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판 검수완박" 검찰 발칵...압수수색 전 영장심리 강화

이창훈 2023. 2. 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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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과 검찰 사이에 갑작스레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 3일 법원행정처가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관련자 대면심리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의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홈페이지에 슬그머니 입법예고하면서 생긴 일이다.

개정안에는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심문기일을 정해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는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되면 서면 심사만 거쳐 법원이 발부 여부를 판단하지만, 앞으로는 경우에 따라 수사 담당자나 제보자를 불러 대면심리를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외에도 개정안에는 ▶압수수색 영장집행시 피의자 및 변호인 참여권 강화 ▶압수수색 대상 정보의 명문화와 집행계획 반영 등도 포함됐다.

지난 7일 언론보도로 입법예고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 내부는 격하게 끓어올랐다. 재경지검의 부장검사는 “정치적 사건이나 기업 관련 사건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거나 여론의 관심이 많은 사건 위주로 심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형평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결국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의 배만 불리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제보자 대면 심리에 대해 “수사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며 “사건에 따라 제보자를 통해 피의자에게 수사 정보가 흘러갈 수 있다. 오히려 피의자 도주나 증거인멸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뉴스1

그러자 법원행정처는 이날 오전 뒤늦게 설명자료를 냈다. 행정처는 “전자정보 압수수색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높아 특별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며 “대면 심리의 대상은 영장을 신청한 수사기관이나 제보자 등이 될 예정이고, 심리 자체가 복잡한 사안에서 제한적으로 실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장 산하 사법행정자문회의는 2021년 10월 제16차 회의에서 법관의 대면 심리 수단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법원행정처는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개정작업을 거쳐 규칙개정안을 마련했고, 대법관 회의를 거쳐 내용이 공개됐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다음달 14일까지 외부 의견을 수렴한다.

검찰은 곧바로 입장문을 냈다. 대검은 “사전에 어떤 협의나 통지도 없어 언론을 통해 개정안을 처음 접하게 돼 유감”이라며 “아무런 사전 의견수렴이나 협의없이 규칙 개정 절차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모습. /뉴스1


“김명수 방탄용, 법원판 검수완박”


일각에선 대법원이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를 7개월가량 남겨두고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절차를 까다롭게 바꾸는 의도를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 반려 사건으로 고발된 김 대법원장을 위한 방탄규칙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검사장급 인사는 “법원판 검수완박”이라고 말했다.

규칙 개정만으로는 대면 심리를 도입하기에 법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법관이 구속영장 발부 전에 피의자를 심문하는 구속영장 실질심사, 체포·구속적부심은 형사소송법에 관련 규정이 명시된 만큼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절차에 대면 심리를 신설하려면 형사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법행정자문회의도 2021년 10월 작성한 회의자료에서 “명문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반발 등이 예상된다”고 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당사자의 압수수색 절차 참여권 보장과 전자정보 압수수색 대상 구체화는 필요하지만, 형사소송법이 아닌 규칙 개정만으로는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사법행정자문회의는 물론 토론회 학술대회를 거치면서 관련 내용이 이미 공개된 만큼, 몰래 추진했다는 지적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대법원장 단독 결정이 아니라 대법관 회의를 거친 안건으로 그간 전자기록물 압수수색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창훈·오효정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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