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주택가격 안정 위해서는 ‘금리’ 좀 더 상승할 필요 있다
영국 옛말에 집은 자신의 성(An Englishman’s home is his castle)이라고 했다. 집은 생활의 안식처일 뿐만 아니라 삶을 구현해 나가는 환경이고 기억을 녹여주는 공간이다. 이와 동시에 일반인들에게는 자산 형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집의 재산 증식 역할이 다른 순기능을 압도하며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즉,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성실한 부부들이라면 소박한 주택 한 채 정도는 가질 수 있었으나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집값이 너무 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중산층이 얇아지고 그만큼 양극화는 심화됐다. 지난 정권교체도 전 정부가 집값 폭등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 민심이 이반된 결과인지 모른다. 반면에 이번 윤석열정부에서는 출범 후 1년도 지나기 전에 집값이 10% 가까이 떨어졌다. 다들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찰나, 정부가 돌연 아파트 분양과 재건축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덕분에 가파르게 떨어지던 주택가격은 멈칫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주택가격 안정을 부르짖던 정부가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돌아선 것은 발등에 떨어진 경기 부진과 금융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응급조치로 보인다. 금년도 세계 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는 내수로 버티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내수의 핵심은 건설이다. 정부가 주택 관련 규제를 시급히 완화하는 속사정이다.
더구나 지금 건설 현장에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데, 이른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사업 추진 주체가 아니라 사업 자체의 경제성을 보고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 사업의 부실이다. 그간의 부동산 개발 붐이 식으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이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건설회사는 물론이고 자금을 댄 금융기관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건설업체의 회사채 차환 발행이 순조롭지 않아 특단의 조치가 취해졌던 것이 지난 연말이었다. PF 대출을 많이 취급한 금융기관들은 연체율 상승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당면 문제를 가라앉히기 위해 정부가 나선 것이다.
문제는 정부 의도대로 주택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선 그동안 주택가격이 너무 올랐다. 서울의 아파트를 사기 위해 월급을 18년 동안이나 고스란히 모아야 할 정도로 집값이 비싸졌다. 하지만 세상천지에 끝없이 오르는 것은 없다. 올라간 것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최근에 거의 모든 언론이 향후 주택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을 전문가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흔쾌히 집을 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많은 사람이 예상하면 그대로 이뤄지는 법이다.
이런 예상을 부추기는 것이 금리다.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한, 주택의 평가가격은 낮아지고 구매수요는 떨어진다. 이달 초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7%(5대 은행 신규취급 기준)에 달해 2년 전에 비해 거의 두 배로 올랐다(한 달 전에 비해서는 1% 포인트 하락한 것이지만 이는 은행들이 정부의 간절한 바람에 부응해 개별 가산금리를 인하한 데 따른 것이기에 실제로 적용되는 금리는 여전히 높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린 데 있다. 세계적인 금리 상승 기조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의 물가 상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받아든 난방비 고지서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오른 원자재가격을 공공기관의 적자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마도 금년 내내 전기, 가스, 지하철 등 각종 공공요금이 올라가고 덩달아 임금이나 서비스가격도 들먹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주택가격은 하방 압박을 받는 것이다.
혹여 부동산 불패 신화를 떠올리며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안이하기 짝이 없다.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나 됐다. 앞세대가 보유한 집을 사줘야 할 젊은 층의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집값은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물론 부동산이라는 것이 수요가 몰리는 특정 지역의 특정 물건은 가격이 뛸 수 있다. 즉, 강남 집값은 계속 올랐다. 그러나 그것이 오를수록 지방 집값은 떨어진다.
더군다나 강남 아파트가 고층으로 재개발되므로 타지로부터의 인구 유입은 가속화되고 지방 집값은 더 떨어진다. 지방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발사업을 구상하지만 결국 낭비 행정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지방의 절대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치로 중앙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고 개발사업을 추진한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집값 하락은 피할 수 없다.
물론 주택가격이 다시 오를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 집값에 낀 거품이 제거된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이를 노려서 부동산 투기·투자를 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각오해야만 한다. 과거와는 달리 인구 증가와 급속한 성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동산은 가격 변동성이 매우 심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물건을 찾기 위한 탐색 비용과 빌라왕 사건에서 보듯 사기 위험 등으로 거래 비용이 높아 적정 수익을 내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도 금리 하락세가 본격화할 경우 부동산 투자에 나서려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다. 이로 인해 또다시 집값이 폭등한다면 개인적으로는 득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고 안정성을 훼손하는 부(-)의 외부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금리는 좀 더 높은 수준으로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주거비 비중이 낮아(한국 9.8%, 미국 32%) 집값 불안에 따른 비용이 통화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성실한 시민이 저축을 통해 주택자금을 쉽게 마련하고, 기업들이 경쟁력 제고에 나서도록 자극하는 것은 덤이 될 것이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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