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업 사장님들, 이 사기꾼 조심하세요” CCTV 고발

송태화 2023. 2.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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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사칭해 지방 숙박업소 돌며 범행
“시청 직원 밥 사야해” 돈 받은 뒤 도주해
같은 피해 사례 공유되기도
A씨가 지난 2일 경남 통영의 한 모텔에 방문해 엘레베이터에 타고 있다. CCTV 화면 캡처, 모텔 업주 김모씨 제공

70대로 추정되는 노년 남성이 관공서와 공공기관을 사칭해 지방 모텔에서 사기 행각을 벌인 뒤 도주했다. 피해자는 이 사기범의 범행 수법이 대담하고 치밀한 데다 주변에 같은 피해자도 발생했다며 숙박업소 업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지난 10일 ‘전국을 다니는 사기꾼 같다. 숙박업소 사장님들 조심하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쓴 회원은 경남 통영시 광도면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이모가 당한 일이라며 사연을 소개했다.

작성자 이모인 모텔 업주 김모씨는 12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7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A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쯤 통영의 한 모텔에 들어왔다. 그는 김씨에게 “한 2주 정도 있을 예정이니 방 세 개를 달라”고 요청하며 “직원 둘은 내일 서울에서 내려오는데, 통영은 방 잡기가 어려워서 내가 먼저 내려왔다”고 운을 뗐다.

A씨는 “관광개발공사와 해양수산부의 협찬을 받아 해안도 절경을 찍기 위해 통영에 왔다”며 “드론을 띄워서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오래 해서 여기뿐 아니라 강원도 등 관광공사 일이라면 다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A씨가 지난 3일 모텔 층을 돌아 다니며 사장 김모씨를 찾는 모습. CCTV 화면 캡처, 김씨 제공


여유롭고 친절한 설명을 들은 김씨는 경계감이 누그러졌다. A씨가 점잖게 차려입은 노년 남성인 데다 정부 부처, 공공기관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지방 숙박업소 영업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투숙실 세 개를 2주 동안 쓰겠다는 말을 듣자 고마운 손님이라는 마음만 앞섰다.

김씨는 장기 투숙객인 만큼 방 2개 값만 받겠다고 하면서 총 145만원을 요청했다. 이에 A씨는 “내일 직원들이 와서 계산하겠다”며 “아주머니 혼자 고생하시니 (5만원을 얹어) 150만원을 드리겠다”고 답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A씨의 집요하고 치밀한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방에 들어간 A씨는 김씨를 부른 뒤 옷가지 등 여러 물건을 펼쳐놓고 보여주며 아주 오래 있을 사람처럼 행동했다. 또 객실에 비치된 일회용 칫솔과 면도기를 가리키며 “이거 들고 가라. 우리는 장기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이니 이런 건 다 들고 다닌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라면을 사와 김씨에게 “김치가 있으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등 친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다음 날 아침 오전 8시30분쯤 모텔을 나서며 청소를 하는 김씨에게 “시청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이후 세시간 여 만에 돌아온 그는 “시청 과장급 직원이 점심을 사달라고 한다. 우리 애들(부하 직원들)은 오후 2시나 왜야 올 텐데”라며 “15만원만 빌려달라. 젊은 사람들하고 밥 먹는데 늙은이가 내야 하지 않겠나”라고 부탁했다.

그는 “부하 직원들이 오면 숙박비 150만원에 15만원을 더해 165만원을 주겠다”라고 거듭 청했다. 이에 경계감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던 김씨는 “공사를 땄으니 식사비를 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흔쾌히 현금 15만원을 건넸다.

A씨가 지난 3일 모텔 업주 김씨로부터 돈을 받은 뒤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 CCTV 화면 캡처, 김씨 제공


김씨가 A씨를 배웅한 뒤 빈 객실을 다시 청소하러 올라가던 순간, A씨의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울려 퍼졌다. 김씨는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A씨가 묵던 2층 객실을 확인했으나 방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방에는 A씨 물품 뿐 아니라 수건, 샴푸, 바디워시 등 객실 내 비치된 용품도 사라진 상태였다.

A씨에게 당한 피해자는 김씨만이 아니었다. 소식을들은 인근 숙박업소 업주 B씨 역시 CCTV를 확인한 뒤 “3년 전 그놈”이라며 피해 사실을 공유했다. A씨는 당시에도 시청 직원들 밥을 사야 한다며 같은 수법으로 B씨에게 30만원을 받아 달아났다고 한다.

김씨 조카는 “작은 도시라 숙박업소에서 일하는 분들이 연세가 있는 편이다. 그런데 좀 더 나이 있는 노인이 공공기관을 팔며 접근하니 속은 것 같다”며 “자기 입으로 전국을 다닌다고 하고 삼 년 만에 다시 온 걸 보니 통영에서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에 신고했으나 현실적으로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하니 사장님들이 각자 조심하셔야 한다. B씨 역시 당시 신고했음에도 잡지 못했다”며 “70대 중후반 나이에 180㎝가 넘을 정도로 큰 키, 덩치가 있고 목소리가 우렁찬 노인이다. 다리를 약간 저는 게 특이점”이라고 알렸다.

지난 3일 아침 모텔을 나서는 A씨의 모습. CCTV 화면 캡처, 김씨 제공


김씨는 “76세라고 했으나 여든은 훌쩍 넘어 보였다”면서도 “고령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암산도, 행동도 빨랐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어리숙해 당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꼭 잡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이 글에는 “포털사이트 모텔 업주 커뮤니티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는 제보가 달리기도 했다. A씨의 범행 사례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실제로 해당 커뮤니티에는 비슷한 수법으로 피해를 봤다는 업주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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