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재난 본 적 없다"…무너진 건물 밑에 갇힌 사람 20만명
튀르키예(터키)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크게 늘고 있다. 9일(이하 현지시간) 누적 사망자 수는 2만1700명을 넘어섰다. 현지에서 무너진 건물 잔해물 밑에 갇힌 사람이 최대 20만명에 이를 거라는 추정이 나오는 만큼 인명 피해 규모가 앞으로 더 확대될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AFP통신과 미국 CNN 방송 등에 따르면 9일 기준 튀르키예의 누적 사망자 수는 1만8342명에 이른다. 튀르키예 남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에서는 사망자 수가 3377명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지진 발생 나흘째인 이날 기준 튀르키예ㆍ시리아 양국의 희생자 수는 2만1719명에 이른다. 이는 과거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인명 피해 규모(1만8500명)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로이터통신은 21세기 들어 7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낳은 자연재해로 기록됐다고 전했다. 양국의 부상자는 7만8000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피해자가 상당 폭으로 더 늘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튀르키예 지진 과학자인 오브군 아흐메트는 지진으로 붕괴한 건물 잔해물 등에 갇힌 사람들이 2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는 이런 재난을 본 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 등으로 인한 매몰자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인 ‘골든타임’은 72시간 이내라는 게 전문가들의 통설이다. 일란 켈만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재난보건 교수는 “지진 생존자 90% 이상이 72시간 이내에 구조됐다”며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눈과 비를 동반한 영하의 날씨 탓에 건물 잔해에 갇힌 사람들이 저체온증 등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10일 펴낸 보고서에서 이번 지진 사망자가 10만명 이상이 될 가능성이 24%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 8일 14%로 예상했던 것에서 10%포인트 올린 셈이다. USGS는 사망자가 1만~10만명일 확률은 30%에서 35%로 올려 잡았다.
골든타임은 지났지만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려는 사투 끝에 기적 같은 생환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AP통신ㆍAFP통신 등에 따르면 튀르키예 안타카야의 한 건물 잔해 속에 갇혀 있던 16세 멜다 아드타스가 80시간 만에 구조됐다. 잔해 깊숙한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아드타스의 목소리에 구조대는 장애물을 조심스럽게 제거하며 구조에 나섰다. 5시간 만에 밖으로 나온 아드타스의 온몸은 멍투성이였고 추위에 떨었지만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현장 주변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아드타스의 아버지는 그제서야 “우리 딸! 우리 딸!”이라고 외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숨죽이며 현장을 지켜보던 주민들도 동시에 환호성을 터뜨렸다고 한다.
또 10일 새벽에는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의 붕괴 건물 지하실에서 17세 아드난 무함메드 코르쿳이 이 사고 발생 후 94시간 만에 구조됐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셔가며 버텼다.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구조된 아드난은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의 모친을 껴안았다.
앞서 지난 9일 오후 3시 5분 아디야만에서는 6개월 아기가 붕괴된 아파트에 갇힌 지 82시간 만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안타키아에선 2세 아기가 79시간 만에 구조됐다.
지진 피해자 구조를 위해 현지에 급파된 한국 긴급구호대(KDRT)도 활동 첫날인 9일 5명을 구조했다. 70대 중반 남성, 40세 남성과 그 딸인 2세 여아, 35세 여성, 10세 여아 등이다. 다만 외교부는 “10일 오전 9시(한국시간 10일 오후 3시) 기준 한국 긴급구호대가 추가로 구조한 사람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7일 군 수송기를 동원해 긴급구호대 118명을 튀르키예에 급파했다. 정부가 해외에 보낸 긴급구호대 중 단일 파견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튀르키예 당국은 이날 기준 총 11만명 이상의 구조 인력과 중장비 5500여대를 동원해 구조작업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56개국에서 파견된 6479명의 해외 구호대도 구조를 돕고 있다.
집을 잃고 임시 거처에서 지내고 있는 튀르키예 이재민은 75만명을 넘겼다. 이들은 영하의 추위 속에 자동차와 임시 텐트 등에서 머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이번 강진의 악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전체 규모가 약 2300만명일 것이라고 추산했다.
가까스로 구조된 이들도 상당수가 추위와 기아, 질병 등 2차 피해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WHO의 지진 대응 담당자 로버트 홀든은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서 “많은 생존자가 끔찍하게 악화하는 상황 속에 야외에 머물고 있다”며 “물과 연료ㆍ전력ㆍ통신 등 생활의 기본이 되는 것들의 공급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최초 재해보다 더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2차 재해가 발생할 실질적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의 지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국제개발처는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8500만달러(약 1075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현지에서 구호 활동을 돕고 있는 인도주의 봉사단체 ‘하얀 헬멧’에 총 380만 파운드(약 58억 원)를 지원한 영국은 시리아 북서부 구조 및 구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로 300만 파운드(약 46억 원)를 보내기로 했다고 CNN이 전했다. 프랑스는 시리아에 1200만 유로(약 163억 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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