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올드진스 분투기

전성필 2023. 2. 1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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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필 산업부 기자


흐름에 뒤처져선 안 된다. 온갖 밈(meme·유행 콘텐츠)에 익숙해져야 한다. 새로움을 체험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밀레니얼 세대(M세대)에겐 젠지(Z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다. ‘뉴진스(NewJeans)’가 될 수 없을지언정 트렌드에 민감한 ‘올드진스(OldJeans)’ 정도는 돼야 하지 않는가. ‘본디’를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한 친구는 링크 하나를 메신저로 던졌다. “사내 교육 강사가 말하길, 요즘 본디를 해야 Z세대랑 얘기할 수 있대” “본디? 그게 뭔디?” 어쭙잖은 농담으로 맞받아쳤지만 호기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본디(Bondee)’는 싱가포르 스타트업 ‘메타드림’이 개발한 메타버스 앱이다. 지난해 10월 출시됐지만 국내에선 최근 몇 주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이용자가 몰렸다. IT 업계에서는 열기가 주춤해진 메타버스 분야에서 콘텐츠로서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꼽는다.

본디에서 만든 아바타 모습


앱의 첫 단계는 여느 메타버스 콘텐츠와 비슷하게 아바타 꾸미기다. 얼굴과 헤어스타일, 피부색, 코와 눈의 크기와 모양 등을 선택한다. 아바타가 착용할 옷 종류도 많아 다양한 패션을 추구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아바타를 꾸몄다. 동그란 얼굴에 약간 큰 눈, 가볍게 가르마를 탄 머리 모양까지. 옷도 평소 일을 할 때 즐겨 입는 것들을 아바타에게 입혔다. 현실의 나를 본디 세계로 옮긴 듯했다.

아바타를 만들고 친구를 추가했다. 앱의 첫 화면 공간에 친구들의 아바타가 움직였다. 하나같이 자신과 비슷하게 꾸민 아바타였다. 한 친구는 업무 중이라면서 열심히 커피를 ‘수혈’(커피를 링거처럼 매달고 마시는 모습)하고 있었고, 한 친구는 ‘멍때리기’를 하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또렷하게 상상됐다.

Z세대 후배 기자 A와도 친구를 맺었다. A의 아바타는 달랐다. 화려했다. 현실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진한 분홍색의 머리였다. 옷차림도 일상복과 다르게 과감했다. A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A는 본디에서 M세대와 Z세대가 확연하게 구별된다고 했다. “M세대는 아바타를 본인의 얼굴과 비슷하게 만들고, Z세대는 아바타를 본인이 추구하는 모습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본디를 다시 둘러보니 30대인 친구들은 자기 자신을 본디에 그대로 옮겨놨다. 반면 Z세대 후배들은 본인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바타를 꾸몄다. 내 아바타도 M세대의 본디 사용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행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뛰어넘지 못하는 세대 간 차이가 존재했다.

A는 “본디를 시작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여러 기능을 시험하고 있어요”라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본디에는 상대방과의 대화창에 ‘뭐해’라는 아이콘이 뜨는데, 이를 누르면 상대방이 카메라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찍어 답장으로 보낼 수 있다. 본디를 시작한 A의 다른 선배가 시도 때도 없이 ‘뭐해’를 눌렀다고 한다. A가 해당 기능의 쓰임새를 상세히 알려준 뒤에야 ‘뭐해 테러’는 사그라들었다고 한다. A의 아바타 개인공간(아파트)에 메모를 붙이는 기능을 시험해보려던 나의 손가락을 급히 멈췄다.

SNS에 본디 아바타를 인증한 후배 B에게 친구 요청을 했다. 하지만 B는 며칠 동안 응답이 없다. 본디는 친구를 50명까지만 맺을 수 있게 했다. 친하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자신의 일상이 공유되는 등 기존 SNS의 ‘초연결성’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적당한 폐쇄성’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개발사는 본디를 ‘찐친들의 메타버스 아지트’라고 소개한다.

B와 ‘찐친’이 아닌 나는 B의 폐쇄사회 속에 당연히 없어야 한다고 깨달았다. Z세대에 다가가려는 의도적 노력은 오히려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반작용’일 수 있다는 점도. 본디는 세대 차이를 극복하겠다는 시도였지만, 세대의 거리를 인지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괜찮다는 점을 알려준 계기로 끝났다. M세대가 본디로 몰려들면서 Z세대가 본디를 떠난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안하다.

전성필 산업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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