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치킨 게임…‘게임의 룰’이 바뀐다

임상균 매경이코노미 기자(sky221@mk.co.kr) 2023. 2. 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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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칼럼
美→日→韓으로 넘어온 반도체 패권 전쟁
기술·투자·가격으로 상대 주저앉힌 결과
이젠 ‘3강 과점’…무모함보다는 실리 우선
경영학의 유명한 이론 중 하나가 ‘치킨 게임’이다.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경쟁을 하면서 결국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게임 이론이다.

산업에서는 반도체가 대표적인 치킨 게임의 현장이다. 반도체 산업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텔, TI, 모토로라 등 미국의 아성이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오자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투자를 주저하게 됐고, 이때를 틈타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대규모 기술 투자에 나서며 1982년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첫 번째 치킨 게임의 결과다.

일본 아성이 오래가진 못했다. 미국이 반덤핑 제재로 반격하고 한국 삼성전자가 빠르게 성장했다.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면서 일본을 추월했고, 이어 256M, 1GB 등으로 잇따라 승전보를 올리며 미국 반도체와 함께 1990년대를 지배했다.

이때 대만이 새롭게 치고 올라왔다. 2차 치킨 게임 발발이었다. 공격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였다. 생산량을 대폭 늘려 D램 가격을 폭락시켰다. 자금과 기술이 축적되지 못해 원가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후발 주자들은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했다. 독일 키몬다, 대만 파워칩·프로모스 등이 줄줄이 주저앉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2009년 말 세계 메모리 시장점유율 56.4%를 기록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곧바로 중국 시장을 두고 한국과 일본 업체 간 3차 치킨 게임이 펼쳐졌다. 2011년부터 도시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중국에 대규모 설비 투자에 나섰고 D램 가격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2013년 일본 엘피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로 피인수되며 3차 게임은 삼성-하이닉스-마이크론 3자 과점 체제의 결과를 가져왔다.

승자들은 2010년대 후반 슈퍼 사이클을 향유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경기 침체 여파로 메모리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자 시장에서는 4차 치킨 게임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하반기에는 “감산은 없다”며 치킨 게임을 공언하더니 최근 ‘기술적 감산’으로 스탠스를 바꿨다. “캐펙스는 유지하면서 라인 운영의 최적화를 위해 설비 유지 보수와 재배치를 진행한다. 의미 있는 비트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었다. ‘감산인 듯 감산 아닌 감산 같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의 메모리 시장 판도를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우선 게임 상대가 불분명하다. 3자 과점을 향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는 아직 실체가 불분명한 중국 정도다. 굳이 한국이 나서지 않더라도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강력한 견제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공격적 가격 인하를 주도할 입장도 못된다. 과거와 같은 압도적 기술 우위인지도 불확실한 데다 투자 효율성에서도 TSMC에 비해 크게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이미 감산을 선언했다. 과거처럼 경쟁자를 무너뜨려 시장을 장악하는 기존 룰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패권 전쟁은 앞으로 각자도생으로 실리를 찾아야 하는 더욱 어려운 게임이 될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5호 (2023.02.08~2023.02.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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