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경영권 전쟁] 반전의 연속…하이브·카카오 맞붙는 3월 주총 '최대관심'
공개매수 하이브와 카카오 만날 주총 관심↑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는 반전에 능했다. 1989년 갓 설립한 SM기획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또 후두염으로 목 상태가 악화된 그가 MC를 맡고 있던 인기 방송 프로그램들에서 하차를 선언하자 방송가에는 그가 죽었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이듬해 현진영과 와와를 데뷔시키며 한국 댄스 음악의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지난 7일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 지분 9.05%를 확보하자 해외 체류 중이던 이 전 총괄은 급거 귀국해 법률대리인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팔 경상으로 병원 입원 중 향후 행보를 논의했다. 10일 하이브가 이 전 총괄의 SM 지분 중 80%를 인수한다고 밝혔고, 이는 K팝 산업의 지형도를 ‘또 한 번’ 바꿔놓았다. 그가 써내려간 반전 서사는 매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시작은 곧 K팝의 시작이었고, 그 끝은 한 시대의 종언을 상징한다.
SM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극(劇)의 구성 요소인 5단계 법칙을 충실하게 따라 전개됐다. 이 전 총괄이 직접 개입한 반전이 아니었다면 발단-전개-결말로 끝났을 밋밋한 서사에 위기와 절정이 틈입하면서 극적 기대감이 고조됐다.
발단-굳건했던 지배구조 균열과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
이 전 총괄은 2010년 SM 등기이사직을 사임하며 경영 퇴진을 선언했지만, 라이크기획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라이크기획은 1997년 설립한 이 전 총괄의 개인 회사로 그가 맡은 모든 업무는 SM이 라이크기획에 하청을 주고 인세를 지불하는 시스템의 일환이었다. 경영책임은 피하되 대주주이자 총괄 프로듀서로 이 전 총괄은 라이크기획을 통해 지난해 상반기에만 114억원을 챙겼다. 같은 기간 SM의 영업이익은 386억원이었다.
라이크기획을 처음 문제 삼은 건 2019년 당시 SM 3대 주주인 KB자산운용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였다. 하지만 SM은 프로듀싱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역할을 내세워 해당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지난해 SM의 지분 1%를 확보한 얼라인파트너스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한 얼라인은 보다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SM이 또 한 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얼라인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자신들이 추천한 감사를 임명하는데 성공했다.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얻은 얼라인의 행보에 SM은 조금씩 움직임을 보였지만 업계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전개-SM, 이수만 간 프로듀싱 계약 조기 종료
지난해 10월 SM은 이 전 총괄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 간 계약을 조기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2000년부터 SM이 라이크기획에 지불한 비용은 22년간 총 1486억원에 달했다. 이는 동기간 SM의 영업이익 총액인 4207억원의 35%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얼라인파트너스는 현 이사회의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어 SM은 지난 1월 15일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사회의 과반을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회 도입과 이사회 의장 선임 절차를 바꾸는 등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하지만 얼라인 측은 “이사회의 독립적 구성과 이수만 창업자와 관계회사들의 거래 관계에 대한 정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여전한 이 전 총괄과 SM 간의 연결고리를 지적했다. SM과 이 대주주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 간 계약 종료 발표 후에도 SM이 구체적 프로듀싱 방안을 발표하지 않자 얼라인 측은 이 대주주의 라이크기획 부활을 우려할 정도였다. 당시 SM내부에서는 얼라인의 과도한 요구에 이 전 총괄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반면, 현 경영진인 이성수 대표는 주주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하는 입장을 취하며 갈등 조짐이 일고 있었다. 이 전 총괄의 장기집권이 빛나는 성과에서 독단적 전횡으로 퇴색되는 순간이었다.
SM은 지난 3일 ‘SM 3.0 4대 핵심 성장전략’ 발표를 통해 창업주인 이수만 대주주와의 결별을 공식화했다. 1995년 회사 설립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이 총괄 프로듀서 단일 체계에서 탈피해 5개 제작센터를 전진 배치하고 사내 레이블 및 독립 레이블 설립과 운영 방안이 주 내용이다. SM은 이를 통해 IP데뷔와 앨범 출시 지연율을 기존 25%에서 5%이하로 낮추는 한편, 아티스트 한 팀 데뷔에 평균 3.5년이 소요됐던 것을 1년에 최소 두 팀의 아티스트 데뷔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음반 또한 연평균 31장 발매에서 연간 40장 이상 발매를 목표로 정했다. SM 3.0 전략은 결국 방대한 보유 자원 규모 대비 아티스트 데뷔와 활동 빈도가 부족하다는 외부 비판 원인이 이 전 총괄의 독점 프로듀싱 체제에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SM의 파격 행보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7일 카카오는 123만주 규모 신주 및 전환사채 114만주 인수를 통해 SM 전체 지분 9.05%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현 경영진은 이사진 내부에 이 전 총괄의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의 지분 확보에 대한 SM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지창훈 사외이사는 "이사들이 제대로 된 논의나 숙고도 없이 회사의 미래에 관한 결정을 했다"며 "(얼라인 요구 사항을 수용해 프로듀싱 개편 등을 논의한) 지난 이사회도 전날 안건을 보내 설 연휴 오전에 비대면으로 회의를 강행했는데, 요새 어떤 기업도 이사회를 이렇게 운영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SM 현 경영진과 손잡고 카카오가 단숨에 2대 주주에 올라서자 이 전 총괄은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이 전 총괄의 당시 SM 지분율은 18.46%로 카카오가 9.05%를 확보하는 유상증자 이후에는 지분율이 더 떨어져 대주주로서 영향력 약화 또한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8일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화우를 통해 “SM의 신주발행에 대해 위법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통해 SM 이사회의 불법적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며 “기존 주주의 신주 인수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이 흔들리자 9일 얼라인 측은 SM과 라이크기획의 계약 내용을 공개하며 굳히기에 나섰다. 계약에 따르면 라이크기획은 SM으로부터 2092년까지 기존 발매된 음반, 음원 수익에 대해 로열티 6%, 2025년 말까지 매니지먼트 수익에 대한 로열티 3%를 수취할 예정이었다. 향후 70년간의 로열티 수취 문제가 대두되면서 여론은 이 전 총괄에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팔에 경상을 입었다는 이 전 총괄은 7일 급히 귀국해 8일 입장을 발표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업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나리오가 예상됐던 가운데 9일 증권가를 중심으로 이 전 총괄의 지분을 하이브가 인수한다는 찌라시가 돌기 시작했다. 예상은 곧 현실이 됐다.
하이브는 이수만 SM 대주주의 보유 지분 14.8%를 4228억 원에 인수했다고 10일 공시했다. 하이브는 SM 소액 주주 보유 지분의 공개매수에도 나선다고 밝혔다. 하이브는 이 전 총괄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지 않았다. 사전기업결합신고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소액주주 지분에 대한 동시 공개매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이브는 먼저 이 전 총괄의 지분 14.8%를 매입하고, 이후 일단 소액주주 주식을 매수한 뒤 이 전 총괄의 잔여 지분을 인수해 기업결합승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이브는 “이수만이 K팝을 하나의 산업으로 일궈낸 것에 존경의 뜻을 밝히며, 이수만이 그려온 글로벌 비전을 현실화하겠다는 의지 또한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 전 총괄의 복귀설이 대두됐다.
논란이 확산하자 하이브는 △경업 금지 및 유인 금지 사항 △의결권 위임 등 협력 의무 사항 △잔여주식에 대한 매수청구권에 대한 입장 △대상회사의 관계회사 지분 매매 및 거래관계 해소 의무 사항 등 확약 사항 축약본을 공개하며 이 전 총괄의 복귀설을 일축했다. 결국 이 전 총괄을 배제한 현 경영진의 SM 3.0 비전과 2대 주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카카오의 입장이 ‘이수만의 선택’을 통해 난처해진 상황이다.
하이브는 오는 3월 1일까지 주당 12만원에 SM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며 안정적인 지분 확보를 준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카카오 역시 공개매수를 통해 대응에 나서는 그림을 전망하지만, 내부에선 정해진 내용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SM의 지분율은 국민연금공단이 8.96%, KB자산운용이 5.12%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99만여주를 매입해 4.2% 지분율을 확보한 컴투스 역시 주목할 대상이다. 이 모든 사태의 시작점이 된 얼라인은 1.1%를 확보하고 있다.
이에 3월로 예정된 SM 정기 주주총회와 함께, 앞서 이 전 총괄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 결과가 SM 경영권 분쟁에 마침표를 찍을 전망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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