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식에 행동주의 펀드 등장···주가 ‘반짝’ 호재지만 이사회 흔들면 악재로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2. 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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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의 공개 행보가 주목받는다. 최근 얼라인운용은 주요 금융지주를 향해 배당 확대를 공개적으로 압박 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모습. (매경DB)
올 들어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이하 행동주의) 펀드의 잇단 공개 행보가 주목받는다. 행동주의 펀드는 회사 경영에 관여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최근 국내에서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주식 시장 저변이 확장되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는 분석이다.

행동주의 개념은

공개·적극적 개입 선호

행동주의는 타깃 회사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적극적인 주주 활동으로 기업가치를 키워 차별적인 수익을 노리는 투자 전략을 뜻한다. 기업 전략을 수정하도록 요구하거나 운영의 개선, 효과적인 자산 배분, M&A 시도 그리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압력 행사 등이 대표적인 투자 전략이다. 이런 투자 전략을 기반으로 운용되는 펀드를 행동주의 펀드라고 부른다. 한국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주요 타깃이 된 기업의 수는 2014년 645개에서 2019년 830개로 증가했다.

행동주의는 적극적인 투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비공개적이고 장기적인 개입을 선호하는 ‘주주관여(Shareholder Engagement)’와는 구분된다.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주관여는 기존 경영진과 우호적인 관계 형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의미하는 행동주의와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행동주의의 첫 사례로는 1926년 미국의 가치 투자 대가인 벤자민 그레이엄이 노던 파이프라인(Northern Pipeline)을 향해 잉여 현금을 주주에게 배분하라고 압력을 넣은 사건이 꼽힌다. 이후 자본 시장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행동주의도 진화를 거듭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행동주의의 발전 단계를 크게 3단계로 나눈다. 미국의 대공황 이전을 시작으로 이후 ‘기업 사냥꾼’이 활동한 1세대, 회사의 경영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2세대, 그리고 최근 연기금, 사모펀드 등의 영향력이 확대된 3세대로 구분된다.

韓, 3세대 행동주의 활발

한진家 공격한 강성부 펀드 주목

이 구분에 비춰, 2000년 이후 우리 자본 시장에서는 3세대로 분류되는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다만,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초반 이미지는 그리 우호적이지 못했다. 당시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개념이 주목받기 전이었던 터라 주주를 비롯한 외부 이해관계자로부터 행동주의 투자 전략의 정당성(Legitimacy)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당시에는 행동주의 펀드의 투자 전략이나 접근법이 세밀하지 못하고 수익 추구에 편중된 측면이 존재했다. 국내에서는 연이은 ‘먹튀’ 논란 등 외국계 자본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도 작용했다.

2003년 ‘SK 소버린 경영권 분쟁’ 사태가 대표적이다. 2003년 모나코에 기반을 둔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주식을 대량 매입하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사회 사퇴를 요구하는 일이 빚어졌다. 피 말리는 주총 표 대결 등 우여곡절 끝에 소버린은 우리 시장을 떠났지만 2년 4개월여 만에 투자금의 4배가량 되는 수익을 거뒀다. 이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타깃 삼은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이목을 끌었지만 시장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코스피 시총 1위 기업이라는 상징성이 컸던 데다 삼성전자 주주와 엘리엇 간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지도 않았던 탓이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행동주의 투자 전략이 재조명받기 시작한 계기는 토종 펀드였던 ‘강성부 펀드(KCGI)’의 등장이다. 당시 강성부 펀드는 잇단 돌출 행동으로 여론과 주주로부터 신망을 잃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를 견제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이해관계자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한 뒤 이를 발판 삼아 비핵심 유형자산 매각 등 주주 친화적 정책 확대를 요구해 주목받았다. 다만, 결과적으로 강성부 펀드 역시 유의미한 수준의 기업가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이사회 장악

단기 주가엔 호재

이후 우리 자본 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다시 주목받게 된 때는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주식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맞물린 최근 1~2년 사이다. 대한항공을 상대로 맹공을 퍼붓던 강성부 펀드가 다소 초라하게 퇴장한 뒤 한동안 소강 국면을 보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개인 투자자가 폭증하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행보에 다시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 의사 결정이 대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이뤄지지 않게 적극 견제에 나섰고 이런 행동이 개인 투자자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송은해 한국ESG기준원 선임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전략은 지분을 대규모로 확보해 경영권을 위협하던 과거의 공격적인 방식에서 주주 권리 행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분으로 기업과의 대화 등 건설적 방법을 통해 기업가치 제고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실제 국내 자본 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월 1일까지 신한, 하나 등 주요 금융지주 주가가 10~20%가량 올랐다. 경기 침체 우려로 주가가 신통찮던 금융지주 주가가 돌변한 것은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 사모운용사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 1월 초 KB금융 등 7곳의 금융지주에 “주주 환원을 당기순이익의 50% 이상으로 확대하라”며 공개 압박했다. 실제 신한금융지주가 주주 환원 확대 방침을 밝히자 다른 금융지주 투자자의 기대감도 커졌다.

이외에도 행동주의 펀드의 공개 요구가 기업 의사 결정에 반영된 사례가 등장했다. 지난 연말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이 계열사인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해 무산시켰다. 흥국생명은 태광그룹 계열사지만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주식이 한 주도 없다. 이런 이유로, 흥국생명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상증자에 태광산업이 참여하는 것은 주주 이익에 반하는 배임이라는 논리를 폈고 결국 태광산업은 유증 참여를 철회했다.

조직 분할이나 이사회 구성 등 기업의 실질적인 경영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나온다. 최근 지배구조 개선을 선언한 SM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사외이사 비율을 현행 25%에서 과반수인 57%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얼라인파트너스가 SM에 공개 요구한 사항 중 일부였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에도 행동주의 펀드로 알려진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가 KT&G에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를 분리 상장해 인삼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라”는 주주 제안을 했다.

단기실적주의 우려

장기 부정적 영향은 근거 없어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의 명암에 관해서는 여러 분석이 존재한다.

행동주의 펀드를 바라보는 세간의 핵심적인 우려는 단기실적주의(Short-Termism)다. 주주 이해관계를 우선 고려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장기 성장을 위해 미래 성장 기반이 되는 재무적 지출(Capex) 축소, 폭탄 배당을 통한 순현금 유출 등의 우려가 그렇다. 실제 단기적으로는 이런 가능성이 확대된다는 것이 학계 분석이다. 여러 선행 연구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 이후 해당 기업에서는 단기적 주가 상승, 배당 성향 확대 등의 긍정적인 측면이 목격됐다. 반면, 세간의 우려대로 타깃 기업의 재무적 지출 감축, 자산 매각, 유휴 인력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의 가능성을 확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장기적으로 경영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실증적인 근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연구에서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주주 활동으로 매각된 공장 등의 생산성이 매각 후 유의미하게 증가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또, 권 연구위원은 “특히 행동주의 펀드 활동 3년 뒤에도 타깃 기업의 생산성이 증가하는 등 장기적으로 경영 성과 악화를 유발한다는 실증적인 근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5% 안팎 지분으로 여론몰이를 하며 기업 경영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장기 계획 수립을 위한 경영진의 주의력(Attention)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기업의 경우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를 장악하면 그 기업은 험로에 부닥칠 수 있다”며 “행동주의 펀드와 기업 경영진, 잠재적 매수자 간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이 힘들고 잠재 매수자 입장에서는 사모펀드의 개입으로 온전한 경영권 확보가 힘들다고 보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깎으려 하거나 인수합병 자체를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부정적인 측면을 조정할 수 있는 완충 장치가 시장에서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안수현 한국외대 교수는 “행동주의 전략은 높은 수준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끌어내 다른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 강화에도 기여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행동주의 펀드가 기관 투자자로서 주주 활동을 책임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안건 분석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내부에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의결권 가이드라인의 최신화와 공시 또한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권흥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행동주의 펀드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경영, 재무 전략에 대해 폭넓은 제안을 해 감시자·장기 투자자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며 “이들 펀드의 주주 제안에 대해 해당 기업과 다른 주주들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현재 주총 6주 전으로 돼 있는 주주 제안 제출 기한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5호 (2023.02.08~2023.02.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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