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시의 방정환아카데미 건립 계획, ‘왜 방정환인가?’부터 생각하라[기자수첩-수도권]

이도환 2023. 2. 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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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선생의 사상과 정신은 ‘교육’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통한 아동인권선언에 위치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그 순수한 가치 지켜내야
방정환 선생.ⓒ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각이 없는 데, 그게 어찌 ‘고’냐? 그게 ‘고’냐?(觚不觚 觚哉 觚哉)”

무슨 뜻인지 확연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 말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탄식이다.


‘고(觚)’는 고대 중국에서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던 술잔이다. 윗부분은 넓고 중간 부분은 잘록하지만 아랫부분은 다시 넓어진다. 그런데 결정적인 특징은 4각형(혹은 8각형) 기둥 모양이라는 것이다.


이 ‘고’라는 술잔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잔(盞)을 머리에 떠올려 보자. 사각 모양의 잔이 있는가? 게다가 위 아래로 길고 윗부분이 넓은 모양이라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불편한 술잔을 사용했을까.


‘고’를 사용한 이유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제사는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지내야 한다.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의 표현이 ‘형식’이다. 아무렇게나 내 맘대로 하면 마음이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에 마음을 단정히 만들기 위해 불편한 ‘형식’을 만들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을 때와 정장을 입고 있을 때의 마음가짐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러한 ‘고’가 불편하다고 하며 사람들이 모서리를 없애고 둥근 잔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 잔은 ‘고’인가 ‘고’가 아닌가?


앞에 언급한 공자의 탄식이 여기에 연유한다. 공자는 ‘고’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도 거듭 두 번에 걸쳐 강조한다. 공자가 ‘형식’만 강조하는 앞뒤가 막힌 늙은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각을 없앴다면 ‘고(觚)’라 부르지 말고 그냥 ‘잔(盞)’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뜻이다.


지루하게 ‘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구리시가 추진하고 있는 ‘방정환아카데미 건립 사업’을 언급하기 위해서다.


구리시가 추진하고 있는 ‘방정환아카데미’는 현 구리시장의 공약사항이다. 이 사업은 구리시를 ‘우리 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기본 컨셉에서 확장된 사업이다. 처음 ‘우리 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도시’를 내세우는 모습을 보며 매우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난 시간 동안 구리시를 상징하는 도시 브랜드 이미지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구리시가 내세웠던 것은 ‘고구려의 도시’와 ‘태극기의 도시’가 전부였다. 아차산의 고구려 유적을 이유로 고구려를 내세웠지만 이것을 의미있게 생각하는 시민들은 없었다. 오늘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 드라마 촬영지와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구차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태극기의 도시’도 마찬가지다. ‘왜?’라는 질문에 뾰족한 답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도시’를 내세우며 방정환 선생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현 시장의 공약은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는 방정환 선생의 묘소는 구리시 행정구역 내에 위치했기에 그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겠다는 근거와 이유도 충분했다(현재 서울시에서 공원 전체를 관리하고 있으나 행정구역은 구리시와 서울시로 나누어져 있다. 방정환 선생의 묘소는 행정구역 상 구리시 교문동 산84-2에 위치하고 있다.). 미래를 생각한다는 개념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마땅한 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우지 못했던 구리시에게 ‘방정환’은 매우 매력적이며 적절한 선택임에 분명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는 방정환 선생의 묘소. 현재 서울시에서 공원 전체를 관리하고 있으나 행정구역은 구리시와 서울시로 나누어져 있다. 방정환 선생의 묘소는 행정구역 상 구리시 교문동 산84-2에 위치하고 있다.ⓒ구리시

취지는 매우 적절했으나 최근 확인한 ‘방정환아카데미’에 대한 계획은 매우 부적절한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준다.


‘방정환아카데미’ 사업은 현재 구리시의 평생학습과 교육지원팀이 진행하고 있다. 사업의 방점이 ‘교육’에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사업의 목표는 ‘공교육을 보완·보충하는 교육지원사업의 컨트롤 타워 구축’이다. 사업내용을 살펴보면 ‘교육복합시설 설치, 교육지원 프로그램 개발·운영’으로 되어 있다.


사업의 목표와 방향부터 내용까지 모두 방정환 선생과는 접점을 찾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방정환 선생은 교육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동문학가였으며 아동문화운동가였다. 그는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거부했다. 당시의 어린이는 아직 사람이 되기 전의 미숙한 존재라고 인식되었다. 때리고 혼내서라도 교육을 시켜야만 비로소 사람이 되는 존재였다는 뜻이다. 방정환 선생은 이러한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문화운동가였다.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온전한 인권을 지닌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2년, 방정환 선생이 펴낸 동화책의 제목이 ‘사랑의 선물’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사랑의 선물’을 펴내며 머리말에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혼들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라고 썼다.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주어야할 대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방정환 선생이 1923년 창간한 잡지 <어린이>와 1922년 펴낸 동화책 <사랑의 선물> 표지.ⓒ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구리시의 ‘방정환아카데미’ 사업이 부적절해 보이는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구리시 인근의 중랑구는 ‘방정환교육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름은 ‘방정환’을 내세웠지만 실제는 단순한 교육지원센터에 불과하다. “중랑구는 ‘꿈과 희망을 키우는 교육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중랑구 방정환 교육지원센터를 운영합니다”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이름만 ‘방정환’으로 적고 내용은 ‘反 방정환’으로 채우고 있다. 구리시의 현재 계획을 살펴보면 중랑구의 ‘방정환교육지원센터’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이웃 지자체 따라하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방정환 선생의 사상과 정신은 ‘교육’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통한 어린이인권선언에 위치한다.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그 순수한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는 게 방정환 선생의 생각이었다.


구리시의 ‘방정환아카데미’가 명실공히 ‘방정환스럽게’ 되기 위해서는 방정환의 사상과 정신에 대한 연구와 검토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웃 지자체를 따라하는 모습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구리시의 시민들 가운데 아동문학가 및 어린이문화운동가 등을 찾아 그들과 손잡고 ‘(가칭)방정환아카데미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민·관 협력 사업으로 새롭게 추진하라고 권하고 싶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제대로 하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 구리시의 도시 브랜드를 새롭게 정립하는 사업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브랜드는 ‘다른 것과 비교되는 가치’다.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브랜드는 차별화가 우선조건이다. 매력적인 것을 가져와 멍텅구리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방정환 선생이 무덤에서 일어나 현재의 이러한 모습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어린이를 향한 사랑이 없는데, 문화와 예술이 없는데, 그게 어찌 ‘방정환’이냐? 그게 ‘방정환’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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