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중대해진 중대재해법 1년…“예방 효과 없고 혼선만” 노사 모두 비판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2023. 2. 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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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6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민주노총·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하는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기업이 산업 현장 안전에 신경을 쓰는 계기가 됐지만 기업, 노동자 양쪽 모두 법의 실효성을 지적한다. 사고 발생 건수가 크게 줄지 않았을뿐더러 기업은 사고를 예방할 만한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고심한다. 실효성 등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자 정부는 법 시행 1년 만에 본격적인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지 말고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예방에 소홀했다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고 배상 책임도 묻도록 하는 법이다. 여기서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오거나, 동일한 원인으로 직업성 질병에 걸린 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다.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공사장’)에는 내년부터 적용되며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 법은 일선 현장 노동자나 중간 관리자를 솜방망이 처벌하는 데 그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오히려 ‘위험의 외주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만들어졌다. CEO 처벌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업이 각종 안전·보건 관련 체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중대재해 예방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고용노동부는 당초 기업이 솔선수범해 안전·보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중대재해법 성과는 ‘낙제점’

사망 사고 오히려 늘고 처벌은 ‘0건’

하지만 지난해 한 해 동안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오히려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인 사업장에서 나온 사망자는 256명으로 법 시행 전인 2021년(248명)보다 오히려 8명이 늘었다. 법이 적용되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년 대비 사망자가 47명 줄어든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그동안 삼표산업, 현대제철, HDC현대산업개발, SPC, 현대백화점 등 국내 유수 기업에 ‘중대재해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중대재해법 적용 첫 사례는 제조업에 집중됐다.

삼표산업은 법 시행 이틀 만인 지난해 1월 29일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양주석산에서 석재 채취 작업 중 토사가 붕괴해 작업자 3명이 사망, ‘중대재해법 입건 1호’ 기업으로 낙인찍혔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3월 5일 예산공장에서 2차 하청 업체 근로자 1명이 금형보수 작업 중 철골 구조물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사망자 수 비중이 가장 큰 업종은 건설이다. 지난해 전체 사망자 644명(50인 미만 사업장 포함) 중 건설업이 341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도급 순위 상위 10대 건설사에서 발생한 사망자만 25명(중대재해 19건)이다. 중대재해는 1건 줄었지만 사망자는 오히려 5명 늘었다. 이 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6명), DL이앤씨(5명)는 10대 건설사 중 건설 사고 사망자 수와 사고 건수로 각각 불명예 1위를 안았다.

하지만 이런 중대재해에도 처벌이 이뤄진 사례는 없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고용노동부가 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229건. 이 가운데 수사를 마친 것은 52건(22.7%)이다. 나머지 177건은 현재 내사 또는 수사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수사를 마친 52건 중 34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송치된 사건 중 11건만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가 나온 사건은 없다.

그나마 ‘중대재해처벌법 1호 판결’이 될 예정이던 한국제강 협력 업체 소속 노동자 사망 사고는 회사와 대표이사에 대한 선고가 미뤄졌다. 검찰은 원청인 한국제강과 대표이사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 한국제강 법인에 벌금 1억5000만원, 대표이사에게 징역 2년을 구형한 바 있다. 1심 선고는 경남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지난 2월 3일 열릴 예정이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법원의 ‘첫 판단’이었던 만큼 검찰의 공소 사실이 유지될지 아니면 기각이 될지 경영계와 노동계, 언론까지 주목했지만 법원의 재판부 배당 오류로 선고가 미뤄진 것. 법원은 배당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고 뒤늦게 조치에 나서 중대재해법 재판에 허술하게 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대재해법 입건 1호인 삼표산업 역시 검찰 수사가 7개월 넘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삼표산업 매몰 사고를 수사 중인 의정부지검 측은 지난해 말부터 “법리적 검토만 남았다”는 답변만 되풀이 중이다.

중대재해법 개선 나섰지만…

노동계 “처벌법 무력화 안 돼” 반발

그동안 노동계와 기업들은 삼표산업 사건 처벌 결과가 가늠자가 돼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답보 상태가 지속되면서 현장은 점차 혼란에 빠지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중대재해법 규정이 모호해 경영 책임자를 특정하거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안전 보건 예산을 편성할 때 얼마면 되는지, 마련할 내부 지침은 뭔지 등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현재까지의 중대재해법 수사·기소 사건을 보면 정부당국에서도 법 적용, 범죄 혐의 입증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 건설사 임원은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조치를 취하고도 불행하게 사고가 발생할 경우 어느 범위까지 기업 과실로 봐야할지를 두고도 명확한 기준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규정은 모호하고 사고 예방 효과는 적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는 오는 6월까지 중대재해법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중대재해법을 ‘처벌’ 중심에서 ‘사전 예방’ 위주로 바꾸기 위한 논의에 본격 착수하기로 하고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도 꾸렸다.

노동계는 반발이 거세다. 중대재해법은 처벌 수위 강화가 핵심인데 사건 처리(조사·수사·재판) 과정이 지나치게 길어 법 시행이 유명무실하다는 주장이다. 최명선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처벌법의 성격인 중대재해법은 재판 결과가 누적된 이후에 판단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중대재해법 개악 추진이 그나마 일부 진행되던 기업의 예방 노력을 중단·후퇴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이 다른 이유로 중대재해법의 한계를 비판하지만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입을 모은다. 다만 개선 방안을 두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향후 개선 방향 등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6호 (2023.02.15~2023.02.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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