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유리섬유 테이프 4장 합치니 철보다 단단'…플라스틱 전기차 시대 연다
전담부서 신설·올해부터 본격 사업화
[아시아경제 최서윤 기자] #전기차는 무겁다. 배터리 때문이다. 차가 200kg 더 무거워진다. 배터리 팩을 담는 케이스 덮개도 무거운 철로 만든다. 전기차의 생명은 한 번 충전해서 얼마나 오래, 멀리 달리는가다. 최대한 주행거리를 늘리는 게 중요한데, 무거우면 연비가 떨어진다.
#2030년부터 미국과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려면 제품 자체 및 포장지에 재활용 플라스틱 30% 이상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영국의 경우 1t당 30만원을 내야 한다.
각국 정부가 탈탄소 정책을 강화하면서 기업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SK이노베이션석유화학 계열사 SK지오센트릭이 오랜 고민 끝에 답을 내놨다.
철을 대체할 친환경 플라스틱 ‘UD(Unidirectional) 테이프’다. 철만큼 단단한데 5배 가볍다. 열에 녹아 100% 재활용할 수 있다. 복원력도 높다. 충격을 받아도 부러지지 않고 원상 복구된다. 꿈의 소재다. 2012년께 세상에 알려진 소재다. 친환경, 탄소감축, 경량화가 전 산업 화두로 떠오르면서 주목받고 있다.
UD테이프는 회사 주력 생산 플라스틱인 폴리프로필렌(PP)을 유리섬유와 합쳐 만드는 소재다. 고기능성 폴리프로필렌(HCPP)을 바탕으로 고성능 UD테이프 제조공정을 개발했다. SK지오센트릭 차별화 지점이다. SK지오센트릭 HCPP는 범용 PP 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을 10%가량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이다. 중국 시장 점유율 1위다. 재료만 좋은 게 아니다. 고객사 사정에 맞게 PP를 설계해 UD테이프를 만들어준다. PP를 직접 만들어서 가능하다. 올해 ‘CES 혁신상’도 받았다.
철보다 강한 플라스틱은 어떻게 만들까. 지난 1일 대전 유성구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을 찾았다. 실험실 한 쪽에 길게 늘어뜨린 하얀 실이 압출기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유리섬유다. 유리를 섬유처럼 가늘게 뽑은 물질이다.
유리섬유 4000가닥을 뭉쳐야 머리카락 굵기만 해진다. 이 유리섬유를 기계를 이용해 넓게 펼쳐 면을 만든다. 면 사이에 PP를 도포한다. 220도 고온에서 유리섬유 사이사이에 PP를 침투시킨다.
테이프 형태로 만든 뒤 열을 식히면 얇은 실 모양 유리섬유가 장판처럼 널따란 UD테이프가 된다. 무한정 길게 뽑을 수도 있다. 이 회사만의 노하우다.
0.25mm UD테이프 4장을 합치면 철보다 단단해진다. UD테이프 인장강도(파괴될 때까지 견디는 힘)는 800~1000㎫(메가파스칼)이다. 자동차 경량화 핵심인 고장력 강판 인장강도는 570㎫이다. 1㎫은 1㎠당 10㎏을 견디는 수준을 의미한다. 철보다 최대 75% 강도가 높다는 얘기다. 무게는 철보다 가볍다. 1㎤ 직육면체로 똑같이 만들면 철은 7.6~7.8g이고 UD테이프는 1.5g이다. 더 단단하고 가볍다는 뜻이다.
일반 철보다 최대 65% 경량화할 수 있다. 주원철 환경과학기술원 친환경제품솔루션센터 연구원은 “유리섬유 함량이 많아질수록 기술 난이도도 높아진다”며 “시제품 수준에선 유리섬유 함량 비율을 조절하는 기술을 확보해 다양한 UD테이프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올해 UD테이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UD테이프를 개발한 문용락 SK지오센트릭 경량화솔루션사업부 마케팅팀장이 이끈다. 연구만 하던 문 팀장을 회사가 사업부로 보냈다. 제품을 개발한 그에게 사업까지 맡겼다. 회사는 2025년 초 완공을 목표로 생산공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문 팀장은 “특정 업종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모든 업종으로 친환경 솔루션 사업 고객군을 넓혔다”며 “올 초 오토모티브 사업부에서 경량화솔루션사업부로 부서 이름도 바꿨다”고 했다.
SK지오센트릭은 고객사에 친환경 솔루션을 제공한다. 통상 석유화학회사가 소재를 납품하면 제품은 고객사가 알아서 만든다. SK지오센트릭은 틀을 깼다. 정책 당국에 밝혀야 하는 탄소배출 기여도 수치 등을 대신 계산해 고객사에 제공하고, UD테이프로 고객사 물품을 만들어 준다. 최근 국내 택배업체와 실증사업도 했다.
철로 된 택배차 적재함을 UD테이프로 바꿨다. UD테이프 2장을 합치면 철과 강도가 같아지는데, 아직 UD테이프에 낯선 고객을 위해 4장을 적층했다. 차 무게가 100kg 줄었다. 물건을 100kg 더 실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차가 가벼워져 연비도 높아졌다. 문 팀장은 “유류비를 연 41억원, 이산화탄소를 연 5750t씩 줄이는 효과를 냈다”며 “UD테이프를 쓸수록 비용을 절감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세계 알만한 기업들이 사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상위 10위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차 내외장재 개발을 협업 중이다. 이미 유럽 완성차 업체와의 협의는 상당 수준 진행됐다. 물류기업과 철강 컨테이너를 대체하는 가벼운 UD테이프 컨테이너도 개발하고 있다. 경량화 기술이 필수인 도심항공교통(UAM) 사업 진출도 구상하고 있다.
UD테이프 시장은 연평균 11.4%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마케츠앤마케츠는 2021년 1억9400만달러(약 2427억원)였던 글로벌 UD테이프 시장 규모가 2026년 3억3200만달러(약 4153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수 벤 "아이 낳고 6개월만에 이혼 결심…거짓말에 신뢰 무너져"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어떻게 담뱃갑에서 뱀이 쏟아져?"…동물밀수에 한국도 무방비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한 달에 150 줄게"…딸뻘 편의점 알바에 치근덕댄 중년남 - 아시아경제
- "무료나눔 옷장 가져간다던 커플, 다 부수고 주차장에 버리고 가" - 아시아경제
- 77년된 케이크 한 조각 400만원에 팔려…여왕님 덕분이라는데 - 아시아경제
- "10년간 손 안 씻어", "세균 존재 안해"…美 국방 내정자 과거 발언 - 아시아경제
- "돈 많아도 한남동 안살아"…연예인만 100명 산다는 김구라 신혼집 어디?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