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청년정치 살리기

2023. 2. 9.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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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1990년대는 한국 사회 발전의 변곡점이었다. 군부가 퇴조하고 재야 운동권과 노동조합이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등장했다. 기업은 강성 노조를 끌어안고 세계시장을 뛰었고 정치권은 재야 세력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며 세대교체, 시대교체를 도모했다. 집권 신한국당은 이재오와 김문수 등 민중당 인사를 영입해 96년 15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이후 여야는 경쟁적으로 원희룡과 우상호 등 30대 젊은 피를 대거 영입하며 ‘386 운동권 전성시대’의 문을 열었다. 서태지의 등장과 한류의 시작도, 테헤란로 앙팡 테리블의 재벌 도전도 이때 일이다.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는 민주화로 권위주의 정부 체제의 경직성을 타파했기 때문에 87년 이후 10년의 고도성장이 가능했다고 진단한다.

또다시 30년 전과 같은 과감한 기득권 타파와 혁신, 세대교체와 시대교체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산업 생산과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고 업종의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가 현실이 됐다. 변화의 중심에 디지털 청년세대가 있다. 이들은 개인주의와 능력주의, 공정의 가치를 내세우며 기득권 질서와 충돌하고 있지만 산업화 세대나 386 운동권과 달리 조직화돼 있지도, 공유할 성공 경험도 없다. 오히려 한국 노동시장 특유의 연공서열 구조가 장애물처럼 이들의 약진을 막고 있다.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능력에 따른 발탁 인사와 성과에 따른 보상을 확대하며 20, 30대 전문기술 인력 중심으로 인사전략을 수정 중이다. 보수적이라던 삼성전자조차 회장님 대신 ‘JY님’이라는 수평 호칭을 권장하고 여러 대기업이 위계적 조직을 수평 구조로 바꾸고 있다. 노동조합도 MZ세대 중심으로 별도 연대조직을 만드는 등 변화 중이다. 이런 작은 변화의 물결들이 시대교체의 큰 파도가 되도록 정치 리더십이 이 물결에 힘을 실어줄 때다. 무엇보다 지금은 청년정치를 키워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위력을 발휘했던 청년정치도 선거가 끝나자 일사불란한 보스정치로 돌아갔다. 30대의 이준석 대표와 20대의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은 말썽쟁이로 내몰렸고 그들의 당 쇄신 요구는 헛소리가 됐다. 이들의 직책이 무엇이었든 정치적 용도는 젠더 갈등을 증폭시켜 표를 모으는 데 있었다. 그들을 통해 당을 쇄신하고 기득권 질서를 바꿔보겠다고 나선 선배 정치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 스스로도 젠더 프레임에 갇혀 청년들을 괴롭히는 주택과 일자리, 불평등 문제에는 소홀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청년정치를 묶을 수 있는 공통의 어젠다와 안티테제가 필요하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저격수로서가 아니라 각자 위치에서 기득권 질서에 균열을 내고 미래 30년을 열어갈 새로운 가치와 정치동맹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 진영의 운동권 정치나 보수 진영의 보스정치에 도전하고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연공서열적 제도와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이준석과 박지현은 공조해야 한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직무와 성과, 각각의 전문성에 따라 공정하게 대우받고 존중받는 직업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공직사회 혁신을 요구하고 노동시장 개혁에도 적극 개입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둘째는 공직선거에서 청년할당제를 요구해야 한다. 2000년 도입된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는 그동안 많은 여성 정치인을 키워냈다. 이제 세대교체와 시대전환을 위해 청년에게 그 기회를 넘겨줄 때가 됐다. 비례대표 50%를 청년에게 할당함으로써 일정 규모의 청년 정치인이 지방과 중앙정치 무대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많은 젊은 정치 지망생이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청년정치학교 ‘반전’(운영위원장 김성식)은 반성과 비전을 화두로 40명 가까운 청년 정치 지망생이 매주 학습하며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2017년 문을 연 청년정치학교(교장 정병국)도 있다. 이밖에도 여러 형태의 청년정치 네트워크가 있다. 이들을 할당제를 통해서라도 제도권에 끌어올리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청년정치 살리기가 이번 국회 선거법 개정 논의 테이블에 주요 메뉴로 올랐으면 좋겠다. 일정 수의 ‘젊은 피’를 제도적으로 수혈하도록 해야 정치 유망주들이 선거용 깜짝 영입이나 줄 세우기 정치의 희생물로 전락하지 않게 된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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