던 예전 스타트업 성공 방정식이 이제는 작동하지 않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비단 그린랩스 문제만은 아니다. 왓챠, 패스트파이브, 탈잉, 샌드박스네트워크, 정육각, 오늘식탁, 뤼이드, 핏펫 등 굵직한 스타트업들도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여의도 증권가 펀드매니저들, 특히 공모(IPO)를 담당했던 직원들 사이에서는 현재 사태에 대해 올 게 왔다는 반응이다. 지난 몇 년간 초기 투자자들과 스타트업들이 기업가치를 과도하게 올렸고, 이는 최종 엑시트를 담당하는 공모주 투자자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며 “혁신과 성장성만 중요한 시대는 끝났다. 압도적인 기술력과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 아니라면 끝까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토로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6호 (2023.02.15~2023.02.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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