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목사님이셔?”…이웃사랑 위해 간판 뗀 교회

이현성,조승현,황수민 2023. 2. 1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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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1000원에 서재 공유하고
자녀 하굣길 기다리는 부모에게 공짜 커피 건네는 교회
“‘교회 울타리 허물고 지역주민 속으로…”
대전 제이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이 김경식 제이교회 목사. 제이교회 제공

찬찬히 둘러봤지만 ‘교회’란 글자나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 실내엔 손님들이 편한 자세로 두런 두런 담소를 나누며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여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카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인데 교회 이름을 아예 뺐다던데?” “교회가 만든 영어 도서관인데 교회가 만든 줄도 모른다는데….” 이런 제보를 듣고 찾아간 곳엔 정말 교회 이름도, 십자가도 찾아볼 순 없었다. 하지만 동네 한가운데 주민들과 함께 숨쉬는 공간이라 할 만했다.

'땅파서 장사하는' 공유 서재 사장님

제이교회 외관. '제이의서재' 간판이 보인다. 교회 이름이 새겨진 입간판은 주일에만 사용한다. 제이교회 제공

대전 유성구 지족동 제이교회(김경식 목사)는 평일에 서재로 변신한다. 한적한 주택가 주상복합 건물에 둥지를 튼 28평 공간엔 책 2000권이 빗질해놓은 듯 책장에 정리돼 있다. 제이교회 외벽엔 교회 간판이 없다. 김경식 목사는 교회 간판 대신 공유 서재 ‘제이의서재’ 간판을 벽에 붙였다. 예수님(Jesus) 품에서 쉼을 누리자는 뜻의 상호명이다. 주일에만 쓸 교회 간판은 입간판으로 대신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목회를 고민했어요. 다만 공유 서재는 전도 수단이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이용객들이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까 봐 기독교 서적을 최대한 배제해요. 이웃들이 쉼을 누릴 공간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 제이의서재를 시작했습니다.”

제이교회와 제이의서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교회가 서재 운영을 후원하고, 서재가 교회 공간을 빌려주는 식이다. 서재 이용은 무료에 가깝다. 1시간에 1000원이면 핸드드립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첫 방문자에겐 모든 서비스가 무료다. 그러다 보니 서재 수익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용료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한 달에 10만 원이 전부다. 무료로 제공하는 핸드드립 커피값에 맞먹는 금액이다.

“복음이 무엇이길래 서재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겁니까.” 김 목사는 일부 이용객들의 반응을 소개했다. 제이의서재에서 복음을 처음 접하게 된 이용객도 있다. 정선미(33·여)씨는 “처음엔 상실감과 공허함을 책으로 채워보려고 제이의서재에 방문했다”며 “요즘엔 일반 서적이 주지 못하는 위로를 받고 싶어 성경을 읽고 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이용객인 김용진(42·남)씨는 제이의서재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덜어냈다. 그는 “제이의서재를 자주 이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독교 서적에도 손이 갔다”며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회 울타리 허무는 사역 중

경기도 성남 성음교회(허대광 목사)가 운영하는 '오픈커피카페' 내부. 황수민 인턴기자

14일 오전 11시 경기도 성남의 명소인 ‘판교 백현동 카페거리’. ‘성음아트센터’ 간판이 걸린 건물에 들어선 ‘오픈 커피(OPEN COFFEE)’ 카페엔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 건물은 1·2층이 카페, 3·4 층에 문화 공연을 할 수 있는 홀이 들어서 있었다. 카페와 아트센터 모두 성음교회(허대광 목사)가 운영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건물 어디에서도 교회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3층 사무실에서 만난 이동주 성음교회 강도사는 “우리 교회는 교회 울타리를 허무는 사역을 하고 있다.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의미로 복합문화공간인 오픈커피 카페를 연데 이어 지역의 문화예술 부흥을 위해 아트센터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지역민과 외부 방문객은 이곳이 교회가 운영하는 곳인지 아닌지 모르고 찾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사업”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역을 이어가는 이유는 ‘교회 성장주의’를 넘어 문화를 통해 젊은 층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페 메뉴가 ‘믹스커피’뿐인 이유

구로 아홉길사랑교회(김봉준 목사)가 만든 '아홉길 사랑' 카페 건물. 맞은편에는 아홉길사랑교회가 있으며 인근에는 서울구로초등학교가 있다. 조승현 인턴기자

비슷한 시각 서울 구로구 구로초등학교 앞. ‘아홉길 사랑’이라는 초록색 카페 건물이 눈에 띄었다. 아홉길사랑교회(김봉준 목사)가 만든 이 카페의 메뉴는 하나다. 이른바 다방커피로 부르는 ‘커피믹스’를 공짜로 타준다. 현장에서 만난 김봉준 목사는 단일 메뉴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웃 커피숍이 피해를 입을까봐서”라고 말했다. 교회 인근 카페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이 카페가 탄생한 사연이 있다. 몇해 전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강력 범죄가 잇따르자 학부모들은 수업이 끝마칠 때가 되면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일이 빈번했다. 김 목사는 “교회 마당 앞에 의자를 놔드려도 잘 앉지 않더라”며 “그랫서 쉼터 겸 해서 카페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교회 이영희(64) 권사는 “카페에 앉아 있으면 초등학생들이 하교하는게 다 보인다”면서 “하교 시간에 맞춰 이 곳에서 차마시며 애들을 기다리기에 좋다”고 말했다. 더불어 교회 측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건물 외벽에 16개의 CCTV를 설치하기도 했다.

“섬김 자체가 목적이죠”

다움교회(양승언 목사)가 설립한 다움영어도서관. 책장에 영어책이 잘 정돈돼 있다. 이현성 인턴기자

서울 강남구 일원동엔 건물 자체가 없는 교회가 있다. 2014년부터 줄곧 중동고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다움교회(양승언 목사)다. 중동고 인근 주택가엔 이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다움영어도서관’이 있다. 건물 안팎으로 십자가는커녕 종교색을 띠는 상징물은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만난 양승언 목사는 “창립 예배를 드리고 지역사회를 어떻게 섬길지 고민했는데, 지역사회에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 영어 도서관을 차렸다“면서 “대신 교회에서 운영하는 장소로 드러내진 않았다. 지역 주민이 부담 없이 찾아오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어도서관 외에도 발달장애인 사역과 다문화 가정 사역을 이어오고 있는 이 교회 사역은 자원봉사자가 부족할 정도로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섬김의 시간에서 신앙생활을 강요하는 일은 없다. 양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 성과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의도적으로 섬기고 싶지 않습니다. 의도가 보이면 지역 주민들은 섬김을 오해합니다.”

양승언 다움교회 목사. 그는 "시설만 놓고 보면 공립 도서관이 다움영어도서관보다 더 좋다"면서도 "시설 좋다고 이용자가 반드시 많이 오는 건 아니다. 도서관을 찾은 한 사람이 사랑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성 조승현 황수민 인턴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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