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힌덴버그 리서치

장원석 2023. 2. 8. 00: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원석 증권부 기자

1937년 5월 독일에서 출발한 비행선이 미국 뉴저지 해군기지 상공에 나타났다. 고래를 닮은 이 거대한 비행선을 보러 구경꾼이 몰렸다. 착륙 장면은 공포 그 자체였다. 화염에 휩싸인 채 서서히 내려앉았고, 35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하기 힘든 헬륨 대신 가격이 싼 수소로 비행선을 띄운 게 원인이었다. 예고된 참극인 셈이다. 이 비행선이 바로 힌덴버그(Hindenburg)다.

힌덴버그 리서치는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다. 일반적인 행동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 배당이나 기업 가치 제고엔 관심이 없다. 회계 부정이나 미공개 거래 등 기업의 비리를 공개한 뒤, 공매도로 돈을 번다. 이들은 ‘힌덴버그 참사와 같은 인재가 시장에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기 전에 찾아낼 것’이라고 소개한다.

힌덴버그가 이름을 널리 알린 건 2020년이다. 혁신기업으로 칭송받던 니콜라가 사실 창업자 트레버 밀턴의 거짓말로 만든 회사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진실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힌덴버그가 맞았다. 트레버는 회사를 떠났고, 사기 혐의도 유죄를 받았다. 한때 60달러를 넘어섰던 니콜라 주가는 현재 2달러대다.

새 공격 대상은 인도 아다니 그룹이다. 물류·에너지·유통 등 인도 경제의 동맥을 틀어쥔 인프라 회사다. 지난달 25일 힌덴버그는 아다니가 횡령·돈세탁·탈세 등 수많은 부정행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격은 상당했다. 약 열흘 동안 아다니 그룹 7개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150조원가량 증발했고, 신용등급은 강등됐다. 대출해준 은행은 물론 인도 증시 전체로 불똥이 튀어, 많은 외국인 투자자가 빠져나갔다.

힌덴버그를 정의의 탈을 쓴 악당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시장 정화를 내세우지만 결국은 돈을 목적으로 기업을 파괴한다는 지적이다. 실체 없는 공격이라면 동의하겠으나, 부정이 명백히 존재한다면 공매도꾼으로 몰아붙일 명분도 사라진다.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에 지친 다수의 개인투자자는 힌덴버그를 응원한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활발하다. 개인투자자의 급증과 궤를 같이한다. 주주 환원만 강조하고, 투자를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주주 가치 제고는 국내 증시의 해묵은 과제이기도 하다. 기업이 적응해야 한다.

장원석 증권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