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제이화문화병'의 문화재 등록 해제를 보며

신은주 2023. 2. 8. 16: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지정과 해제에 뒤따르는 수많은 고민과 연구

[신은주 기자]

흔히 문화재로 지정되면 영원히 그 지위가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은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았다는 것이며 이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보존관리를 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일 '은제이화문화병'이 등록해제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근대공예유물 문화재 등록조사를 거쳐 2009년에 등록문화재가 되었으나 화병의 바닥면에 '小林'라는 압인이 찍혀 있어 일본의 시계점으로 유명한 미술품 제작소인 고바야시게이텐에서 제작한 작품이 아니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었다. 이에 관계전문가의 현지조사 등을 실시하여 등록말소여부를 심의하였고 11명의 출석위원 모두 등록해제에 동의하여 가결되었다.

'은제이화문화병'이 등록문화재가 된 까닭
 
▲ 등록해제된 은제이화문화병  바닥면에 ‘小林’ (일본 고바야시게이텐) 압인
ⓒ 국가문화유산포털
 
오얏꽃은 흔히 '배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자두꽃'을 말한다. 고려시대 도선국사가 "오얏성씨 왕조가 들어서리라"는 예언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오얏성씨가 오얏나무 리(李) 즉, 전주이씨이고, 고종황제 때 조선이라는 국호 대신 대한제국이 선포된 이후 이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쓰이게 되었다. 특히 창덕궁 인정전, 독립문을 비롯해 주화, 기념우표, 식기 등에도 새겨넣어 황실의 문양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1908년에 '한성미술제작소'로 시작하여 1911년에 '이왕직미술품제작소', 1922년 '주식회사 조선미술품제작소'로 이어지는 광화문 네거리에 조성된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는 왕실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을 제작하였는데. 여기에서 만들어진 공예품에 오얏무늬 즉 이화문을 새겨 넣었다.

근대작품으로 알려진 공예품의 경우 '이화문이 있는 공예품=이왕직미술제작소의 제작품'이라는 공식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며 '小林'이라는 압인을 근거로 일본에서 제작된 공예품임을 확인하였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
  
▲ 은제오얏꽃무늬 합  대한제국 선포 후 이왕가를 상징하는 무늬
ⓒ 서울공예박물관
 
이번에 등록해제된 '은제이화문화병'과 달리 서울공예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은제이화문합'은 2021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똑같이 바닥에 명문이 있으나 화병은 명문으로 인해 등록해제되었고 합은 명문으로 인해 등록되었다. 이 합의 바닥에는 '漢城美術'(한성미술)이라는 글씨가 각인되어 있고 이는 한성미술품 제작소에서 생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의 전신으로 1908년 황실에서 후원하여 설립된 곳으로 국가 주도의 관영수공업에서 민간 주도의 민영수공업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관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곳에서 제작한 공예품에는 '한성미술' 또는 '한미'라는 명문이 찍혀 있는데 서울역사박물관의 <'한미'명 이화문잔'>, 충남역사박물관의 <은잔>, 국립중앙박물관의 <은제그릇> 2점 등 총 8건 12점이 알려져 있다.
  
▲ 각인된 한성미술 각인된 명문은 역사를 증명한다
ⓒ 서울공예역사박물관
 
문화재를 지정, 등록하기 위해서는 문헌자료는 물론 동시대의 제작기법과 양상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근거를 마련한다. 이에 근대시기에 제작된 은제 공예품 가운데 한성미술품 제작소에서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재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진다. 이와 더불어 문화재 보존과학의 발전으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제작기법, 성분조사 등을 동원하여 문화재의 지정이나 등록의 당위성에 힘을 싣기도 한다.

'은제이화문합'의 제작성분 분석 결과 은 94~95%에 구리 2~3%로 만들어진 합금으로 수은아말감기법으로 내부를 도금처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만기요람>의 '재용편'에서 왕실의 그릇은 천은(天銀)으로 제작된다는 기록과는 다른 것으로 제작방식의 변화가 있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이렇듯 하나의 문화재가 지정되고 해제되는 것에는 수많은 고민과 연구가 뒤따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오래된 과거여서 지금은 지워진 역사적 실체에 더욱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 또한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역사, 문화, 문화재, 박물관, 책, 삶에 관한 글을 씁니다. 지난해에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이라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