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⑲] 백운호수 카페에서

데스크 2023. 2. 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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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날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백운호수를 찾았다. 추운 날씨로 두툼한 외투를 걸친 시민들은 산책로를 거닐며 휴일을 즐긴다. 햇볕이 드리우는 카페에 앉아 눈 덮인 호수를 바라보자 어릴 적 친구들과 논에서 썰매 타던 모습이 떠오른다.


백운호수 위 오리보트와 멀리 보이는 백운산의 나무ⓒ필자

올해 설날은 고향에서 차례만 지내고 곧장 올라와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다. 연휴 마지막 날이 되자 집에서 쉬는 것도 갑갑하여 마음속에서는 ‘어디로 바람이나 쐬러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부추긴다. 서울 전역에 한파 경보가 발효 중이고, 노약자는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 기관의 문자가 수시로 날아온다. ‘노약자 외출 자제’라는 문자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인 양 가까운 백운호수로 차를 몰았다. 이른 시각인 데다 날씨가 차가워 통행량이 많지 않아 20여 분도 걸리지 않는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5도이며 체감온도는 20도가 넘는다고 한다.


차창 틈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가 살을 에는 것 같아 산책하는 것은 포기하고 자동차로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꽁꽁 언 호수 위에는 눈이 수북이 덮여 있고 가장자리에는 갈대가 바람에 춤을 춘다. 산에는 앙상한 가지만 달고 있는 나무가 매섭게 부는 바람에 휘파람을 불고 있다. 바깥에서는 더는 할 것이 없어 호수가 식당에 들어갔다. 호수 주변에 식당과 카페가 많아 휴일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막국수로 가볍게 식사를 하고 멋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진도 촬영하고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다.


호수 위 놓여진 산책길과 건너편에 보이는 아파트ⓒ필자

막국수는 전문점이 아니라 맵기만 할 뿐 별로다. 이곳에서 춘천 막국수를 맛보겠다고 들어간 것이 과한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식당 한쪽 벽에 ‘식사한 손님이 옆 카페를 이용할 경우 20% 할인해 주고 현금으로 결제하면 10%를 더 할인해 준다’라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든지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이곳만은 아닐 거라는 기대하고 발길에 이끌러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썩 내키지 않았지만 30%나 할인해 준다는 유혹에 자리를 잡고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시켰다. 아메리카노는 7000원이고 라테는 1만원이다. 할인된 커피 두 잔 가격이 1만1900원이다. 서울 근교의 유원지이고 전망이 좋다고 하더라도 인테리어가 변변치 않은 점을 고려하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발을 들어 놓아 되돌아 나가기가 민망스러운 데다 오랫동안 머물 거라고 자위하자 조금 위안이 된다.


카페는 남향이라 햇살이 환하게 비친다. 커튼을 쳐 놓아도 더워 외투를 벗고 노트북을 열어 놓고 바깥을 바라본다. 백운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쪽으로는 호수 위 산책로에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표정까지 볼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사진까지 촬영할 수 있다.


두툼한 방한복장으로 무장하고 호수 위 산책로를 걸어가는 시민들ⓒ필자

조용하던 카페는 점심시간이 지나자 손님들로 북적인다. 커피 추출기는 쉼 없이 소리를 내고, 커피 찌꺼기 털어내느라 쿵쿵거리는 소리가 조금 성가시게 들린다. 대부분은 연인이나 가족 단위로 나들이 온 것 같다.


옆에는 부모를 모시고 자식들과 함께 온 여섯 명의 가족이 자리를 잡자 몹시 시끄럽다. 아이들은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장난감을 갖고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지만 부모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바로 뒷좌석에는 부부와 아들딸 네 식구의 이야기 소리가 다 들린다. 부부가 주로 이야기하고 아들과 딸은 듣는 편이다. 경찰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가족 중에 경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다녀온 미국 카페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라 문화 수준에서 아직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선진국이 되려면 자신의 자유는 누리되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 이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우리의 자세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할 모양이다. 2∼3시를 정점으로 손님이 점점 줄어든다.


워낙 추운 날씨라 백운호수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도 띄엄띄엄하다. 두툼한 방한복에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복장이며, 주인 따라 나온 강아지도 추운지 깡충깡충 뛰어간다. 마스크 사이로 입김이 서려 나오고, 모자를 쓰지 않은 시민들은 손으로 귀를 감싼 채 걷는다. 어떤 산책객은 우리 카페를 보며 손짓을 하기도 한다. 따뜻한 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부러워 저곳에 가 보자고 하는 것 같다.


백운호수 서쪽 산으로 넘어가는 태양ⓒ필자

백운호수는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다. 스케이트를 타도 괜찮을 것 같은데 행정당국에서 위험하다며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인지 아무도 없다. 사전에 점검해 보고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허용하는 적극적인 행정을 폈으면 좋으련만 그런 발상과 용기 있는 지자체장은 없는 모양이다. 화천 산천어 축제처럼 호수에서 얼음낚시를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스케이트장으로 활용한다면 주변 가게의 수입도 늘고 서울 근교라 시민들도 멀리 가지 않고 즐길 거리가 생겨 지역 명소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은 ‘떼어 놓은 당상’일 텐데. 공무원들이 검토를 해 봤는지 모르겠다.


오후가 되자 산책객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날씨가 좀 풀린 모양이다. 오리 보트 10여 척은 호수 가장자리 얼음에 발이 묶여 꼼짝 못 하고 있다. 아마 따뜻한 햇볕이 얼음을 녹여 주는 봄날까지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어 답답해할 것 같다. 호수 건너편에는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다. 잔설에 발목이 덮인 채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긴 아파트 건너 백운산 나무들은 산등성이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줄지어 서 있다. 맨살을 드러낸 채 추위에 떨면서 봄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을까?


해가 서쪽 산등성이로 떨어지려고 한다. 시끄럽던 카페 손님들도 대부분 떠나고 서너 곳의 테이블에서만 연휴 마지막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온종일 카페에 앉아 조금 시끄러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호수 위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충분히 즐길 거리다. 먼 산의 앙상한 나무들도 봄이 되면 푸른 숲을 일구어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나도 누구에겐가 마음의 위안을 주는 따뜻한 글을 써 보고 싶다. 지난해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봐야지.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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