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건보 훔치는 진짜 도둑

이영미 2023. 2. 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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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영상센터장


도둑을 찾으면 해법이 간단해진다. 적이 있으면 목표가 분명해지듯. 적은 무찌르고 도둑은 잡으면 되니까. 성공하려면 큰 도둑만 피하면 된다. 도둑은 되도록 작고 만만한 게 좋다. 새 정부 출범 후 감사원 감사와 보건복지부 공청회를 거쳐 윤석열표 건강보험 개혁안이 구체화됐다. 그들의 구상은 ‘의료남용과 무임승차’를 비난한 대통령 발언에 집약돼 있다. ①문재인케어 탓에 초음파·자기공명영상(MRI) 검사가 급증하는 ‘의료남용’이 생겼고 ②외국인의 고액 진료로 ‘무임승차’가 만연해졌다는 거다.

전문가 반응은 회의적이다. 문재인케어와 외국인이 도둑인지도 의문이지만 둘을 잡아도 아낄 수 있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문재인케어의 보험 확대로 진료비가 증가한 건 맞다. 하지만 남용 규모는 2000억원 수준(김윤 서울의대 교수). 한 해 100조원 건보 재정을 고려하면 큰돈이 아니다. 서비스를 늘리면 비용은 증가한다. 초기 남용도 예상됐던 일이다. 이 정도 누수는 감시하면 되고, 감시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부가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을 거꾸로 돌리려면 비용이 늘었다고 말하는 거로는 부족하다. 확대된 의료 서비스가 어떤 효과를 내지 못했는지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건보로 정치한다는 오해를 피한다.

외국인은 만만해서 매번 소환된다. 윤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외국인 가입자를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무임승차자’로 낙인찍어 비난했다. 이 주장은 팩트 오류가 명백해서 당시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현실은 정반대다. 외국인 가입자가 건보에 안기는 흑자는 2021년 기준 5000억원. 4년 누적 흑자는 1조6000억원이 넘는다. 역차별도 당한다. 피부양자 기준은 내국인보다 훨씬 엄격하고, 일부는 소득보다 높은 평균 보험료를 부담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극소수 자격 도용과 무임승차를 강조하는 건 의도가 의심스러운 행동이다.

진짜 도둑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이를테면 과잉 진료를 유발하는 실손보험 같은 거다. 연구 결과를 보면 실손 가입 후 의료 이용은 급증한다. 실손 가입자가 병원에 자주 가면 청구서는 건보에도 쌓인다. 비싸지는 게 실손보험료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낭비되는 건보 재정이 한 해 6조원. 비급여 풍선효과도 있다. 실손 탓에 비급여 시장은 갈수록 통제 불능이다. 하지만 4000만명에 육박하는 실손 시장을 건드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실손 얘기만 나오면 다들 작아진다. 모니터링 강화 같은 게 대책이라고 나오는 이유다.

폭탄은 요양병원에도 숨어 있다. 국내 요양병원은 1000명당 병상 5.3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9배나 된다. 넘쳐나는 요양병상에는 의료보다 간병이 절실한 노인들이 장기입원해 있다. 일부는 요양시설, 일부는 집에서 재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자들이다. 여기서 새는 재정은 천문학적 규모로 추정된다.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 게 벌써 몇 년 전. 하지만 논의는 시작될 기미도 없다.

이 얘기도 빠뜨릴 수 없다. 건보 재정을 갉아먹는 또 다른 적은 사무장병원, 그중 심하기로는 사무장 요양병원이 있다. 지난 13년간 사무장병원의 불법 청구액(3조1700억원) 중 절반 이상(1조7300억원)이 사무장 요양병원에서 적발됐다. 시설 및 인력 기준이 느슨하고, 정액수가로 수입이 고정적인 데다, 돌볼 사람이 없는 경우 보호자 관심도 낮아 돈을 빼돌리기 쉽기 때문이다. 대통령 장모 최모씨가 투자금을 건넸다가 회수했다는 그 사건이 벌어진 곳이 사무장 요양병원.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로 확정된 그 사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진짜 도둑은 이렇게나 많다. 잡을 생각만 있다면 말이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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