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다음 소희', 배두나가 굳이 여백을 채우지 않은 이유

류지윤 2023. 2. 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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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 폐막작

배우 배두나가 정주리 감독과 '도희야'에 이어 다시 손 잡고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시들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다음 소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 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다. 2017년 전주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각색했다. 배두나는 극중 세상을 떠난 소희의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유진 역을 맡았다.


배두나는 타협 없이 여전히 부당한 사회에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정주리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읽고 단번에 출연을 결정했다.


"정주리 감독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존경스러워요. 영화를 만들 때 타협이나 융통성이 없어서 제가 믿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남들이 원하는 대로 타협하는 감독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런 면에서 정 감독님을 좋아해요."


'다음 소희'는 아동학대를 주제로 한 '도희야'에 이어 직장과 학교에서 오로지 실적과 취업률로 취급 당하는 현장실습생의 비극과, 이 비극을 아무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번에도 감독님의 글이 좋더라고요. 첫 장 읽으면서 '타협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시는구나'란 생각을 했고요. '도희야' 때 한 번 작업을 했으니 이 분의 성향을 알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다음 소희' 시나리오를 읽으며 조금 더 감동을 받았어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죠. 뉴스에서 청소년들이나 사회 초년생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는 내용이 나올 때 안타깝게 생각해오기도 했고요. 모르고 지나갈 법한 이야기를 들었을 대 지나치게 분노하는 경향이 있어요."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 영화 '브로커'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배두나는 형사를 연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또 형사 역이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배두나에게 중요한 지점은 아니다.


"형사 역은 사실 직업일 뿐이지 캐릭터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 다른 캐릭터기 때문에 형사라는 직업을 '이번에는 어떻게 보여줄까'란 고민을 하진 않아요."


극 중 유진은 소희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알게 된 후,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들렸던 슈퍼를 다시 한 번 찾아간다. 사실 배두나는 감정의 한계를 주는 장치라고 생각해 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유독 이 신에서 만큼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 신은 유난히 얼굴과 표정이 안 좋아요. 찍기 전부터 많이 울었거든요. 앉는 순간부터 무너지더라고요. 아마 소희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신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모멸감과 참담함 그런 기분이요.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구나를 몸소 느꼈기 때문에 눈물을 참으려고 했는데도 계속 나더라고요."


영화는 유진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왜 무기력한 표정인지, 왜 전주 경찰서 형사과로 이동하게 됐는지, 왜 그가 춤을 추는지 등 많은 것들을 생략했다. 배두나는 그런 유진의 여백을 채우려 하지도, 계산하지도 않았다. 소희의 이야기를 알아가며 부딪치는 감정이 관객과 동일한 속도로 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여백을 제가 굳이 채울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소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굳이 유진에 대해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은 정도라고 정해놓고 촬영에 들어갔어요. 대신에 제 안에서는 유진의 배경을 소설 쓰듯이 써 내려갔고요. 지쳐있는 표정과 상태 그런 걸로 짐작하게 만들지, 감독님이 만들어놓은 여백을 관객들에게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 안 하려고 해요."


배두나의 거친 얼굴과 무기력한 표정은 소희의 사건 배경을 알아갈 수록 분노와 절망으로 변해간다. 배두나는 스크린에서 부가적인 것들로 인해 캐릭터의 감정을 방해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저는 민낯의 힘을 믿는 사람이거든요. 감정에 따라 얼굴 빛이 달라져요. 그걸 굳이 차단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행사 갈 때는 엄청 꾸미지만 연기할 때 만큼은 얼굴빛의 도움 받아야 해요. 마음을 들켜야 하니까요. 스크린에서는 눈을 보면 다 보인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함을 갖고 있어서 관객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지 않고 제 눈으로 집중시키려고 해요."


2022년은 배두나에게 잊지 못 할 한 해였다.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브로커'가 진출하고,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다음 소희'가 초청됐다. 참여한 영화가 두 편이나 칸 영화제에 초청되는 영광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잭 스나이더 감독의 신작 '레벨문'을 미국에서 촬영하고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배우에게 이만큼 영광스러운 해가 있을까 싶네요. 저는 영화만 좋은 평 받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영화제 참석에 욕심이 없는데 이번엔 진짜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레드카펫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봤는데 아쉽게도 실패했어요. 사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을 것 같단 예상은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이 사랑 받을지는 몰랐죠.(웃음) 이걸 통해 '다음 소희'의 비극이 비단 한국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공감 할 만한 이야기라는 확신을 얻었어요."


배두나는 '다음 소희'를 통해 관객, 더 나아가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그 때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마음을 지금이라도 다시 이야기 해서 많은 사람들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고 애도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여전히 답은 없지만 그래도 그게 제 마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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