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우먼톡]편리함에 대적할 봄이 오길

2023. 2. 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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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를 제대한 아들놈이 체육관에 다녀오면 툴툴거린다.

우리가 언제부터 빨래를 기계로 말리기 시작했냐, 전기가 어디서 나오냐부터 기후변화까지 입씨름을 해보지만 편리함 앞엔 대적할 게 없다.

세스 고딘은 '편리함은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저평가되는 동시에 그 영향력에 대한 이해가 가장 부족한 동기'라고 정리했다.

반면에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상하고 예측 불가한 기후재난들 또한 편리를 위해 남용된 과도한 자원과 산업화가 파생시킨 부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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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해병대를 제대한 아들놈이 체육관에 다녀오면 툴툴거린다. 주짓수 도복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건조기가 없어서 세탁대에 걸어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입대 전에는 그러려니 하던 것을 병영생활에 익숙해진 후 군대에도 있는 건조기가 집에 없냐고 따진다. 우리가 언제부터 빨래를 기계로 말리기 시작했냐, 전기가 어디서 나오냐부터 기후변화까지 입씨름을 해보지만 편리함 앞엔 대적할 게 없다.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이 엮은 ‘우리에게 보통의 용기가 있다면’은 ‘기후변화 완전정복’ 같은 책이다. 기후변화의 기초지식은 물론 우리에게 미칠 다채로운 영향과 솔루션을 마케터답게 그래픽과 자료, 만화까지 동원해서 쏙쏙 들어오게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앞머리 역시 ‘편리함이 만사를 결정하는’ 문명사회의 현실로부터 시작한다.

세스 고딘은 ‘편리함은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저평가되는 동시에 그 영향력에 대한 이해가 가장 부족한 동기’라고 정리했다. 편리함은 우리가 행동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속성임에도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 보여서 간과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 일단 어떤 편리를 경험하면 그 외의 선택은 불가능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세탁기를 경험했는데 어떻게 손빨래를 하겠는가!

편리함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산업 발전으로 우리는 과도한 노동에서 해방되었고, 시간을 아껴 여가 시간을 만들게 되었다. 반면에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상하고 예측 불가한 기후재난들 또한 편리를 위해 남용된 과도한 자원과 산업화가 파생시킨 부작용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편리의 노예가 된 마당에 불편을 감수하여 기후변화를 막아내자면 나설 사람이 있을까? 있다. 연희동 보틀팩토리 정다운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테헤란로에 있는 대기업 디자인 부서에서 잘 나가던 디자이너는 일회용 컵이 쓰레기통을 뒤덮고 있는 현실을 고민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디자인 랩을 차린 후 쓰레기차까지 추적하며 재활용이 안 되는 실상을 목격한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가 정말 안 될까, 일회용품 없는 카페가 정말 불가능할까, 플라스틱 포장 없는 거래는 불가능할까. 2018년 연희동에 보틀팩토리를 열고 생각의 씨앗을 키우기 시작했다. 안 쓰는 텀블러를 모으자 600여개가 됐고, 각자 포장 용기를 들고 와서 사가는 ‘채우장’ 시장 또한 입소문을 타고 늘려갔다. 동네 카페들이 연대해서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리턴컵도 만들고, 떡집 참기름집들도 참여해서 일회용품 없이 사고파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근엔 애플리케이션(앱)도 만들어서 연희동을 넘어 전국에서 우리 동네 노웨이스트(No Waste) 랭킹도 보여주면서 리사이클 활동을 게임처럼 즐기게 해주고 있다.

생각 깊은 청년이 뿌린 씨앗에 이제 다수가 응답할 차례다.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활동에 직원들이 참여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이 많다. 출근 시간이나 점심 후 빨대 꽂은 커피컵을 들고 오가는 습관만이라도 멈추면 효과가 클 것이다. 예컨대 큰 건물 1층마다 자리한 커피숍들이 1회용 컵 대신 컵홀더나 빨대가 필요 없게 정다운 대표가 만든 ‘리턴컵’을 사용하고, 커피숍과 반환약정을 맺고 반환율을 앱으로 측정해보기를 권해드린다. 느리고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충족감은 어떤 편리함도 대신할 수 없다. 회사마다, 건물마다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제로 웨이스트 물결이 봄과 함께 피어났으면 좋겠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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