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피지컬:100' 둘러싼 세가지 시선
카메라 200대 이상, 축구장 2배 촬영장
맨몸 원초적 대결의 재미와 대리만족
"한국 예능이 '오징어게임' 실사판을 만들었다."
상금 3억원을 걸고 최고의 몸을 찾는 '피지컬: 100'을 향한 해외 시청자의 반응이다. 이는 지난달 24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예능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구조는 간단하다. '피지컬: 100'은 참가자 100명이 상금 3억원을 놓고 겨룬다. 가장 강력한 몸을 가진 최강자를 찾는 서바이벌 대결로 구성됐다.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도마 황제'로 불리는 전 국가대표 체조선수 양학선,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등 유명 운동선수 등 익숙한 얼굴들도 출사표를 던졌다.
그야말로 뜨겁다. 10일 OTT 순위 집계 사이트 넷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피지컬: 100'은 이날 TV 부문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한 한국 예능이 글로벌 정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라별로는 한국을 포함해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그리스, 스웨덴, 스위스, 체코, 덴마크,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베트남 등 38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총 9부작으로 구성된 '피지컬: 100'은 매주 2회씩 공개되며, 오는 21일 전회차가 공개 완료된다. 뜨거운 반응만큼 회를 거듭하면서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빛이 밝은 만큼 그림자도 짙은 법. 논란도 불거졌다. 아센디오와 MBC 간 제작 갈등이 불거졌고, 성대결 방식이 문제로 지적됐다.
편견 깨부순 정정당당 스포츠맨십
MBC 시사교양국 소속 장호기 PD는 특공대 출신 이력을 지녔다. '피지컬: 100'은 장 PD의 과감한 도전에서 시작됐다. MBC 소속인 그는 넷플릭스에 이메일로 기획안을 보냈고, 이를 본 넷플릭스가 2주 만에 제작을 결정했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장 PD는 "특공대에서 훈련이나 레크리에이션이 '축구, 탁구, 유도 선수 출신 나와서 붙어봐'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가장 좋은 몸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렸다"고 착안 배경을 설명했다.
'피지컬: 100'은 단계마다 탈락자를 걸러내며 최후의 1인을 선발하는 형식이다. 대결 방식 외에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어떻게든 이기기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고, 참가자들마다 각자 고유 번호가 있고 100명 단위로 서바이벌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나왔다.
생존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속고 속여가며 살아남은 '오징어게임' 참가자들과 달리 100인은 나름대로 스포츠맨십을 발휘하고 있다.
경쟁이지만 먼저 떨어진 참가자는 남아있는 참가자들을 응원하고, 일대일 경기에서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상대가 아닌 비슷한 체급의 상대를 지목하면서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모습이 감동을 안겼다. 여성 출연자를 지목해 가슴을 누른 일부 남성 출연자가 논란을 빚었으나 대부분 참가자가 건강한 경쟁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려 애썼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이긴다는 공식은 '피지컬: 100'에는 없다. 오래 매달리기 게임에서는 산악구조대 출신 참가자가 1위를 차지했다. 3분 일대일 게임에서도 보통 체격의 체육교대생 출신 참가자가 승리했다.
'스포츠 정신'으로 여운을 안긴 추성훈·신동국의 매치도 인상적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종격투기 선후배인 두 사람이 일대일 공 빼앗기 시합 도중 종합격투기 MMA 룰을 적용해 겨룬 장면이다. 장 PD는 "예상을 엎은 승부들이 몸에 대한 편견을 깼다"고 자평했다. 이어 "어떤 출연자가 올라갈지 우리 예상을 깨주길 바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촬영하면서 몸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동원된 카메라만 200대 이상. 축구장 2배가량의 촬영장이 마련됐다. 제작진은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왜곡 없이 전하려 노력했다. 장 PD는 "예능적 자막을 최대한 줄이는 대신,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나 부풀어 오른 근육 등 핵심이 되는 몸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성대결 논란' 의도·남 탓…아쉬운 제작진
예능 콘텐츠인 '피지컬: 100'은 매주 2회차씩 공개하는 방식을 차용했다. 제작진은 1~2회가 공개된 후 지난달 28일 유튜브 채널에 3~4화 선공개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남성 참가자 박형근이 여성 참가자 춘리를 지목해 대결하며 무릎으로 가슴(명치)을 누른 기술인 니온벨리를 사용한 것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를 본 다른 여자 출연자들은 "가슴! 가슴!"이라고 외쳤고, 박형근은 여자 출연진들을 향해 입에 지퍼를 채우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말하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의미였다. 또 다른 남자 출연자들은 "그 형은 피도 눈물도 없다. 무자비하다"고 손가락질했다.
거액의 상금이 걸려있다고 하나, 남성이 여성 출연자를 지목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는 비난과 동시에, 대결이었음을 고려해도 방송에서 여성의 가슴을 누른 것은 또 다른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춘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당한 대결이었으며, 도발적 언행도 예능을 위한 장치였다고 두둔했다. 젠더적 논박에 불편한 심경도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제작진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 방식을 차용한 것은 경솔했다는 반응이다. 특히 다음 회를 예고하는 선공개 영상에 이를 편집해 내보낸 것은 젠더 갈등을 유발한 노이즈 마케팅을 위한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시선이 이어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여성 출연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듯한 발언도 문제로 지적됐다. 장 PD는 "모든 출연자에게 설명하고 동의하신 분들에 의해서만 경기가 진행됐다"며 "언제든 출연자들은 경기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세한 내용은 춘리 선수가 직접 SNS에 게재한 내용을 참고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선수 개인에게 떠넘겼다.
연출자의 발언 이후 춘리는 더욱 고통받아야 했다. 춘리는 SNS에 "제 사진을 올리고 특정 부위를 확대해서 성적 수치심이 드는 댓글을 달리게 했다. 비참한 느낌이었고 수치심에 멍해졌다. 당신 같은 남자들에게 당신들의 엄마나 딸이 성희롱당할 수도 있다. 제발 좀 생각 좀 하고 살아라"고 토로하며 법적 대응 하겠다고 밝혔다.
관련주 상승에 제작 여부 둘러싼 갈등
종합 콘텐츠 기업 아센디오와 루이웍스가 '피지컬: 100' 제작 참여를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아센디오는 지난달 27일 제작에 참여했다고 밝히며 주가가 15% 급등했다. 그러자 루이웍스미디어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아센디오는 8일 다시 입장을 내고 "지난해 2월 24일 루이웍스미디어(이하 루이웍스)와 기획개발 투자 계약서를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아센디오가 ‘피지컬: 100’ 기획?개발에 참여하고, ‘피지컬: 100’의 공동제작사로서 크레딧에 아센디오의 상호를 명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루이웍스는 이러한 계약 사항을 지키지 않은 채 아센디오의 투자가 철회된 상태라며, 개발비 미반환 건은 아센디오 측에 성실히 보고해 왔기 때문에 고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센디오 관계자는 "루이웍스는 일방적으로 계약사항을 위반하고, 투자금을 미반환하는 등 계약상 채무불이행 상태이다. 아센디오는 루이웍스의 하자 치유 및 성실한 계약이행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으로 해지권한도 아센디오에 있어 현재 계약은 유효하다"며 "루이웍스 측이 동의한다면 관련자료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했다.
반면 루이웍스는 "'피지컬: 100'은 mbc 와 루이웍스미디어가 공동으로 제작했으며 아센디오는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센디오는 루이웍스미디어에 초기 기획비 투자를 했다 현재 계약해지 건으로 소송진행을 앞두고 있으며 MBC가 1월 30일 아센디오에 해당 공문과 내용증명을 전달했다"고 반박했다.
코로나19 이후 파생된 새로운 시청 형태
논란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은 분명 있다. 그런데도 '피지컬: 100'은 왜 인기일까.
한 제작 관계자는 "최근 연애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방영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며 "현실 연애는 싫고 영상을 통해 대리 설렘을 충족하려는 시청자들의 기호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지컬: 100'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생된 대리만족의 일종"이라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진 시청자들의 새로운 시청 형태"고 바라봤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건강한 신체에 대한 본능적 갈망과 맨몸으로 벌이는 원초적 대결을 시청하며 대리만족과 욕구 해소를 충족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한 긴장감 속 승자와 패자가 발생하는 대결 구조 자체로 충분히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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