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선 169석 巨野

이동환 2023. 2. 11.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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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야당 ‘장외투쟁’의 역사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윤석열정부의 ‘야당 탄압’으로 규정한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지난 4일 장외투쟁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운동’ 이후 6년여 만이다. 야당의 장외투쟁은 집권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정국 돌파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국회 내에서 더 이상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거리로 나가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정권을 압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장외투쟁은 ‘여대야소’의 국회 상황에서 야당에 정치적 선택지가 거의 없을 때 단행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의 이번 장외투쟁은 그간의 장외투쟁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朴 탄핵’ ‘드루킹 특검’ 투쟁이 대표적

야당이 거리로 나간 목적을 달성하고 국회로 돌아온 대표적 성공 사례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과 2018년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특검 촉구 투쟁’이 꼽힌다. 2016년 총선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승리한 민주당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고리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와 관련한 각종 의혹과 K스포츠·미르재단 의혹 등이 잇따르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을 메웠다. 결국 국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2018년 홍준표 대표가 이끌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2017년 대선에서 불거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전 대선 때 보수진영의 댓글조작 의혹을 강하게 주장했던 민주당 쪽에서 댓글조작 사건이 발생하자 비난 여론이 끓어올랐다. 이에 힘입은 자유한국당은 특검 관철이라는 성과를 얻고 국회로 돌아왔다.

2008년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와 2019년 자유한국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 투쟁’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례다. 전자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라는 결과물을 얻었고, 후자는 조 장관이 자진사퇴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들 장외투쟁이 성공을 거둔 것은 폭넓은 국민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근혜·최서원 국정농단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 국민의 공감대가 있었다. 그건 드루킹도, 미국산 쇠고기도 마찬가지”라며 “민주주의적인 규범이나 가치, 일반적인 정치 수준이나 상식에 비춰볼 때 지지할 수 있는 이슈를 제시해야 장외투쟁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거리로 나간다고 항상 이기는 건 아냐

야당이 거리로 나간다고 민심이 항상 따라와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풍을 맞고 돌아온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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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과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을 비판하며 서울광장에 천막을 쳤다. 하지만 ‘야당이 국정운영의 발목만 잡는다’는 비판 여론이 일면서 당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결국 당시 김한길 당대표는 천막당사 설치 54일 만에 “조건 없이 등원하겠다”며 장외투쟁을 접었다.

보수정당의 실패 사례도 있다.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 시절인 2019년 4월 여당(민주당)이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자 한 달여간 장외집회를 벌이며 반발했지만 이들 법안의 처리를 막지 못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최근 보수·진보의 ‘양극단 정치’가 더 강화되면서 정치적으로 다급하거나 초조할 때 지지층과 당 내부 결집을 통해 세를 과시하려고 장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국민이 양극단 정치에 진절머리가 나 있는 상황에서 명분이나 실력이 없이 투쟁만 외친다면 동정표를 얻기는커녕 역효과만 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거대 야당’ 장외투쟁을 바라보는 시선

169석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이번 장외투쟁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민주당은 ‘검찰 독재’ ‘야당 탄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커질 것이란 기대를 안고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중도층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는 국회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 민주당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정부에 끌려가기만 하면 불리하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회 다수당의 장외투쟁이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독재 권력에 대한 투쟁은 국민의 환영이나 지지를 얻었지만, 현 정부에 대해 독재라고 명명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점한 정당이 거리로 나가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의회 제도는 물론이고 사법 제도까지 부인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1987년 이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정치 탄압’ 프레임으로 물타기하려는 정치공학적 논리에 의해 장외투쟁을 한다는 건 그야말로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내홍을 잠재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분석도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여야 간 정치적 내전 상태에서 검찰까지 동원한 정부·여당의 압박 공세에 대응하려면 남은 선택지는 강력 투쟁밖에 없다”며 “안으로는 비명(비이재명)계가 공천권 사수를 위해 당을 흔들 텐데, 민주당으로선 중도층의 마음을 얻는다기보다 지지층이라도 결속하자는 생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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