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나면 더 뜻깊은 ‘정월 대보름’

2023. 2. 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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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석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 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전래 동화, 모두 잘 아실 겁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고선 엄마를 잡아먹어버린 호랑이. 오누이마저 먹으려 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튼튼한 동아줄을 잡은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됐고, 썩은 동아줄을 잡은 호랑이는 떨어져 죽었다는 바로 그 이야기 말이죠. 마지막에 호랑이가 수수밭에 떨어져 묻은 핏자국이 지금도 남아 ‘수수 줄기 중간에 빨간 선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며 끝나는 동화지만, 사실 핵심 주제는 따로 있답니다.

혹시 ‘출세하려면 든든한 라인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아니냐고요? 네.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이야기의 핵심은 ‘해와 달의 탄생’이라는 우리네 천지창조 신화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야생 동물의 습격을 피해 동굴이나 나무 위에 피신처를 마련하고, 낮에 사냥하는 맹수와 야행성 맹수가 잠시 활동을 멈추는 새벽이나 저녁에 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하늘을 보면서 해와 달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했죠. 똑같은 크기로 보이는 태양과 달을 통해 ‘이 세상에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절대적 진리로 여겨지게 됐고요. 자연스럽게 해와 달이 어떻게 이 세상에 나타났는지 그럴듯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이후 문명이 발전하면서 선과 악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해 종교, 철학, 도덕적 가치에 깊숙이 자리하게 됐습니다.

동화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해보다 달을 더 중시했다는 사실입니다. 나이 어린 누이가 ‘해’로 변하고 오빠가 ‘달’이 됐다는 지점에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만 달을 중시한 것은 아닙니다. 달이 한 달 주기로 매일 모양이 바뀌기에 더욱더 신비한 존재로 여겨, 세계 각 지역에서는 달의 변화를 반영한 음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한자에서도 음양(陰陽)에서 ‘어두움(달)’을 먼저 앞세웠죠. 1500여년 전까지는 설날 역시 낮이 가장 짧은 시기를 지나 처음 떠오르는 보름달을 기준으로 한 정월 대보름날이었습니다.

과거 동양에선 정월 대보름이 설날…‘달’을 중시했던 문화에서 비롯

그런데 왜 지금 설은 이보다 보름 앞당겨졌을까요? 중국 때문입니다. 중국 수나라 시절, 로마에서 확산 중이던 태양력이 계절 변화와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존 음력을 보완하기로 합니다. 즉, 19년마다 7번의 윤달을 넣고 1년 365일을 보름마다 쪼갠 24절기를 추가한 ‘태양태음력’으로 발전한 것이죠. 이후 동양 국가들은 음력 설날을 정월 대보름 직전 초승달이 뜨는 지금의 설날로 보름 앞당기게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옛 설날인 정월 대보름도 여전히 존중해 조선 시대까지 설, 단오, 한가위와 함께 4대 명절로 소중히 여겨왔어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보름은 일종의 축제 기간이어서 이 기간에만 연을 날렸다고도 하지요. 지금도 정월 대보름 아침에 딱딱한 견과류(부럼)를 어금니로 깨물며 올해도 부스럼 없이 치아도 튼튼하길 기원하고 있는 건 설날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랍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음력 설날의 영어 표기법을 ‘Lunar New Year’가 아닌 ‘Chinese New Year’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 태양력을 접목해 보름 앞당긴 것이 지금의 음력 설날이고, 당시 수·당 황제들 또한 북방 선비족인 만큼 순수한 중국 달력 체계는 아닌 겁니다. 정녕 원조를 밝히길 원한다면 양력 설날은 Egyptian-Roman New Year, 음력 설날은 Egyptian-Roman-Chinese New Year로 바꿔야죠. 자국 우월주의는 언제나 주변의 반감을 살 뿐입니다.

조홍석 삼성서울병원 커뮤니케이션팀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5호 (2023.02.08~2023.02.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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