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알파고 이후 7년

김철오 2023. 2. 1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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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AI)이 이토록 사랑을 받을 줄 알았다면, 이미 은퇴해 바둑계를 떠난 ‘알파고’에게 조금은 서운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7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2016년 3월 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프로바둑 기사였던 이세돌 9단과 첫 대국을 펼친 구글 딥마인드 AI 알파고는 인간의 공포 어린 시선을 받았다.

대국 초반만 해도 특별할 게 없던 알파고는 중반부터 종잡을 수 없는 수를 두기 시작했다. 그중 136수가 많은 뒷말을 남겼다. 이세돌은 우하귀 주변 127수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알파고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우하귀의 주도권을 낚아채지 않고 136수에서 우상귀로 집을 옮겨 지었다. 중계방송 해설자들은 이때 “알파고가 두 집가량 손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알파고의 백집은 점차 세력을 불렸다. 바둑 알고리즘이란 결국 인간의 4000년 바둑사에 남은 기보의 모작이다. 알파고는 그 그림을 침착하게 그려나갔고, 이 과정에서 이상하게 허점을 줄였다. 결국 알파고는 186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인간에게 패배감보다 깊숙이 파고든 건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맞닥뜨린 공포였다. 복기 과정에서 누구도 알파고의 수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특히 136수를 놓고서는 “이세돌에게 미끼를 던져놓고 반응을 살핀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당시 중계방송 해설자였던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정밀한 계산으로 확실한 길을 가는데, 인간의 눈에 실수로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알파고는 이세돌과 5국까지 이어진 대국에서 최종 전적 4승 1패로 승리했다.

해롭지 않게 짜릿한 전율 선에서 찾아온 알파고의 공포는 되레 AI의 활용 가치를 알리는 수단이 됐다. 알파고의 수많은 ‘후손’들이 인간의 삶으로 파고들었다. AI는 가장 가까운 택시를 찾아 불러왔고, 식당가와 주택가 사이를 연결하는 배달 일자리를 창출했다. 질병을 발견했고, 약물 과다복용을 억제했다.

하지만 AI는 치명적인 단점을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AI는 SNS와 동영상 플랫폼에서 클릭의 알고리즘으로 이용자를 편향적 사고에 가둬 서로 다른 의견을 밀어내도록 유도한 주범이기도 하다. 딥마인드 AI 등장 이후 선거마다 거의 절반으로 나뉜 여론에서 박빙의 승부가 벌어진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일부 공학자들은 경고한다.

플랫폼에서 인간과 알파고의 후손들이 허둥거리며 살아가는 동안 AI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뤄냈다. 몇 가지 단어만 제시하면 수백장의 그림을 그려내고 그럴싸한 문장을 나열하는 AI가 등장했다. 미국 스타트업 오픈AI에서 지난해 11월 상용화된 대화형 AI ‘챗GPT’는 열광에 가까운 반응을 끌어냈다.

대학생의 논문, 자영업자의 상품 설명, 구직자의 자기소개서를 척척 써내는 챗GPT는 미리 짠 각본대로 답하는 기존의 챗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언어 구사력을 지녔다. 특히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에서 검색엔진보다 유용하다는 평가를 얻었다. 검색엔진의 경우 나열된 정보를 이용자가 직접 고르고 검증해야 하지만, 챗GPT는 가장 정확한 결과물을 문장으로 서술해 펼쳐낸다.

챗GPT의 진가는 수학 공식이나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복잡한 언어에서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검색엔진에 입력하기도 어려운 삼각함수 문제를 챗GPT에 ‘코사인의 제곱 B 더하기 사인의 제곱 B의 값’이라고 구술하듯 입력하면 ‘cos²B+sin²B’라는 공식이 나열되고 ‘1’이란 정답을 얻을 수 있다.

알파고와 챗GPT 사이의 7년 동안 AI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도 달라졌다. 이미 숱한 AI를 경험한 인간은 챗GPT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대신 의미 있게 활용할 방법을 함께 찾고 공유한다. AI의 ‘알 수 없는 무언가’는 기대와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기업은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간다. 오픈AI에 100억 달러(약 12조원)를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7일 자사 검색엔진 ‘빙’에 챗GPT를 장착했다. 구글은 그 하루 전 “대화형 AI ‘바드’를 수주 안에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경쟁은 성장을 수반할 게 분명하다.

챗GPT에 “바드보다 나은 점을 알려 달라”고 물었더니 “훈련 규모, 자연어 처리 기능, 유연성”의 세 가지를 앞세웠다. 이제 바드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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