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매출에도 웃지 못하는 ‘LX세미콘’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2. 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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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구동칩 의존도 높아 성장성 의문

매출 2조1193억원, 영업이익 3106억원. 역대급 연간 실적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LX세미콘은 초상집 분위기다. 회사 측은 지난해 말부터 직원들에게 “내년(2023년) 초 기대 이하 성과급을 받을 수도 있다”며 위기감을 고조시켜왔다. 공지를 받은 직원들은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중심으로 실망감과 배신감을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성과급 0%’ 설(說)까지 나왔다.

안팎으로 시끌시끌하자 LX세미콘은 지난 2월 2일 성과급 규모를 공개했다. 올해 지급될 성과급은 기본급의 300%. 다만 직원들은 여전히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역대급 실적인데도 성과급 규모는 3년 새 가장 적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LX세미콘은 2021년 초 기본급의 600%, 2022년 초 기본급의 9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 바 있다.

역대급 실적을 올리고도 성과급은 줄어들고 사측은 계속 ‘경영 위기’를 강조하는 배경은 뭘까.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해 급락한 4분기 LX세미콘 수익성을 주목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고질적 약점으로 꼽혀온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매출 의존도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성장 지속을 위한 포트폴리오 개편이 필수라는 조언도 뒤따라온다.

LX세미콘은 세계 10위권 팹리스 기업에 도전하고 있다. (LX세미콘 제공)

LX세미콘 들여다보니

황무지 개척한 국내 대표 팹리스

퀄컴,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미디어텍. 최근 반도체업계에서 ‘귀한 분’으로 불리는 업체들이다. 이들은 모두 반도체 설계 업체(팹리스)다. 팹리스는 자체 생산 시설을 갖추지 않고, 반도체 설계와 판매만 담당하는 곳을 뜻한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상위 10개 팹리스 기업의 매출은 총 1274억달러(약 156조8300억원). 전년 대비 48% 증가했다.

팹리스 시장은 그동안 미국과 대만이 양분했다. 2021년 기준 10대 기업 중 미국 기업이 6곳, 대만 기업이 4곳이다. 세계 10위권 순위표에 국내 기업은 없다. 업계 관계자들이 국내 반도체 시장을 ‘팹리스 황무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국내 기업이 팹리스 분야 세계 10위권에 등극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LX세미콘이 주인공이다. 2019년 19위를 기록한 LX세미콘은 2021년 12위까지 순위를 올렸다. 지난해는 창사 첫 2조원대 매출을 달성하면서 2022년 기준 세계 10대 팹리스 기업 등극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0위권 앞두고 ‘경영 위기’ 거론

4분기 ‘어닝 쇼크’…영업익 85% 감소

잘나가는 팹리스지만, 주력 제품인 디스플레이 구동칩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게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DDI는 디스플레이 패널 구동을 돕는 반도체다. 디지털 신호를 수신해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준다. LX세미콘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용 DDI와 TV에 들어가는 중대형 DDI를 설계해 고객사에 납품한다.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LX세미콘의 주요 고객사인 셈이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디스플레이 업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디스플레이업계는 TV, 노트북, 스마트폰 등 전방 산업 수요 감소에 연쇄 타격을 받고 있다. LX세미콘 매출의 60%를 담당하는 핵심 고객사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하반기만 1조6350억원의 적자를 냈다.

디스플레이업계 불황은 당연히 DDI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일단 가격 추이가 심상치 않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중대형 DDI 가격은 지난해 1분기 0.65달러에서 지난해 4분기 0.56달러까지 떨어졌다. LX세미콘도 DDI 가격 인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LX세미콘은 지난해 4분기 매출 4564억원, 영업이익 12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2%, 85.2% 감소한 수치다. 4분기 실적만 보면 어닝 쇼크다.

더 큰 문제는 후방 산업 특성상 스스로 탈출구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특히 LX세미콘의 경우 고질적 약점인 ‘DDI 의존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LX세미콘은 전체 매출의 약 90%가 DDI 판매에서 발생한다. DDI 판매 성과가 곧 전체 실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시장 전망도 밝지 않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TV 출하량을 1억9900만대로 예상했다. 1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지난해(2억200만대)보다 1.4% 줄어든 수준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가 TV 수요에 지속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23년 전방 TV, IT 세트 수요 불확실성으로 LX세미콘 매출 성장폭은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사업 대변화 과제…M&A로 풀까

SiC 기대감…구체적 계획은 아직

LX세미콘도 사업 구조 다변화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DDI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팹리스 특성을 벗어던지고 ‘자체 생산용 공장’을 건설한 게 대표적이다. LX세미콘은 지난해 12월 경기도 시흥에 3000평 규모의 방열기판 생산 공장을 완공했다. 방열기판은 반도체에서 발생한 열을 외부로 방출하는 부품으로, 전기차 핵심 부품 중 하나다. 공장은 올해 상반기 내 가동을 시작할 전망이다.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부문에도 적극적이다. LX세미콘은 2021년 12월 LG이노텍 SiC 반도체 유무형 자산 인수를 시작으로 SiC 반도체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석·박사급 인력 채용도 이어오고 있다.

SiC 반도체는 내구성과 안전성이 특징이다. 고온·고전압의 극한 환경에서도 98% 이상의 전력 변환 효율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전기차를 중심으로 SiC 전력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과 욜디벨롭먼트에 따르면 SiC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9년 5억달러(약 6100억원)에서 2030년 100억달러(약 12조36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LX세미콘의 진짜 신사업은 방열기판이 아닌 SiC 반도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LX세미콘은 아직까지 SiC 반도체 관련 구체화된 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단순 설계만 할지, 웨이퍼 생산부터 제조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 구축을 검토 중인지 알 수 없다. 업계 관계자 의견도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LX세미콘이 2021년 LG이노텍에서 양수받은 60건의 특허 중 대다수가 ‘에피택셜(Epitaxial) 웨이퍼 제조 방법’이라며 웨이퍼 생산에도 관심을 갖는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LX세미콘이 웨이퍼 생산까지 밸류체인을 구축할 생각이라면 인수합병(M&A) 같은 공격적인 투자가 선제돼야 한다고 본다. 대규모 웨이퍼 생산 시설이 필요하고 관련 장비들도 들여와야 하는데, 이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M&A다.

실제 국내 SiC 부문 선두 주자로 꼽히는 SK그룹은 M&A로 웨이퍼 생산·설계·제조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2019년 SK실트론이 듀폰 SiC 사업부를 인수했고, 지난해 4월에는 SK㈜가 예스파워테크닉스 지분 95.8%를 취득했다. 예스파워테크닉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SiC 반도체 설계와 생산이 가능한 기업이다. 이를 통해 SK그룹은 웨이퍼 생산부터 SiC 반도체 제조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SK실트론이 웨이퍼를 생산하고, 예스파워테크닉스가 이를 설계·제조하는 구조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6호 (2023.02.15~2023.02.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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