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캄보디아댁, 누적상금 1억 돌파 "고국에 스포츠센터 준비"

박린 입력 2023. 2. 8. 10:55 수정 2023. 2. 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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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가 개인 통산 프로당구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PBA


“캄보디아에 ‘피아비 스포츠 종합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어요.”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33)가 8일 여자프로당구 우승을 차지한 뒤 밝힌 소감이다. 피아비는 “캄보디아는 한국에 비해 일자리가 너무 많이 부족하다. 재능 있는 친구들도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 캄보디아를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기관을 설립해 사람들이 직접 노력해서 꿈을 꾸게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공부를 잘해 의사를 꿈꿨지만 가난 탓에 7학년을 졸업한 뒤 학업을 포기해야 했기에 이런 결심을 한 거다. 피아비는 어릴적 고향 캄보디아 캄퐁참에서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감자와 고구마를 캐고 밀가루를 만들었다. 하루 종일 일하면 한국 돈으로 2500원을 벌었다. 일주일에 만원 정도 벌면 온 가족이 이틀 먹고 살 수 있었다.

피아비는 한국으로 시집와 당구로 인생역전했는데 누적 상금만 1억원을 돌파했다. 피아비는 이날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센터에서 끝난 크라운해태 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김보미를 세트스코어 4-3으로 꺾었다.

프로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한 피아비가 손가락 네 개를 펴고 있다. 사진 PBA


3세트 10-10에서 김보미가 득점에 실패하자 피아비가 뒤돌리기를 침착하게 성공했다. 4세트에 초구를 하이런(한이닝 연속 최다점) 7점으로 연결해 11-0으로 가져왔다. 5, 6세트를 내준 피아비는 7세트 5-3으로 앞선 8이닝에 과감한 뱅크샷으로 격차를 벌렸고, 그 다음 이닝에 원뱅크 넣어치기로 경기를 끝냈다.

피아비는 우승 상금 2000만원을 더해 시즌 상금 랭킹 1위(4940만원), 누적 상금 랭킹 3위(1억2880만원)에 올랐다. 피아비는 소속팀(블루원리조트)에서 대기업 부장급 연봉을 받는다. 또 건자재 기업 에스와이, 캄보디아에서 인기가 높은 자양강장제(박카스) 제조사인 동아제약 후원도 받는다.

우승 확정 후 기뻐하는 피아비. 사진 PBA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피아비는 2010년 충북 청주시에서 작은 인쇄소를 운영하던 아빠보다 10살 많은 김만식(62)씨와 국제 결혼을 했다. 이듬해 동네 당구장을 따라 갔다. 심심해하니 연습구를 줬는데 팔이 길어서인지 곧잘 쳤다. 그날 남편이 3만원짜리 큐를 사줬다. 피아비는 인쇄소에서 박스에 구멍을 뚫고 큐가 반듯하게 나가는 연습만 3개월간 했다.

피아비는 인터넷으로 가난한 캄보디아 아이들을 보며 매일 울었다. 남편 김씨는 “나도 1960년대 중반 보리밥도 못 먹고 자랐다. 당신이 당구만 잘 치면 저들을 도울 수 있다”며 대회 출전비 40만원씩을 기꺼이 내줬다. 집에 ‘나는 이들을 위해 살 것이다’라는 한글 문구와 캄보디아 아이들 사진이 걸어둔 피아비는 2018년 세계여자3쿠션선수권 3위, 이듬해 아시아3쿠션여자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피아비는 2021년 프로당구로 전향해 그해 두 차례 우승했다. 작년 6월에는 편찮은 부모를 한국에 모셔와 치료해드렸고, 엄마와 아빠가 보는 앞에서 3번째 우승을 거뒀다. 이후 6개 대회에서 무관에 그쳤지만 올 시즌 투어 마지막 대회에서 정상을 탈환했다. 통산 4번째 우승으로 ‘최다 5회 우승자’ 김가영와 임정숙을 1승 차로 추격했다.

김보미는 “피아비는 끈질기고 탄탄하고 상대를 숨 막히게 한다. 제가 추격해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피아비는 “올 시즌을 시작하면서 당구 기술을 너무 많이 배운 게 오히려 독이 됐다. 스스로 엉망이 됐는데 코치 1명에게만 배우며 정리가 됐다”고 했다.

상금을 모아 캄보디아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는 피아비. 사진 피아비


피아비는 다음달 시즌 상금 랭킹 32위까지 출전하는 ‘월드 챔피언십(왕중왕전)’에 나서는데, 우승상금이 8000만원이다. 피아비는 “남편이 오늘 경기장에 오고 싶어했는데 말렸다. 월드챔피언십 때 남편을 초대해 함께 트로피를 드는 세리머니를 하고 싶다”며 웃었다.

피아비는 요즘도 옷도 잘 안 사는 대신 기회가 될 때마다 마스크, 구충제, 학용품을 사 캄보디아에 보낸다. 피아비는 “스포츠센터는 지금은 구상 단계지만 한국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계신다. 시즌 후 캄보디아에 가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뜻을 전하고 국가 허락을 받으려 한다. 캄보디아도 한국처럼 스포츠강국이 되길 꿈꾼다. 힘들지만 꼭 해낼 거다”고 다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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