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내전·전염병 삼중고 덮친 시리아..“모든 구호 물자 정부 통해라”
지난 6일(현지시간) 발생한 대지진으로 튀르키예(터키)·시리아 양국의 9일 누적 사망자 수는 2만1000여 명. 이 가운데 튀르키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의 사망자는 3377명이다.
그러나 미국 CNN은 9일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구조 상황은 딴판”이라고 보도했다. 튀르키예엔 전세계 수십여 개 국가와 국제 기구들이 구조팀을 파견하고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매체는 “그러나 12년 간 내전을 치러온 시리아는 정부와 반군이 통제하는 지역이 달라 정확한 인명 피해 집계는 물론 구호 활동도 원활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번 강진으로 피해를 입은 시리아 서북부 알레포·하마 지역엔 400만 명이 살고 있어 피해가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다.
CNN은 “특히 시리아인들은 이번 강진 이전에도 내전으로 인한 빈곤에 시달렸고, 최근엔 콜레라까지 유행해 고통받고 있었다”고 했다. 시리아엔 지진·내전·전염병 삼중고가 덮친 셈이다.
더욱이 서방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는 “반군 쪽에 구호 물품이 전달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파이살 메크다드 시리아 외교부 장관은 “(시리아 정부를 향한)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구호가 원할하지 못하다”면서도 “국제사회의 모든 원조는 수도 다마스쿠스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UN OCHA)의 구호 물품을 실은 수송대는 9일에서야 시리아·튀르키예 간 유일한 인도적 교류 루트인 ‘밥 알 하와’ 지역을 통과했다. 식량을 제외한 방한 용품 등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 6대로, 지진이 발생한지 72시간 만에 처음으로 국제기구의 구호 물품이 시리아 땅을 밟았다.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은 지난 시점이었다. UN의 가이어 페데르센 시리아 특사는 “시리아로 향하는 원조가 막히거나, 정치화 되지 않도록 보장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리아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지역은 ‘하얀 헬멧’으로 불리는 민간 구조대가 열악한 장비에 의존해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진 첫날인 6일 알레포의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엄마의 탯줄을 단 채로 발견된 신생아도 하얀 헬멧이 구조했다. 부모와 네 형제자매들은 모두 사망했다. ‘아야(Aya·아랍어로 기적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이 여자 아이가 입원해 있는 알레포의 병원에는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문의가 수천 건 몰렸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민간 구조대가 한 소년을 건물에서 구조하자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환호하는 시리아인들의 영상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번지기도 했다.
시리아는 취재진의 접근이 자유롭지 못해 현지 상황이 외부로 잘 알려지지 못하고도 있다. 알레포의 구조 상황 등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하고 있는 현지 사진작가 카람 켈레흐는 미 공영 NPR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가옥이 많이 무너졌고 영하권의 추위가 이어지고 있는데, 국제 구호단체는 대지진이 발생한지 72시간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각국이 섣불리 구호팀을 파견하지 못하는 데는 복잡한 시리아 제재 문제도 얽혀 있다. 지진 이전에도 시리아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인접국을 통한 인도적 지원’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시리아 정부는 “이 기회에 서방의 제재를 풀어라”고 압박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제재는 재난 구호 등 인도적 지원은 예외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이번 대지진으로 사망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서 튀르키예에선 병원 주차장마저 시신 안치소로 사용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시리아 접경 지역인 남부 하타이의 한 병원은 밀려드는 사망자를 안치할 곳이 없어 병원 주차장의 포장 도로에 시신 수백 구를 두고 있다.
NYT에 따르면 주차장은 흰 천과 담요 등으로 덮인 시신들과 이들 가운데서 실종된 가족을 찾으려는 유족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다. 유족들은 연이어 들어오는 시신 가방을 일일이 열어가며 가족을 찾고 있다고 한다.
형제와 1·3살 조카 등을 한꺼번에 잃었다는 메흐메트는 NYT에 “고인의 친인척들은 시신 가방을 열어가며 끔찍한 광경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카라만마라슈주에서는 수백 명을 매장할 수 있는 공동 묘지가 급조되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사망자를 한꺼번에 매장하기 위해 숲 외곽에 굴착기들이 긴 도랑을 파고 있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아인, 소변검사서 대마 양성 반응 나왔다…프로포폴은 음성 | 중앙일보
- 장모에 필로폰 강제투약 후 성폭행도 시도한 40대 '패륜 사위' | 중앙일보
- 쇼트트랙 20년 '막장 싸움'…똑같이 최강인데 조용한 양궁 비결 | 중앙일보
- 동생 보험금으로 몰래 빌라 산 뒤…'박수홍 친형' 그법 내민 형 | 중앙일보
- 아기곰, 아파트서 젖병 물려 키웠는데…60대 부부 참극 뒷이야기 | 중앙일보
- 입주권 '100억원'에 팔린 반포 이 아파트…입지 어떻길래 | 중앙일보
- 아빠 김정은 얼굴 '쓰담쓰담'…딸 김주애 행동에 숨은 신호 | 중앙일보
- 벼랑 끝 이수만, 방시혁 손잡다…하이브-SM 지분인수 막전막후 | 중앙일보
- 남편 만삭화보 공개했던 성전환 부부…놀라운 근황 전했다 | 중앙일보
- 1000억짜리 '산림대전환 프로젝트'...산불로 초토화된 울진의 역발상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