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대학병원 분원…지역 병원, ‘간호사 뺏길까’ 시름

박선혜 2023. 2. 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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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학병원 8곳 분원 설립 추진
수도권 외곽지역, “지금도 간호사 구하기 어려워 진땀”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인수인계 중인 간호사들.   사진=박선혜 기자

남양주·과천·평택 등 경기도 지역에 대학병원 분원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에 자리했던 병원들은 가뜩이나 부족한 간호사 인원이 빠져나갈까 걱정이 앞선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학병원을 포함한 8곳이 수도권에서 분원 설립을 추진한다.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가천대길병원, 고려대병원, 인하대병원, 아주대병원 등이다

서울대병원은 경기도 시흥에 2027년 개원을 목표로, 서울아산병원은 인천 청라국제도시에서, 세브란스병원은 송도 지역에 각각 800병상을 짓고자 한다. 

고려대학교의료원은 경기도 과천시와 남양주에 2028년 개원을 목표로 ‘스마트병원’을 구상 중이며, 가천대 길병원은 위례신도시에 1000병상, 인하대병원은 김포시에 700병상, 아주대병원은 평택과 파주에 500병상 이상 규모의 병원을 건립하고자 한다. 

반면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자리했던 병원들은 이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명성이 높은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급 규모의 병원이 자리할 경우, 환자 경쟁이 치열해질 뿐 아니라 의료진 인력도 다수 빠져나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간호사 경우 다른 인력보다 인력 충원 규모가 매우 크다. 일례로 고려대학교병원의 경우 1명의 간호사 당 1명의 환자를 돌본다고 예상했을 때 500병상이면 적어도 500명의 간호사가 필요하며 외래, 수술실, 신장실 등을 포함해 최대 몇 백 명의 추가적인 인원이 필요하다. 

또한 간호사 직종은 타 직군에 비해 이직률이 높다. 지난 2019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이직률은 15.2%로 다른 산업군 이직률(4.9%) 대비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열악한 근무조건과 노동강도(48.9%)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보다 근무 조건이나 급여가 좋은 대학병원의 분원이 설립되면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경기서남지역 대학병원 관계자는 “최근 3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 분원이 설립된다고 들었다. 워낙 오래 이 지역에서 중심병원으로 있던 터라 내원객이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되진 않지만 문제는 간호사다. 지금도 적정 인원에 겨우 맞는 수준인데 타 분원으로 이동하게 될 경우 병원 운영자체가 어려워진다”며 “완공 이전에 인력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릴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지역은 간호사 인력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인천만 하더라도 국제성모병원, 인천성모병원, 가천대 길병원, 인천백병원, 인하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이 다수 위치해 있어 매년 간호사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천 지역 대학병원 관계자는 “지금도 간호사 인력을 충원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학병원 분원이 또 들어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빅5 병원 계열이라 벌써부터 관심을 보이는 간호사들도 꽤 있는 상황”이라며 “병원 간 매출 경쟁도 경쟁이지만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이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간호 인력을 뺏길까 걱정이 크다. 수도권에만 분원들이 자꾸 몰리는 것을 막을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만 수도권 대학병원 쏠림? 간호사도 ‘대학병원’ 찾는다

이는 해당 지역의 상급종합병원, 대학병원만의 경쟁이 아니다. 그보다 간호사 수가 더 부족한 중소병원도 피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수도권 대학병원 쏠림 확대까지도 제기된다. 지방 또는 중소병원보다는 수도권 분원이 급여가 높고 인원수가 많아 보다 나은 근무표를 기대할 수 있어 이직 경향이 더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면허가 등록돼 있는 간호사 39만8673명의 전년 대비 활동 유지율을 조사한 결과, 상급종합병원은 89.7%, 종합병원은 84.0%로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3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은 50% 미만이었다. 대형병원 대비 중소병원 간호사들의 이직, 전직, 사직이 더 잦은 경향을 보였다.

과천 지역 중소병원에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서울 중심에서 벗어날수록, 병원 규모가 작을수록 연봉 차이가 많이 나고, 직원 수도 부족해 근무가 더 타이트하게 돌아간다. 대학병원보다 작다고 중증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더 힘들다”며 “주변에 대학병원이 새로 지어진다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규모로 인원을 채용하기 때문에 이름 있는(빅5) 병원이라도 경쟁률을 보다 낮춰 들어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중소병원을 대표하는 대한병원장협의회 관계자는 “정부와 복지부는 그간 지역간 의료 격차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해왔으나 대학병원들의 분원 경쟁은 의료환경이 가장 양호한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인력 집약적인 의료업의 특성상 수도권 대학병원의 경쟁은 도서지역의 의료 인력을 흡수해 열악한 도서 지역 의료 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학병원 분원 건립은 많은 선의로 포장돼 있지만, 오히려 의료의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을 가속화 시킨다는 불편한 진실이 분원 설립의 정당성을 무색하게 한다”며 “대학병원의 분원 설립은 즉각 중단돼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통해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수립하고 지역 간 균형적 병상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중앙병상관리위원회를 중심으로 시·도 병상수급 관리계획을 조정하고 평가 및 계획 집행 실적을 모니터링할 방침이다. 또한 간호인력 충원을 위해 간호학과 학사 특별편입 2년과정을 신설을 추진하고자 한다.

다만 다수의 대학병원에서 이미 분원 설립 계획이 완료됐고 착공을 들어간 곳이 있는 만큼 빠르게 의료 인력난, 수도권 쏠림현상을 개선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대한병원장협의회, 대한개원의협의회 등은 분원 계획 철회, 수도권 병상 총량제 도입 등의 요구안을 정부부처에 제시한 상태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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