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노예계약, OUT①] 연예인 옥죄는 ‘불공정 계약’의 그늘

박정선 2023. 2. 7.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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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이달소 츄 등 소속사와 정산 등 불공정 계약 폭로
연예인과 소속사 관계서 소속사 절대 우위
기획사 측 "불공정·노예계약 아냐...위험부담에 따른 대비책"

2009년 터진 ‘장자연 사건’은 부적절한 술자리·성상납 강요 등은 물론 폭언·폭행 등 연예계의 각종 비리를 드러내는 대형사건으로 번졌다. 특히 이 비리들의 발단이 되는 소속사와 연예인의 ‘불공정 계약’(노예계약)과 관련한 지적이 잇따랐다. 이후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바뀐 것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데일리안DB

13년이 지난 현재도 연예계에선 쉴 새 없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만 해도 가수 겸 배우 이승기의 노예계약 이슈로 연예계 안팎이 시끄러웠고, 동시에 걸그룹 이달의 소녀 멤버 츄가 전 소속사에서 나오는 과정에서 불공정 계약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승기는 지난해 11월 18년간 소속사로부터 음원 정산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속사였던 후크 엔터테인먼트 권진영 대표와 전·현직 이사를 업무상 횡령 및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법적 분쟁에 돌입했다. 이후 후크는 이승기에게 미정산금과 지연 이자 등 이자 50여억원을 지급했으나, 이승기는 미지급 음원료 정산금 및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달의 소녀 츄도 지난 2017년 데뷔 당시 수익금을 회사와 가수가 7:3으로 나누고, 비용 처리는 5:5로 나누는 계약을 문제 삼고 계약 해지 소송을 내 일부 승소했다. 그런데 이후 소속사는 츄가 갑질과 폭언을 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소속사와 팀에서 퇴출시키면서 비난을 받았다. 츄의 퇴출에 보복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면서다.


두 사람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건,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즉 힘없이 불공정 계약을 감내해야 하는 아티스트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불공정 계약 관행으로 인해 소속사와 아티스트가 갈등을 엮어온 역사는 꽤 길다.


ⓒ픽사베이이

연예계에서 ‘노예계약’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했던 건 2009년 당시 동방신기의 멤버였던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가 “SM엔터테인먼트의 전속계약은 노예계약”이라며 계약 취소 소송을 냈던 것이 발단이 됐다. 이들은 13년의 장기계약, 탈퇴 시 연간 수입의 3배 배상 등 SM의 불공정 계약으로 피해를 봤다며 전속 계약 무효를 요구했다. 이들과 SM엔터테인먼트는 무려 3년4개월간 지속된 법정 분쟁을 임의조정으로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JYJ의 방송사 음악프로그램 출연은 계속 불가능했고, 방송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 연예인의 프로그램 출연을 막는 행위를 금지하는 방송법 개정안(일명 ‘JYJ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표준전속계약서가 연예계 전반으로 보급되기도 했지만 불공정 계약 문제는 잊을 만하면 또 다른 갈등이 불거져 나왔던 것이 연예계의 현실이다.


연예계, 그 안에서도 가요계에서 유독 ‘노예계약’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예인과 소속사의 관계에서 소속사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수익이 없는 데뷔 전부터 데뷔 이후로도 어느 정도 인기를 끌기 전까지 소속사가 이들의 미래에 ‘투자’를 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특히 케이팝 아이돌의 경우 늦어도 20세 전후면 데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린 시절부터 수년에 걸친 연습생 기간을 거치다 보니 본인은 물론 부모 입장에서도 당장 데뷔가 급해 소속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다.


ⓒtvN

최근 그룹 뉴진스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데뷔 2개월 만에 첫 정산을 받았다고 밝혔다. 과거 아이돌 그룹들의 정산 시기를 고려할 때 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다. 빠르겐 1년 내외, 길게는 2~3년으로 알려진 첫 정산 시기도 수많은 걸그룹들 사이에서는 꽤나 빠른 축에 속한다.


한 아이돌 그룹 매니저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시작부터 불공정한 계약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도 불공정하다는 것을 알지만 연예계 진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런데 어느 정도 수익을 낸 이후에도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게 되고, 이전보다 나은 권리를 주장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월급제 정산 시스템을 선택하는 소속사도 있다. 초기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기 전 수익의 일부를 멤버들에게 정산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애초에 계약 자체가 불공정하다면, 최종적인 정산금액엔 차이가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곤했다.


소속사는 ‘불공정 계약’ ‘노예계약’이 아닌, 위험부담에 따른 대비책이라는 입장이다. 수많은 신인들에게 돈과 시간, 노력을 투자하는데 그 중에서 일부만 돈을 벌 수 있는 스타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소속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연습생(신인)들에게 분산 투자를 하는 셈이다. 그중에서 일부에서 투자에 따른 이익을 얻는 구조”라며 “그럼에도 스타가 되면 많은 이들이 계약파기, 불공정 계약을 내세운다. 소속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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