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기다려 톱 됐다" 백인남성 세계 깬 흑인女 기상캐스터
기상 캐스터라고 하면 떠오르는 특정 이미지가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있다. 단 그 이미지가 다를 뿐. 20~30대 여성이 주로 떠오르며 준 연예인과 같은 이미지를 구가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기상학자, 적어도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오는 경우가 다수다. 성 평등이 심각한 미완의 과제였던 시절엔 남성, 그중에서도 백인이 압도적 다수로 기상캐스터 역할을 수행한 이유다.
시대는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6일(현지시간) "유색 인종 여성들이 기상 캐스터계의 유리 천장을 깨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실었다. WP가 시대의 변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내세운 이는 ABC방송 계열사의 베로니카 존슨 캐스터.
그는 ABC 방송의 워싱턴DC 지역 계열사인 WJLA의 수석 기상 캐스터로 최근 승진했다. 방송계의 아카데미 상으로 통하는 에미(Emmy) 상도 받은 스타 캐스터이지만 '수석' 타이틀을 명함에 인쇄하는 데는 입사 후 꼬박 30년이 걸렸다. 그의 남성 동료들은 10년 만에 '수석' 타이틀을 달았다.
WP는 "미국 기상학회(의 2020년) 집계에 따르면 회원 중 흑인 여성 비율은 1%에 불과하다"며 "각 방송국에서 수석 기상캐스터들은 기상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총 책임을 지는데, 동일하게 근로해왔어도 '수석' 자리를 얻는 유색 인종 여성은 턱없이 적다"고 지적했다.
존슨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그는 WP에 "어렸을 때부터 날씨 생각하는 게 좋았기에 기상학자라는 길을 주저 없이 선택했다"며 "하지만 수석 기상캐스터가 되는 게 30년 정도가 걸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모든 일엔 '최초'가 있는 법이고, 길을 개척하는 입장이 되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수석이 된 것은 그가 학위를 더 취득했다거나, 논문을 더 많이 게재해서가 아니다. 존슨은 WP에 "나의 기상학 지식의 수준은 일정하다"며 "바뀐 것은 내가 아니라, 유색 인종 여성 전문가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ABC는 그의 승진을 두고 홈페이지에 "존슨은 뛰어난 전문성을 갖춘 훌륭한 기상 캐스터"라며 "그를 우리 방송국의 첫 수석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캐스터로 임명하게 되어 기쁘다"는 입장을 냈다.
존슨의 꿈은 끝이 아니다. 그는 WP에 "수석 캐스터라는 꿈을 이루긴 했지만 갈 길은 멀다"며 "더 많은 여성 후배들을 이끌어줄 책임과 의무가 내게 있다"고 다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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