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심포니 취임 1년 예술감독 라일란트 “차근차근 ‘소리의 문화’ 만들겠다”
윤이상·진은숙 등 한국 클래식 역사 담은 음반 발매
“오페라 발레 연주는 반주 아닌 구체적·역동적 참여”
“악단의 정체성, 연주의 유연성, 연주곡의 확장. 세 가지 노력을 계속하겠습니다. 낭만시대 이후 대규모 작품에도 도전하고, 다양한 작품의 개성과 색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의 말이다. 그의 부임 1주년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로 명칭 변경 1주년을 기념한 자리였다.
국립심포니의 역사는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KBS교향악단인 국립교향악단의 제2대 음악감독 홍연택이 민간오케스트라로 설립했다. 2001년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단체로 지정돼 관현악과 오페라, 발레를 아울렀다. 작년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로 개명하고 국립예술단체로서의 위상을 뚜렷이 했다.
벨기에 출신 라일란트는 브뤼셀 왕립음악원과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지휘와 작곡을 전공했다. 2018년부터 프랑스 메츠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도 활약 중이다. 그의 성향은 프랑스적이되 독일적인 감수성으로 대표된다. 베를리오즈·드뷔시·라벨 등 프랑스 음악과 슈만, 슈트라우스로 대표되는 독일 낭만 음악이 두 축이다.
라일란트는 “이질적인 문화도 공감하고 필요한 것을 끄집어내고 적응하고 유연성을 갖추는 게 저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국립심포니에서의 1년을 회상하며 라일란트는 “악단의 음악적 유산을 발전시키고 회를 거듭할수록 단단하게 성숙시키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작곡가이기도 한 라일란트는 “작곡가야말로 한국의 특별한 컨텐트를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이라고 강조했다. 국립심포니는 작곡가 여러 명의 창작 활동을 독려하며, 상주작곡가를 선정하는 ‘작곡가 아틀리에’ 제도를 운영한다.
라일란트는 K컬처의 힘이 작곡에서도 발휘될 거라고 예견했다. 그는 “한국 문화의 뿌리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발굴했을 때 큰 가치가 있다. 한국이 발휘한 문화적 역량이 작곡을 통해서 충분히 폭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 말 경 발매되는 음반에서도 한국 작곡가들을 조명한다. 라일란트는 한국의 음악적 초상, 한국 음악의 인상, 축약한 한국 음악의 역사를 담는 작업이라 했다.
“윤이상부터 시작해 진은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발굴해야 할 동시대 음악가까지 통시적으로 이어지는 ‘한국 작곡 악파’를 녹음할 계획입니다. 한국 작곡가들의 역량과 창조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사에 한국이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밝히고 음반을 통해 한국 음악의 위상을 알리려 합니다.”
국립심포니의 연주 횟수는 1년에 113회 가량으로, 103회인 서울시향, 85회인 KBS교향악단을 상회한다.
많은 연주로 인한 피로감이 느껴질 때가 있고 연주력에 기복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라일란트는 “오케스트라마다 악단만의 약점이 있고 악단만의 문제 해결방식이 있다”며 “깊은 영역까지 들어가 진단을 내리는 건 객원 지휘자들이 아닌 예술감독인 내가 할 일“이라고 책임을 밝혔다.
그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국립심포니 만의 소리의 문화(Klangkultur)를 들었다. “소리 자체가 명확한 전통을 가진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작업을 통해서 악단을 개선하는 일은 시간이 필요하다.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립심포니의 장점으로 "단단한 연주력의 현악 파트"를 들며, 관악 파트의 수준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국립심포니는 100명 정원에 78명의 단원으로 운영 중이다. 간담회장에 동석한 최정숙 국립심포니 대표는 6월 수석과 단원을 합해 16명을 충원 및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이밖에 국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사관학교 역할을 하는 KNSO국제아카데미 확충, 한국 지휘자 육성을 위한 지휘자 워크숍,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3개월 내 협연, 독일 베를린·비스바덴·체코 등 해외 투어 등 여러 사업을 설명했다.
간담회 내내 라일란트는 국립심포니의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을 강조했다. 그중 중요한 대목은 ‘극장 오케스트라’다. 그는 “오페라나 발레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반주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참여의 형태”라면서 “역동성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다양한 개성을 갖출 수 있다면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일란트의 임기는 2025년 1월 14일까지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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