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GDP 2% 날려버렸다…'살인적 인플레' 튀르키예 비명

이승호 2023. 2. 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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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지진 피해가 발생한 튀르키예 디바르바키르 지역에서 구조대가 생존자 구조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규모 7.8의 강진과 이어진 여진이 튀르키예를 강타한 가운데, 이번 지진이 튀르키예 경제에도 매우 큰 고통을 안겨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자국 화폐 리라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초고물가) 위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 지진으로 인한 막심한 피해까지 덮쳐서다.

강진 쇼크에 튀르키예 금융시장이 먼저 출렁였다. 이날 오전 리라화 가치는 사상 최저인 달러당 18.85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스탄불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100대 종목을 종합한 보르사 이스탄불(BIST)100 지수는 전날보다 1.35% 하락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튀르키예의 손실 규모가 튀르키예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USGS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액이 10억달러(약 1조2500억원)에서 100억달러(12조5000억원)에 달할 확률이 34%로 가장 높다고 예측했다. 이는 튀르키예 국내총생산(GDP)의 1~2%에 달하는 규모다. 100억~1000억달러일 확률은 30%, 1000억달러를 초과할 가능성은 14%로 전망했다.

USGS는 “이번 경제적 피해는 국제적 지원이 필요한 수준”이라며 ‘적색 경보(Red alert)’를 발령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지진은 터키 국민소득의 약 10분의 1이 발생하는 지역을 강타했다”고 전했다.


1999년에도 지진으로 성장률 2.5% 하락


지난 6일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오스마니예에서 한 남성이 울먹이며 피해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튀르키예는 지진으로 인한 경제 손실 경험이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지난 1999년 8월 규모 7.4의 강진이 덮쳤을 당시 튀르키예의 경제 성장률은 2.5% 가량 하락했다. 지난해 튀르키예의 경제성장률은 5%(추정치)로 전년도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지진 발생 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 정도였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코치대학의 셀바 데미랄프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지진에 따른 생산 및 공급망 차질로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적 악영향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폴 마틴 마이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 교수도 채널뉴스아시아(CNA)에 “지진이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인구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할 것”이라며 “반경 300㎞ 도시와 마을이 파괴되고 가스, 전기, 수도관과 같은 생활 기반 시설이 모두 멈출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실제로 이번 지진으로 카라만마라슈, 말라티아, 아드야만, 아다나 등지의 공항이 파손됐으며 고속도로도 일부 부서졌다. 하타이에서는 병원과 항구 등이 일부 붕괴하는 등 기간시설 피해가 컸다. 이라크와 아제르바이잔산 원유가 해외로 나가는 관문인 튀르키예 남부 제이한항의 수출 터미널 가동도 일시 중단됐다.


하이퍼인플레·리라화 폭락 와중에 지진 직격탄


지진 이전에도 튀르키예는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물가 급등에도 저금리를 고수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청개구리 통화 정책’ 때문이다.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며 금리를 낮춰 경제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고집에 튀르키예 국민들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리라화 가치 폭락의 악순환을 겪어왔다.
지난 1월 튀르키예 시스탄불의 한 환전소의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해 전 세계 국가들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중에도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하 행보를 이어갔다. 이에 튀르키예의 지난해 10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85.51%로 1997년 이후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021년 초 달러당 7리라 수준이던 리라화 가치는 지난해 말엔 18리라대까지 급락했다.


“에르도안, 지진으로 5월 대선 연기할수도”


레베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1일 수도 앙카라에서 집권 정의개발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지진은 오는 5월 대선과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높은 인플레이션 탓에 야당 후보보다 지지율이 낮은 상황이다. 이에 재집권을 위해 예정일보다 한달 앞당겨 선거를 치르는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이번 지진으로 경제난이 가중되면 반(反)에르도안 여론이 더욱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엠레 페케르 유라시아그룹 유럽 국장은 블룸버그에 “만일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크다고 판단되면 선거가 연기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여론이 악화하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진 수습 등을 이유로 선거를 연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튀르키예 정부가 경제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강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페케르 국장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새로운 신용완화 조치뿐 아니라 대규모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 등의 구호 조치를 벌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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