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100g에 2900원"...'갓성비'에 놀란 MZ도 지갑 열었다
100g당 2900원. 채소나 고기를 파는 상점이 아니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빈티지 의류 매장 ‘그램딜’은 옷을 무게로 재서 판다. 지난 11일 찾은 330㎡(100평)의 창고형 매장에는 1만여 벌의 구제(중고) 의류가 빼곡히 걸려있었다. 매장 손님은 작은 행거를 하나씩 끌고 다니면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옷을 골라 건다. 고른 옷을 계산대에 가져가면 저울로 무게를 달아 가격을 매긴다. 두툼한 패딩 점퍼와 니트 카디건, 가격표도 안 뗀 베이지색 면바지로 한 벌을 맞춰 저울에 올려보니 1560g, 4만5000원 남짓이다.

그램딜에서 만난 대학생 이나윤(25) 씨는 두 번째 방문이라고 소개했다. 겨울 겉옷은 사려면 적어도 10만원은 줘야 하지만 이곳에선 같은 가격으로 많게는 5~6벌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여러 벌을 사도 부담이 없는 데다 ‘득템’하는 재미가 있어 요즘 창고형 키로샵을 많이 찾는다”며 “서울 변두리나 오산 등 경기권에도 가는데, 훨씬 싸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층 사이에서 ‘무게샵’ ‘키로샵’ 등이 인기다. 중고 의류뿐만이 아니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엠플레이그라운드’는 11일부터 서울 서대문구 신촌점에서 새 옷을 무게로 재 판매하는 ‘킬로그램 세일’을 열고 있다. 지난달 홍대 4호점에서 열었던 킬로그램 세일의 호응이 뜨거워 다시 연 행사다. 가격은 1㎏에 3만원으로, 1㎏ 초과 시에는100g당 3000원이다.

패션 업계 4분기 주춤, 백화점 명품도 꺾여
킬로그램 세일까지 등장한 건 경기 침체 때문이다.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엔데믹으로 호황을 누렸던 패션 업계에선 소비 위축 신호가 뚜렷하다. 주요 패션 업체의 4분기 실적은 주춤했다. 지난해 매출 1조5539억원, 영업이익 1153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4분기 영업이익은 193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35.9% 감소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한섬의 4분기 영업이익도 492억원으로 전년 대비 4.9% 감소했다.

지난해까지 매년 두 자릿수 호황을 이어갔던 백화점 명품 실적도 올해 1월 들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의 럭셔리 조닝(부문)이 전년 대비 –12.1%, 현대백화점의 명품 조닝은 –7.4%, 신세계백화점의 럭셔리 부티크 조닝은 –8.7%로 나란히 역신장했다.

실용성 앞세운 의류 PB 주목
가벼워진 주머니로 지난해 말부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운 의류 PB(자체상표)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겨울 PB 의류 주요 품목의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원피스류 51%, 기모 셔츠 28%, 점퍼류 25%가 각각 신장했다.

온라인에서도 PB 상품이 대세다. 온라인 쇼핑몰 티몬이 지난해 11월 론칭한 PB브랜드 클로베이스는 출시 직후 연 기획전에서 기모 트레이닝 셋업 등 대표 상품을 판매해 10분 동안 3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거뒀다. LF는 지난해 10월 첫 PB브랜드 스탠다이얼을 LF몰에서 단독 런칭했다. 기본 디자인에 가격 거품을 줄인 해당 브랜드의 니트는 출시 한 달 만에 LF몰 니트 카테고리에서 베스트 상품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가성비’ 넘어 ‘갓성비’ 시대
올해 패션 및 유통 업계는 경기 둔화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성장세가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심리적 만족감을 앞세웠던 ‘가심비’ 시대에서 합리적 성능과 가격대를 추구하는 ‘가성비’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최근에는 가성비를 넘어 ‘갓성비’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신을 뜻하는 ‘갓(god)’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을 조합한 단어로, 가성비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를 의미한다. 가격 대비 성능의 기준이 더 높아진 셈이다.

이는 최근 일본 소비 시장에서 부는 ‘쁘티프라(작고 귀여운 가격이란 뜻)’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어느 정도의 품질이 보장되고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연다는 의미다. 그램딜처럼 재미와 가성비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새로운 판매 방식으로 손님을 끄는 식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매년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선 이런 소비패턴을 ‘체리슈머’로 명시했다.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면서 알뜰하게 소비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뜻한다. 세일이나 경품 행사 등 혜택만 쏙쏙 빼먹는 소비자를 일컫는 ‘체리피커’에서 진일보한 개념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낮은 품질의 저가 제품보다 좋은 품질의 적당한 가격대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이미 좋은 물건에 대한 소비 경험이 풍부한 데다, 각종 정보 획득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영리하게 한정된 자원(돈)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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