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반전] 슬리퍼 신고 혼례 미사한 신부님, 이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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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편집자말>
[왕언경 기자]
주례사는 남편의 오랜 로망이었다. 대학에서 25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남편은 제자들이 청첩장을 들고 찾아올 때마다 혹시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온 게 아닐까 했지만 그 기대는 번번이 빗나갔다. 남편은 자기가 주례사를 하면 꽤 괜찮게 할 거 같은데, 아이들이 자기를 못 알아봐 준다며 투덜거렸다.
남편은 결혼식에 주례를 서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의 연륜과 삶의 지조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발단은 본인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남편과 나는 서울의 한 작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성당에서 미사 형식으로 결혼식을 하다 보니 주례는 당연히 신부님이 맡게 되었다. 우리는 결혼식이니만큼 나이가 지긋한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해 주시기를 은근히 바랐더랬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결혼식 당일에 마주한 신부님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나와 남편보다도 훨씬 앳돼 보이는 신부님이셨다. 게다가 그분은 어쩐 이유에선지 큼지막한 슬리퍼를 신고 계셨고, 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분의 말씀이 아닌 슬리퍼가 왔다 갔다 했던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신랑신부의 앞날을 위한 덕담은 인생의 선배로서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이 아닌, 성경의 어느 한 구절을 인용한 전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신부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에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슬리퍼도 있었겠지만, 신부님의 앳된 얼굴과 소년 같은 목소리도 선입견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남편은 자신이 나이가 든 후 누군가의 주례를 맡게 된다면 근엄하게 차려입고 자신의 신조가 담긴 생생한 생활 이야기를 멋진 덕담으로 들려주겠노라고 노래를 불렀다.
▲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결혼식 당일에 마주한 신부님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나와 남편보다도 훨씬 앳돼 보이는 신부님이셨다. |
ⓒ elements.envato |
남편이 나이 들어가는 사이 결혼식 주례 문화도 많이 바뀌어갔다. 존경하는 은사님이나 사회적 명사를 주례로 세우는 대신 주례 없이 사회자의 진행만으로 식을 진행하기도 하고, 혼주 중 한 명 또는 양가에서 대표로 한 명씩 축사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주례 풍습이 달라지다 보니 제자들의 주례를 서보겠다는 로망은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대신, 마지막 남은 히든카드로 아들의 결혼식 축사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여름, 남편의 이 기대감이 결심으로 확고해지는 계기가 왔다. 바로 처조카의 결혼식을 보고 난 후였다. 양가 부모를 대표하여 신부의 아버지(남편에게는 윗동서가 되는)가 축사를 읽는 모습을 보더니 기대감에 고무된 것이다.
식이 끝나고 인사하는 자리에서 남편은 형부에게 축사를 참 잘하신다는 둥, 결혼식 주례 경험이 많으신가 보다는 둥 실없이 칭찬을 늘어놓으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지난가을, 큰 아이가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남편은 결혼식 날짜도 식장도 아직 못 정했다는 아이에게 대뜸 축사는 누구에게 맡길 거냐며 다그쳤다. 눈치 빠른 아이는 그것쯤이야 아빠의 그토록 오래된 로망인데 못 들어 드릴 것도 없다면서 쿨하게 아빠에게 맡기겠노라고 부추겼다.
갑작스레 결정된 결혼식이라 식장 선택부터 상견례 일정이 바쁘게 진행되었지만, 남편은 오로지 자신이 낭독하게 될 축사 원고를 완성하는 데 열을 올렸다. 3교에 4교, 5교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축사 원고에 남편은 물론 교정을 봐줍네 하고 들여다본 나까지 거의 다 외울 정도로 공을 들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혼식 당일, 난생처음 결혼식 단상에 선 남편은 살짝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그럴듯한 속도감에 하객들에게 눈길도 한 번씩 주면서 부드럽게 원고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원고가 절반쯤 이어질 무렵, 남편의 말이 갑자기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목이라도 메이는 듯 떠듬거리며 나머지 절반의 원고를 3분의 1로 축약하듯이 결말을 지어나갔다. 내가 알고 있던 원고의 내용과 비슷하긴 했지만 어쩐지 이가 듬성듬성 빠진 것처럼 어설프게 느껴졌다.
▲ 남편은 울컥해서 원고를 못 읽은 게 아니라 눈이 안 보여서 못 읽고 떠듬댔다. |
ⓒ elements.envato |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객들은 아들을 장가보내는 아빠가 울컥하는 마음에 감정이 격해졌나 보다 하면서 마치 감동이라도 받은 듯 잔잔하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남편은 갑자기 아들의 완전한 독립에 서운함을 느끼는, 사랑 가득한 아빠의 모습으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아뿔싸, 안경을 안 꼈더니 글씨가 잘 안 보이잖아. 거의 다 외웠는데, 후반부터는 아예 생각이 안 나는 거야. 허허."
옆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속삭이는 남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편은 울컥해서 원고를 못 읽은 게 아니라 눈이 안 보여서 못 읽고 떠듬댔던 것이다. 그동안 남편은 너튜브에 떠도는 부모들의 자녀 결혼식 축사 동영상을 보면서, 자기가 얼마나 그들보다 잘 할 자신이 있는지 누누이 어필해왔었다.
그런데 막상 단상에 올라서는 노안에다 초고도근시 상태의 시력에 발목이 잡혔다. 예식이 저녁 6시 30분에 치러지면서, 축사 원고가 희미한 조명 아래에 놓일 거라는 예상은 우리 둘 다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30여 년 전 우리의 혼례 미사를 집전했던 젊은 신부님이 슬리퍼를 신고 혼례 미사를 집전했던 일도 어쩌면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신랑신부와 엇비슷한 연령대이다 보니 인생 선배로서의 진국 같은 덕담은 힘들었겠지만, 성서에 적힌 좋은 말씀 중 하나를 골라 또박또박 잘 전달했을 것이다.
그 말씀에 집중하지 못했던 남편과 나의 태도에는 부끄러운 선입견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말의 무게를 연륜이나 보이는 외견으로 가르려는 선입견이다. 그때 신부님의 큰 슬리퍼와 허둥대는 모습에 거슬려 하기 보다, 우리의 앞날을 위해 성서의 어떤 구절을 인용해 주셨는지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그때 아빠가 들려준 덕담보다는 읽다가 울컥해 보였던 그 모습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지. 30년 전의 우리보다는 조금 낫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희망사항'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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