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된 뒤 문학을 돌아보니 인생이 있었다
[김성호 기자]
김현 이후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는 한국의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지난해 말 낸 비평집이다. 영화엔 이동진이 있다면 문학엔 신형철이 있다 할 만큼, 팍팍한 한국 평론계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진 걸출한 평론가가 신형철이다. 대중, 그것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그를 아느냐 해서 안다고 할 만큼 대중적인 것 아니지만 적어도 서점 문학코너에서의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유일무이한 문학평론가란 점에서 그의 신간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적어도 그것이 한국 문학평론의 방향성 가운데 하나를 가늠하는 일이기도 하므로.
난다가 펴낸 책엔 <인생의 역사>란 제목이 붙었다. 신형철은 "나는 인생의 육성이란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고 적어, 이 책이 곧 시에 대한 것임을 우회적으로 이른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다섯 개의 부와 한 개의 부록으로 이뤄졌다. 각 부와 부록이 각각 다섯 장으로 나뉘어 있고, 장마다 또 최소 한두 개의 시편이 포함되어 수십 편의 시를 그의 해설과 함께 읽을 수 있다.
▲ 인생의 역사 책 표지 |
ⓒ 난다 |
<인생의 역사>가 신형철이 이전에 펴낸 다른 평론집과 차별화되는 점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그가 이 책의 서두에 밝혔듯, 사십대 중반에 이르러 아빠가 되었다는 것, 또 아이를 갖고 나서야 알게 된 감정들을 여럿 마주했다는 점에 있다. 이 사실이 평론가로서 신형철을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만들었으니 그의 발전이며 후퇴를 읽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을 집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라 하겠다.
나는 이 책을 문학을 애정하는 이들 십 수 명과 함께 읽었다. 그들 가운데는 신형철을 각별히 아끼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몇은 그의 감상적인 면모를 조금은 부담스러워하였고 그가 충분히 날카롭지 못함을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신형철의 문장이 따뜻하며 섬세하다는 것과 이번 책이 그와 같은 특징을 보다 분명히 했다는 걸 의심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그렇게 느꼈다.
편집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할지, 이번 책은 첫 글부터 마지막 글까지의 밀도가 저기 태백으로부터 인천까지 고도를 따라 그은 선처럼 갈수록 낮아지는 인상이 들었다. 첫 글의 만족도가 가장 컸고, 뒤로 갈수록 대체로 옅어지는 인상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 역시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공감한 것으로 조금은 더 공들인 글이 많았다면 처음과 같이 만족스런 인상을 유지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개중에선 오래 생각하고 다시 펼치게 하는 대목이 없지 않았으므로 만족스런 독서였다 해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갈수록 즐기는 이 줄어가는 시에 대하여, 신형철은 지극히 이를 애정하는 마음으로 한 편 한 편의 의미며 감상을 풀어주니 시를 즐기기 익숙하지 않은 이라도 충분히 그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힘을 의심하고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인은 브레히트와 그 연인 루트 베를라우의 관계를 설명하며 이 시가 쓰인 배경과 시에 담긴 의미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그의 설명을 들은 뒤 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게 된다. 또한 사랑과 필요, 또 연민과 존경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간다.
시인과 평론가와 독자들이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하여,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 다르게 느끼는 수많은 언어들에 대하여 우리는 각자의 생각과 예술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어느 생각이, 삶이, 세계가 조금은 움직이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이 작은 평론집으로부터 예술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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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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