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황제 퇴직금은 무죄다?

박정태 2023. 2. 14.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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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도 아들 퇴직금 50억원
뇌물 아니라는 해괴한 판결
납득 못하는 국민 분노 들끓어

법리가 상식과 괴리되고 공정
반한다면 사법부 신뢰 무너져
상급심이 바로 잡아야 할 것

부실 수사로 원인 제공한 검찰
성찰하고 ‘50억 클럽’ 엄단 의지
보여야… 사법 불신 커지기 전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길

음지에서 자라나는 뇌물의 세계에서 혁명적 사건이 일어났다. 불법이란 딱지가 붙은 뇌물을 합법의 경지에 오르게 한 경이로운 판결이 나왔다. 간혹 선물과 혼동돼 합법·불법의 경계를 오르내린 적은 있지만 최종 심판대에 가서 실체가 드러나면 불법 낙인이 찍혔던 게 뇌물이었다. 그런 뇌물이 우회적으로나마 합법화의 길을 걷게 됐다니 세상은 요지경인가 보다. 우리 사회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공증까지 했으니 역사적인 그날을 기념해 ‘2·8 판결’이라고 명명해야겠다.

하지만 양지를 지향하는 인간의 세계에선 법원이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전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신종 뇌물 수법’이라면서 분노와 허탈감을 표출한다. 그만큼 소위 ‘50억 클럽’의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뇌물수수 무죄 판결은 충격파를 던져주고 있다. 사건 핵심은 곽 전 의원 아들이 받은 ‘황제 퇴직금’의 성격이다. 아들은 대장동 개발사업자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로부터 성과급·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50억원(세후 25억원)을 받았다. 이 액수는 30대 그룹 전문경영인 퇴직금 순위 4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전후 사정부터 짚어보자. 검사 출신인 곽 전 의원과 기자 출신인 김씨는 대학 동문이다. 2002년 검사와 기자의 관계로 알게 된 후 친분을 유지해왔다. 아들은 김씨 권유에 따라 화천대유 1호 사원으로 2015년 입사해 2021년 퇴사했다. 고작 6년을 대리와 과장으로 일한 31세 회사원에게 김씨가 무려 50억원 퇴직금을 줬다는 것이다.

당연히 김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현직 국회의원(당시) 신분의 곽 전 의원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아들에게 돈을 줬으리라 보는 게 상식적 판단이다. 김씨는 화천대유에 입사시킨 아들이 결혼하기 직전에는 사택을 제공하고, 사택을 나와 전세주택을 얻으려 할 땐 회삿돈 5억원을 빌려준 바도 있다. ‘아빠 찬스’가 아니고선 이 모든 과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재판부도 ‘뇌물성’이라는 의심을 하기는 했다.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 국회의원의 직무 관련성도 있다, 아들이 아버지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수수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봤다. 그럼에도 결론은 반대 쪽으로 치달아 “뇌물로 볼 수 없다”며 면죄부를 줬다. 결정적 이유는 아들이 결혼을 해 독립적 생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법률상 부양 의무가 없으므로 아들이 받은 돈을 곽 전 의원 본인이 받은 뇌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였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음에도 따로 사는 최순실과 ‘경제공동체’로 묶여 단죄를 받았다. 그런데 경제공동체 그 이상인 부자 관계에선 처벌이 불가하다니 그 누가 납득하겠는가. 물론 증거와 법리에 입각한 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다. 일반인의 기본적 상식과 크게 괴리되는 판단이라면 그건 법리 구성에 허점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정과 정의에 반하는 판결은 사법부 신뢰마저 갉아먹을 수 있다. 50억 클럽 명단에 권순일 전 대법관이 있어 미리부터 방어막을 치는 게 아니냐는 상상까지 하는 판국이다. 방탄 판결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권 전 대법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이 2021년 청구한 대법원 압수수색 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됐다. 제 식구 감싸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런 의구심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어찌 됐든 이번 판결은 상급심에서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된다.

근본 원인을 제공한 검찰도 성찰해야 한다. 이 모두 부실 수사가 초래한 결과물이다. 뇌물임을 입증할 증거가 얼마나 부족했으면 판사가 뇌물성을 의심하면서도 검찰 주장을 배척했겠는가. 판사의 합리적 의심을 해소시킬 책임은 단연코 검사에게 있다. 대장동 일당의 녹취록 하나만 믿고 보강 증거 없이 대충 기소해놓고 유죄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다. 전직 고위 법조인들이 망라된 50억 클럽에 대해 야당 대표 수사하듯 총력전을 펼쳤다면 이 꼴이 되진 않았을 게다. 권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에 대한 수사는 진척의 낌새도 없다. 법조 카르텔이란 비난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선택적 무능으로 봐주기 판결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있다. 검찰이 공소유지 인력을 확충했다지만 외형만 바꾼다고 달라지진 않는다. 중요한 건 수사 의지다.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사법 불신이 더 커지기 전에 법원과 검찰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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