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으로 살던 그의 변심…이젠 '쌀' 아닌 '고기'가 주식됐다

김기환 2023. 2. 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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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 서울역점에 진열된 돼지고기. 뉴스1

직장인 김재하(41)씨는 아침 식사를 건너뛴다. 대신 점심을 배불리 먹는다. 육류 위주로 먹는데, 밥은 일부러 몇 술 안 뜬다. 저녁은 퇴근한 뒤 집 반찬으로 간단히 때우거나 샐러드로 대신한다. 하루 먹는 밥을 다 합쳐야 한 공기가량.

신혼 때만 해도 ‘밥심’으로 살던 김씨가 고기 위주 식단으로 돌아선 건 최근 건강검진 때마다 과체중 진단을 받으면서다. 일명 ‘저탄고지(低炭高脂·탄수화물 섭취는 줄이고 지방·단백질 섭취를 늘림)’ 식사법이 다이어트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식습관을 바꿨다. 김씨는 “고기·생선 위주로 먹다 보니 익숙해졌고, 주위에도 탄수화물 식단을 꺼리는 경우가 늘었다”며 “예전처럼 삼시 세끼 밥을 챙겨 먹던 식단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쌀보다 고기’. 통계로 증명된 식습관 트렌드다. 통계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22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7㎏으로 2021년(56.9㎏)보다 0.4% 줄었다. 하루 소비량은 155.5g으로 나타났다. 밥 한 공기에 쌀이 100g 정도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루 한 공기 반 정도 먹는 데 그쳤다. 196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소다.

반면 고기 소비는 꾸준히 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지난달 18일 발표한 ‘농업전망 2023’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8.4㎏을 기록했다. 2002년 33.5㎏에서 연평균 2.8%씩 꾸준히 성장해 결국 쌀 소비를 앞질렀다. 육류 소비가 쌀을 역전한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정민국 농경연 농업관측센터장은 “서구처럼 주식이 고기로 바뀌는 추세가 확연하다”며 “1인당 육류 소비가 2024년 58.5㎏, 2027년 60.6㎏, 2032년 63.1㎏으로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고기 중에선 돼지가 왕이었다. 지난해 1인당 육류 소비 중 돼지고기(28.5㎏)가 1위였다. 닭고기(15.1㎏)·소고기(14.8㎏)가 뒤를 이었다. 육류 소비의 절반 가까이가 돼지고기란 뜻이다. 농촌진흥청의 ‘2022년 소·돼지 고기 소비실태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1700명을 설문한 결과 돼지고기를 주 1회 이상 먹는 비율이 78%, 소고기는 50%로 나타났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경기 침체에 접어들면 육류 중에서도 ‘삼겹살’이 상징하는 서민 음식인 돼지고기 소비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급은 수요를 따라간다. 농경연에 따르면 지난해 돼지 생산액은 9조5128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343억원(12.2%) 늘었다. 농업생산액 품목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쌀은 같은 기간 생산액이 9조5263억원에서 8조9450억원으로 5813억원(6.1%) 감소해 2위를 차지했다. 농업 생산액에서 쌀이 돼지에 밀린 건 지난 2016~2017년이 처음이다. 당시엔 쌀값이 폭락한 영향이 컸다. 2018~2021년엔 다시 쌀이 생산액 1위를 차지하다 지난해 다시 돼지에 역전됐다. 농경연은 추세를 뒤집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2032년 기준 생산액 비중은 돼지(16.7%), 소(11.7%), 쌀(10.8%) 순으로 내다봤다.

장재철 경상대 축산과학부 교수는 “시장 논리에 따르면 쌀 생산이 훨씬 줄었겠지만, 정부가 ‘식량 안보’ 차원에서 남는 쌀을 사들여 생산 감소를 틀어막았기 때문에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한 것”이라며 “육류 소비 증가세보다 쌀 소비 감소세가 더 가팔라 쌀 생산이 늘어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고기와 함께 먹는 채소 소비도 덩달아 늘 전망이다. 농경연은 배추·무·마늘·고추·양파 등 5대 채소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이 올해 11.1kg에서 2032년 111.6kg으로 10배 규모로 불어난다고 전망했다. 육류 소비가 늘면서 채소를 곁들여 먹거나, 고기 양념 재료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식습관 트렌드가 바뀌는데 농경 정책은 여전히 쌀 중심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식품부 예산의 40%가 쌀 정책에 쓰인다”며 “쌀 자급률이 90%를 넘는 ‘빛’도 있지만, 그림자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식량 안보 차원에서 쌀이 중요한 만큼 단순히 경제성만 보고 쌀 생산을 줄이는 식의 농경 정책을 펴기 어렵다”며 “현상을 유지하되 기존 농가의 생산성을 올리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정삼 농식품부 축산정책과장은 “소비가 는다고 축산업을 확대하면 환경 오염 우려가 있다”며 “육류 생산을 늘리기보다 친환경·동물복지 축산으로 유도하고 스마트 농업 기술을 보급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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