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줄 그만 세우고 혁신을 애걸하자

2023. 2. 1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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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야 할 줄이 이미 많은데 국가가 또 만들어댄다.

날로 진화하는 예약·주차·계산 줄 관리에 자주 놀란다.

그게 줄 관리의 한 이정표였지 싶다.

줄 해소를 시장처럼! 품귀의 줄을 쳐다보며 포기하라 혹은 참으라 식의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정부는 함부로 강요치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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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중(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서야 할 줄이 이미 많은데 국가가 또 만들어댄다. 본래 줄의 관리는 어렵다. 관리에 인력과 공간이 필요해서다. 그래도 시장은 그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지루함, 안갯속 대기시간, 눈치껏 빠른 줄 고르기라는 고객의 세 가지 골칫거리를 해결코자 했다. 맨해튼 마천루의 승강기나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 앞에 긴 줄이 생겼다. 하염없이 기다리던 고객을 위해 초기에 발휘했던 기업의 기지들은 유명했다. 날로 진화하는 예약·주차·계산 줄 관리에 자주 놀란다.

종이 대기번호표 뽑는 작은 기구. 그게 줄 관리의 한 이정표였지 싶다. 효율(공간 활용과 편함)을 높였다. 뽑은 순서를 지키니 공정까지 살린 혁신이었다. 코로나 위험과 칼바람 속에서 번졌던 최악의 공적마스크 줄들. 이를 본 시빅해커들이 재고데이터 개방을 요청하고 불과 며칠 후엔 판매 앱을 탄생시켰다. 첫날 호출이 9000만회였고 이튿날 1억7000만회로 늘었다. 대기를 줄이고 매진율을 높인 감동의 줄 해소책이었다. 향후 각종 정부 데이터 공개와 민간 협업이 창출해낼 부가가치가 엄청나리라.

줄의 최상 해소법은 공급 확충이다. 분산이 가능한 수요에는 합당한 유인도 제공한다. 그래도 남는 줄은 ‘시장처럼’ 대처한다. 여기에는 긴 호흡과 번뜩이는 창의가 필수다. 불행히도 정부 처방은 없던 줄도 자주 만든다. 시장의 몰이해가 한몫한다. 공복들은 못된 줄장난들도 친다. ‘새치기’는 공정은 물론 효율도 파괴한다. 지난번 이태원행 닥터카 가로채기에서도 비효율(구조 방해)을 뚜렷이 봤다. 심지어 줄 한 도막 통째로 ‘바꿔치기’도 한다.

그 첫 유형은 대기 줄 앞자락을 ‘다른 끈’으로 휙 바꾸기다. 거기 매달려 승자들이 된다. 정권과 ○피아 힘으로 연일 내리꽂는 비전문 낙하산군(群). 당장 남들 자리도 뺏고 공기업과 금융계에 지대추구 대못을 깊게 박고 있다. 건전재정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는 자들도 국고의 줄 앞을 단번에 꿰찬다. 직전 세 정부의 면제 사업비가 각 61조원, 25조원, 120조원이었다. 현 정부의 개선 약속, 진심인지 지켜보자. 미분양 아파트를 사준다는 공공 소진책도 자칫 특혜 돌리기가 된다. 짬짜미 사례들이 많다.

둘째는 열악한 ‘다른 상품’으로의 바꿔치기다. 공무원과 공공근로 늘리기는 구직 줄의 정상 해소책이 아니다. 수년간 사라진 풀타임 일자리 수가 놀랍다. 레고랜드 사태 등에 굼뜨다가 금융회사들을 황급히 뒤트는 모습에서 2016년 소위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를 몰아붙이던 그들이 떠올랐다.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자금 수요를 해소한답시고 정공법 대신 엄중한 한국은행 발권력을 쓰려 했다. 손 놓고 있다 쓰는 무리수가 똑 닮았다. 정부 독점 서비스들은 심각하다. 가령 범죄 피해 구제를 기다리는 불구속 형사재판 줄은 4년간 1.3배까지 길어졌고 미제 건수도 확 늘었다. 검수완박법으로 이제 수사 서비스 줄도 조악해지리라.

줄 해소를 시장처럼! 품귀의 줄을 쳐다보며 포기하라 혹은 참으라 식의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정부는 함부로 강요치 말라. 안팎의 공급망 개척을 온몸으로 돕자. 드센 보호무역과 자원민족주의를 뚫어가며 기업의 교역 다각화를 선도 지원하자. 가격 왜곡은 줄을 만들고 반드시 큰 분탕질을 부른다. 이번 난방비 폭탄에 전임 정부를 그토록 비판했듯이 본인들도 예대금리, 전력도매가, 의료수가 등에서의 번지수 틀린 통제와 획일화를 접자. 입으론 자유와 개혁을 외치지만 줄 세우기에 급급한 공복이 많다. 도로 위의 스티브 잡스라던가, 그가 개발한 분홍과 초록의 노면 유도선을 따라 오늘도 감사히 운전하면서 희망을 품는다. 혼잡을 해소하고 연결을 가속할 파격적 혁신과 인재를 애걸하자.

김일중(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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