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인화지에 찍힌 시대의 음영

2023. 2. 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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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한가한 오후 삼청동을 걷다 보면 사진전문미술관인 뮤지엄한미에서 열리는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4월 15일까지)전을 만날 수 있다. 정해창이 최초의 예술사진 개인전을 열었던 1929년으로부터, 임응식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던 1982년까지 54년간 사진의 역사를 ‘공모전’이라는 제도를 통해 되짚어본다. ‘인사이드 아웃’전은 200여 점에 이르는 각종 전시회 출품작을 선별 전시함으로써 국가 주도형 공모전이 사진계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공모전은 조선사진전람회(1934~43)였다. ‘인사이드 아웃전’이 선별한 수상작 가운데 임응식의 ‘둑을 가다(1937)’, 정도선의 ‘산록의 아침(1942)’에서는 지게를 진 농부와 농촌의 논밭 풍경 등 조선의 전근대성이 부각된 것을 알 수 있다. 기법 면에서는 연초첨렌즈를 사용해 대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명암을 부드럽게 처리해 수묵화 효과를 내는 ‘회화주의(Pictorialism)’ 사진, 이른바 ‘살롱사진’의 전형을 보여준다.

「 뮤지엄한미서 열린 사진 특별전
국가주도 공모전의 명암 돌아봐
지난 100년 우리들이 걸어온 길
디지털시대에 빛나는 사진의 힘

임석제, 반출, 1948, Gelatin silver print, 26.8x35.5㎝. [사진 뮤지엄한미]

이 전람회의 주최자인 ‘전조선 사진연맹’은 표면적으로는 한·일 아마추어 사진단체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의 산하조직이었다. 이들은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징병제 경축사진전람회’ ‘조선사정 선전용 사진현상모집’ 등 공모전이란 이름으로 시각정보를 수집하고 예술사진을 전시 선전정책에 이용했다.

회화주의와의 결별은 해방 후 이념대립 가운데 리얼리즘이 급부상하면서 이루어졌다. 1948년 임석제의 개인전에 출품된 ‘반출’ ‘수입식량’은 목가적 풍경 대신 부두 노동자들이 곡물을 선적하는 노동의 순간을 포착했으며, 정적인 수평 구도 대신 대각선 구도를 사용해 화면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좌익 계열의 조선사진동맹 회원이었던 임석제의 개인전은 남로당 자금책이던 허바허바사장 김주성의 후원을 받았으며, 9명 이상의 동맹 소속 작가들이 찬조 출품함으로써 최초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사진전으로 평가된다.

해방과 함께 등장한 리얼리즘은 전쟁을 통해 확산됐다. 임응식은 미공보원의 촉탁 종군기자로서 인천상륙작전을 르포르타주로 기록하면서 리얼리즘에 눈뜬다. 그는 ‘사진은, 비록 추할지라도 삶 속의 모든 현상을 표현해야 한다’는 명제 아래 도시 빈민·실업자·전쟁고아를 스트레이트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를 스스로 ‘생활주의적 리얼리즘’이라 칭했다. 전후 삶의 비참함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그의 작풍은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1950년대와 1960년대 각종 공모전에 유행처럼 확산하면서 생활주의 사진은 사회비판적 시각이 거세된 소재주의적이고 감상적인 리얼리즘이란 오명을 얻게 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작가들은 국제적 사진 동향에 눈을 돌렸다. 미국 사진계로의 관심은 한국전쟁기 내한한 미국 종군기자와의 교류에서 촉발되어, ‘라이프(LIFE)’ ‘포퓰라 포토그래피(POPULAR POTOGRAPHY)’ 등의 잡지를 통해 넓어지고, ‘인간가족전’의 유치로 증폭되었다.(임응식의 회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두된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보편적 휴머니즘’으로 포장했던 ‘인간가족전(1957년 경복궁미술관)’은 한국에도 유치되어 큰 성공을 거뒀고 1960년대 리얼리즘의 확산에 기여했다.

1960년대 국제적 교류는 조형주의 사진을 표방했던 이상규·김행오 등이 조직한 ‘싸롱 아루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분명한 흑백대비와 조형성을 극대화한 간결한 화면구성으로 미니멀리즘적 화면을 선호했던 이들은 후진 양성을 위해 ‘현대사진연구회’를 조직했고, 황규태 등의 전위작가를 위시해 전몽각·주명덕 등 걸출한 다큐멘터리 작가들을 배출했다.

주명덕은 1966년 일산 ‘해리홀트기념 고아원’에 수용된 혼혈 고아들의 일상을 사진에 담아 ‘포토 에세이 홀트씨 고아원’전을 개최했다. 전쟁이 남긴 역사적 상처를 텍스트와 결합된 포토에세이 방식으로 형상화한 연작 사진들은, 작가의 세계관을 개성적 시각언어로 표출한 새로운 개인전의 출현을 알린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 전’이 뒤집어 보려던 것은 사진이라는 시각언어 뒤에 감춰진 역사적 맥락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공모전을 답습한 국전 사진부가 상징하는 미완의 역사청산, 생활주의라는 중립적 리얼리즘에 숨어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 등, 디지털 시대에도 사진은 여전히 지난 100년의 시간 속 우리네 삶의 속살을 보여주는 탁월한 매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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