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미래]①'우영우'처럼 IP 확보…판권 다각화로 새로운 길 뚫어라
IP 챙기는 제작사들, OSMU 본격화 예고
빠른 확산은 어려워…상당수 영세성 여전
IP 다각화 가속 "다른 비즈니스모델 필요"
편집자주 -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최대 목표는 K-콘텐츠 수출 확대다. 역대 최대 규모의 정책금융 지원을 단행한다. '모태펀드 문화계정(K-콘텐츠 펀드)' 4100억 원, 완성 보증 지원 2200억 원, 이자 지원 1600억 원 등이다. 꾸준한 성장세를 견인해 제조·서비스 산업을 이끄는 주력으로 키울 계획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콘텐츠 산업 매출액은 146조9000억 원, 수출액은 130억1000만 달러(이상 추정)다. 전년보다 각각 7.4%와 1.5% 성장했다. 후자는 기대를 밑돈 실적이다. 2020년에는 16.3%, 이듬해에는 7.5%였다. 올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 만만치 않다는 전조다. 외연을 확장하는 동시에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올해 콘텐츠 산업을 저해하는 요인은 차고 넘친다. 세계 경제 성장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영향으로 지난해 2분기부터 둔화했다. 각 나라들의 금리 인상으로 상품가격 불안정성은 커지고 인플레 압력은 고조됐다. 콘텐츠 산업 투자 규모도 자연스레 위축됐다. AMC 네트웍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등 미국 미디어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넘어 해고 절차까지 밟는다. 하나같이 수익성 개선으로 사업 방향을 바꿨다. 국내 기업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CJ ENM은 새해가 되자마자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투자 위축, 비용 감축 등과 무관하지 않은 행보다. 상반기에 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 전창영 한국콘텐츠진흥원 정보분석팀 선임연구원은 "경기가 침체하고 시장이 위축되는 불확실성을 헤쳐 나갈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야 할 시기"라고 진단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해법은 지식재산권(IP) 확보다. 지난해 에이스토리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좋은 선례를 남겼다. 넷플릭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방영권만 팔았다. 방송 시장에서도 방영권 거래만 고수해 신생 채널 ENA와 손잡았다. IP 확보에 열을 올린 이유는 드라마 '킹덤'을 성공시키고도 아쉬움을 삼켜서다. 게임을 제외한 모든 IP가 넷플릭스에 귀속됐다.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는 "IP는 '캐시 카우'로 제작사가 성장하는 기반이 된다. 잃으면 외주 수익으로 생존하고 다시 외주를 맡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우영우'는 넷플릭스에서 9주 동안 비영어권 TV 시리즈 시청 시간 1위를 했다. 상위 10위권에 '오징어 게임'보다 한 주 많은 스물한 주 연속 이름을 올렸다. 흥행에 따른 별도 수익은 없었으나 IP를 다양하게 활용할 기회를 잡았다.
'우영우'는 네이버에서 웹툰으로 제작돼 미국, 유럽 등에 소개된다. 내년 초에는 EMK뮤지컬컴퍼니에서 뮤지컬로 만든다. 크립토닷컴은 소셜 NFT를 발행한다. 드라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고래를 테마로 자폐인 인식 개선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한세민 에이스토리 사장은 "화장품과 패션도 차근차근 준비한다"라며 "이례적으로 종영 뒤에도 의뢰가 계속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가장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방송·제작사. 지난해 9월 국제방송영상콘텐츠마켓(BCWW)에서도 적잖은 해외 바이어가 방영·리메이크를 타진했다. 애덤 스타인먼 워너브라더스 포맷 개발 파트 부사장은 "주인공이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며 온전하게 삶을 영위하는 이야기로 따뜻한 감동을 준다"라며 "북미 유명 콘텐츠와 견줘도 손색없는 경쟁력을 갖췄다"라고 호평했다. 이어 "OTT의 제작 지원에 기대지 않은 에이스토리의 과감한 전략 또한 한국 제작사들에 모범 사례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제작한 래몽래인이 투자금의 절반인 176억 원을 책임져 IP의 50%를 챙겼다. 국내 판권은 넷플릭스·디즈니+·티빙·케이블 채널, 해외 판권은 Viu(뷰)에 팔았다. 다양한 채널 확보로 170여 나라 방영을 주도했다. 넷플릭스에 의존해 글로벌 활로를 모색하던 K-콘텐츠의 유통 창구를 확장하는 동시에 2차 판매 수익을 극대화할 기반을 마련했다.
문체부는 새로운 체제의 안착을 촉진하고자 올해 콘텐츠 IP 펀드를 신설한다. 900억 원을 출자해 1500억 원 규모로 조성한다. IP를 보유한 중소·벤처기업, IP를 활용한 프로젝트 등에 투자한다. 채창렬 문체부 문화산업정책과 사무관은 "한국벤처투자에서 6월까지 펀드를 결성한다"라며 "드라마 제작사는 물론 웹툰·웹소설 업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유통사와의 IP 공동 보유도 조건에 부합한다"라고 설명했다.
당장 고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작사는 5~6년 전까지 외주 업체로 더 많이 불렸다. 지상파 등 대신 드라마를 만들어 일정 수익을 챙기는 데 그쳤다. 상당수는 납품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 대형 제작사들이 제작 물량의 3분의 2 이상을 독식하며 빈익빈 부익부 구조를 고착화해서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49.9%)부터 꾸준히 증가해 2020년 81.3%까지 치솟았다. 콘진원이 7일 발간한 '2022 방송영상 산업백서'에 따르면 2021년 매출 실적을 기록한 제작사는 732곳이다. 100억 원 이상을 기록한 업체는 약 10%인 일흔세 곳. 이들의 매출 3조6325억 원은 전체 4조5691억 원에서 79.5%에 해당한다. 절반 이상(57.4%)은 10억 원을 넘지 못했다.
거듭된 영세성은 OTT 등과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아무리 좋은 대본을 보유해도 하청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제작사 A 대표는 "OTT가 도래하고 드라마 제작 규모가 몰라보게 커졌다"라며 "정부에서 다양한 지원을 내놓아도 펀드 성격상 유수 제작사나 웹툰·웹소설 업체에 쏠리기 쉽다"라고 우려했다. 제작사 B 대표는 "지금도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원하는 제작사가 줄을 서 있다"라며 "대부분이 제작 원가 회수와 5~10%의 수익배분이 명시된 매절 계약에 얽매여 있다"라고 전했다.
대형 제작사도 고민은 있다. 드라마는 다른 분야보다 리스크가 크다. 유명 배우·감독이 참여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IP를 고집하다가 자칫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제작사 C 대표는 "IP를 포기하는 대신 제작비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한다면 이 또한 미래 가치를 확보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제작사 D 대표도 "IP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국내에 원소스멀티유즈(OSMU) 성공 사례도 지극히 적다"라며 "리메이크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은 불안정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IP 다각화의 토대는 한류 붐이 처음 일었을 때 마련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송사들의 근시안적 거래로 번번이 기회가 무산됐다. KBS 드라마 '겨울연가'가 대표적인 예다. 일본에 팔아 270억 원을 벌었는데, 일본은 마흔 배가 넘는 1조2000억 원을 챙겼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DVD, 사진집, 액세서리 등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KBS는 일본 NHK에 부가 판권을 함께 파는 바람에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없었다.
IP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오늘날, 악순환이 반복될 여지는 적다. 정부도 다양한 방안으로 안착을 돕는다. 예컨대 문체부와 콘진원이 지난해 11월 진행한 '콘텐츠 IP 산업전'은 제작, 미디어, 플랫폼 등 관계자들을 연결해 지속 가능한 발전 가능성을 이끌었다고 평가된다. 행사를 담당했던 김정경 콘진원 방송산업팀 차장은 "비즈니스 상담 323건이 진행돼 즉석에서만 계약 여덟 건이 체결됐다"라며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 부문' 수상작인 '수련으로 하여금 인샬라', '봉이', '물랭루주에서 왔습니다', '칩리스' 등도 출판·영상화될 길이 열렸다"라고 설명했다. '우영우'로 새로운 길을 개척한 한 사장은 "국내에도 마블 시리즈나 '왕좌의 게임', '프렌즈' 같은 글로벌 슈퍼 IP가 나올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라며 "K-콘텐츠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지금과는 다른 비즈니스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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