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줄고 외풍 불고… 위기에 ‘대안’ 없는 대안학교

조효석 2023. 2. 1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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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풍조 심화·학령인구 감소에
지원 위해 마련된 법률에 틈까지
지자체·교육청 서로 책임 떠넘겨
단체장 성향 따라 지원 예산 삭감
불이학교 재학생과 입학 예정 청소년들이 지난달 12일 경기도 고양에 있는 학교 교실에서 신입생 환영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다. 교사의 진행에 따라 초성으로 단어 맞히기 게임을 하는 중이다. 몸짓 보고 단어 맞히기 등 다른 게임까지 마친 아이들은 점심으로 피자를 먹은 뒤 교사와 함께 볼링장으로 향했다. 고양=최현규 기자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지난달 중순 경기도 고양의 한 건물이 떠들썩했다. 적게는 열넷에서 열일곱 나이 아이들 20명 남짓이 모여 편을 나누는 소리다. 아이들은 몸짓으로 어느 동물을 묘사하면, 같은 편에서 이를 맞히는 게임이 이어졌다. 깔깔거리며 박수 치고 웃는 아이들 곁에서 어른들도 함께 웃었다. 올해로 설립 15년째인 대안학교 ‘불이학교’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다. 목적은 입시설명도 커리큘럼 안내도 아닌 ‘친해지기’다.

즐거운 오리엔테이션이지만 행사 뒤 만난 교장 ‘토토’(예명) 선생님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이날 새로 온 입학 예정 학생은 8명. 기존 재학생과 합해도 23명에 그치는 현실 때문이다. 처음 불이학교 교사 일을 시작할 당시 80명이 넘던 학생 수는 이제 4분의 1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까지 대폭 줄었다. 토토 선생님은 “변화의 시기를 맞은 건 확실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초의 대안학교라 불리는 간디학교가 1997년 창설된 이후 수백개 대안학교가 문을 열었다. 입시 경쟁으로 얼룩진 공교육의 한계를 넘어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근래 들어 대안학교들이 시련을 맞고 있다. 사회 전반에서 심화된 경쟁 풍조와 학령인구 감소 등이 주요 이유지만, 대안학교 지원을 위해 새로 마련된 법의 틈새로 정치적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더는 힘들다”

2007년 ‘대안학교법’이 통과된 이래 대안학교제도는 ‘인가제’로 운영돼 왔다. 교육부가 인가한 대안학교만 재정 지원과 학력 인정을 하는 체계다. 그러나 건물 소유 여부나 교원자격 소지 비율 등 까다로운 기준 탓에 이달 기준 50개 학교가 인가받는 데 그쳤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미인가 대안교육기관은 정부 조사에 응한 곳만 해도 273개에 달했다. 인가 비율이 20%를 밑도는 셈이다.

지난해 시행된 대안교육기관법은 이들 미인가 교육기관을 법 테두리 안으로 끌어안는 데 목적을 뒀다. 최소 요건만 갖추면 시·도교육청에 ‘등록’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지자체 조례 등으로 산발적 지원을 하던 데서 나아가 더 체계적인, 법에 근거한 지원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등록한 대안교육기관에는 ‘학교’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쓰도록 유인책도 뒀다. 지난달 기준 미인가 대안학교 180개가 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지자체별 상황이 달라 혼란이 벌어졌다. 새 법은 대안교육기관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담당할 주체를 규정하지 않아 해석에 회색지대를 남겼는데, 이는 일부 지자체가 지원을 중단하고 시·도교육청에 책임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등록을 받는 주체가 교육청이니 재정 지원도 교육청이 맡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말라가는 대안학교

지자체장의 성향과 의지에 따라 여러 대안학교들이 흔들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이다. 기존에 서울시는 전임 박원순 시장이 도입한 ‘서울형 대안교육기관’ 제도를 운용해 왔다. 미인가 대안교육기관들로부터 신고를 받아 일부를 서울형 대안교육기관으로 전환해 임대료와 인건비, 프로그램 개발비 등을 지원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취임 뒤 대안교육기관법을 이유로 관련 예산을 95% 깎겠다고 나섰고, 지원 조례도 의석 구도가 바뀐 시의회에서 폐지됐다.

반발이 일자 서울시는 결국 지난해 86억원이던 해당 예산을 70억원으로 줄여 지방교육경비 보조금으로 서울시교육청에 내주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서울형 대안교육기관에서 제외될지 모른다는 우려 탓에 아직 교육청에 등록하지 않은 대안교육기관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달까지 등록을 받은 뒤 빠르게 사업을 진행해도 4월 말에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 이전엔 지원도 없다는 뜻이다.

불이학교가 소재한 고양은 사정이 더 나쁘다. 현 시장 집권 이후 기존 예산 2억원을 5000만원까지 깎았다가 반발이 일자 9800만원까지만 복구했다. 이마저도 올해까지일 뿐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경기도교육청만으로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 한계가 있어서다. 이외에 광주, 인천 등 전국 지자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갈등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문 닫는 곳이 속출할 수 있다.

‘삐져나온’ 아이들을 위해

교육 당국은 우선 지자체와 시·도교육청 간 협조를 유도하는 한편 다른 방식의 지원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밖청소년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와 협조해 대안교육기관에 다니는 청소년을 지원하는 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지원 주체를 국가와 지자체로 규정하는 대안교육기관법 개정안도 지난해 8월 국회에서 발의된 상태다.

16세 조수아양은 지난해 중학교를 자퇴해 불이학교에 왔다. 스스로가 공교육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수학 문제를 푸느라 엄두도 못 내던 수아양이 글쓰기, 중국어 등 하고 싶던 공부를 이곳에서 마음껏 한다고 했다. 학교 책장엔 수아양이 글쓰기 수업 때 쓴 글을 모아 낸 책도 꽂혀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매주 목요일에 하는 ‘스트레스 관리’ 수업이다.

수아양과 같이 여전히 대안학교가 필요한 청소년들이 많다. “모든 학교가 아이들이 줄어 힘들어하죠. 경쟁이 심해진 세상에서 다른 길을 가는 게 더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고요.” 토토 선생님은 말했다. “그렇더라도 공교육 시스템이 담아내지 못한 친구들은 있게 마련이에요. 그 친구들을 보살피는 게 대안학교고요. 공교육만큼은 아니더라도, 국가가 다른 기준을 갖고 일정 수준의 지원을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고양=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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