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조민과 정유라, 누가 더 억울한가

김경택 2023. 2. 10.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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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과 정유라, 누가 더 억울할까." 괜히 주변에 물었다가 "굳이 가릴 필요 있느냐"는 답을 들었다.

땀 흘려 메달을 딴 건 사실이니 자신이 더 억울하다는 주장이었다.

"누가 더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결정하기는 어렵다. 이와는 별개로 두 사건 모두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의 족벌주의(nepotism)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대중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같은 기간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41.4%에서 29.3%로, 감소폭이 더 가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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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택 경제부 차장


“조민과 정유라, 누가 더 억울할까.” 괜히 주변에 물었다가 “굳이 가릴 필요 있느냐”는 답을 들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는 최근 유튜브에서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했다. 또 “제 점수는 충분했고 어떤 것들은 넘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허위서류 제출 등을 이유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됐지만 ‘허위 스펙’ 없이 입학 가능한 점수를 확보했었다는 취지다. 그러자 최서원(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는 “내 승마선수 자질은 뭐가 부족해서…”라며 발끈했다. 정씨는 이화여대 면접 당일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있으니 뽑으라’고 면접위원들에게 말한 대학 관계자 등의 도움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입학이 취소됐다. 땀 흘려 메달을 딴 건 사실이니 자신이 더 억울하다는 주장이었다.

입학 비리 혐의의 경중을 가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어떤 질문에도 그럴듯한 답을 내놓을 것 같은 챗GPT를 활용했다. ‘어느 케이스가 더 불공정(unfair)한지에 대한 글’을 써보도록 했다. 인공지능(AI)이 순식간에 작성한 글은 “두 사건은 매우 논란이 많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수준의 공개 조사를 받았으므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원론적인 말로 시작했다. 그나마 흥미로운 결론은 이랬다. “누가 더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결정하기는 어렵다. 이와는 별개로 두 사건 모두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의 족벌주의(nepotism)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대중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입학 비리 사건은 당사자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AI도 잘 알고 있다. 권력과 가까워 부족함을 찾기 어려웠던 두 사람의 스펙 쌓기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갑자기 치워버린 듯한 허망함을 남겼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노력한다면 본인 세대에서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2011년 32.2%에서 2021년 25.2%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41.4%에서 29.3%로, 감소폭이 더 가팔랐다.

이런 인식은 중산층 신화를 위협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우리나라 중산층의 현주소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동성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감소세를 보였다. 사람들의 소득 변화 수준을 측정한 지표가 내려간 건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올라가기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한다. 중산층(중위소득 50~150%) 비중은 2011년 54.9%에서 2021년 61.1%로 확대됐지만 이는 좀 부풀려진 수치였다. 개인 소득뿐 아니라 연금과 지원금 등 정부의 이전지출까지 포함한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중산층 규모를 계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령층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중산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반면 취업 빙하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의 계층 이동 의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꺾일지 모른다. 팍팍한 현실과 노력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인식은 중산층 진입의 벽을 더 높게 쌓을 수 있다. 게다가 불공정한 사회 현실은 부동산 투자 광풍을 동반했던 코로나 확산기를 거치면서 더 척박해졌다.

KDI 보고서는 중산층 강화 과제를 제시하면서 “공교육의 내실화를 통해 중산층의 사교육비 부담 경감과 함께 보다 본질적으로 교육이 계층 대물림의 통로가 아닌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로 질세라 억울함을 호소하는 조씨와 정씨의 모습을 보면서 비현실적 개혁 과제라도 제대로 추진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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