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평화롭게 걷고 산처럼 앉아라
정월 초하룻날부터 네 명의 제자들, 선원 대중들과 올바른 마음수행을 위해 숨 쉬고, 걷고, 앉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며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몸과 마음으로 들숨과 날숨을 감지해야 합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는 오로지 호흡에 집중합니다. 마음을 다해 호흡할 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통찰력이 생겨납니다.”
“걸을 때는 발바닥에 의식을 집중하세요. 마음이 머리에만 머물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지면이 닿는 발바닥까지 끌어내리세요. 숨을 들이쉬면서 두세 걸음, 숨을 내쉬면서 서너 걸음을 내디뎌 보세요. 발걸음마다 ‘바로 지금 여기가 도착한 지점이고, 목적지이며, 지금 여기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시간이며 장소이다’라고 되뇌 보세요. 평화의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
「 같은 길 가는 절집 스승과 제자
숨 쉬고 걷는 것도 훌륭한 수행
몸과 맘 하나 될 때 통찰력 생겨
」
설 즈음에 공부하러 떠났던 제자들이 돌아왔다.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한 상좌 둘, 송광사를 졸업한 상좌 하나, 동국대 재학 중인 상좌 하나 등 모두 넷이다. 모처럼 모였으니 일주일 동안 거룩한 수행을 하자는 제안에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하루 네 번의 참선과 걷기 수행이다.
밤에는 틱낫한의 『행복한 교사가 세상을 바꾼다』와 반야심경을 주제로 대화하듯 공부했다. 처음에는 스님들만 시작하였는데, 마지막 날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함께했다. 새해 벽두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준 시간이었다.
절집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법(진리)으로 맺은 인연이다. 최초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석가모니와 다섯 제자에서 시작되었다. 대각을 이룬 석가모니는 함께 고행했던 다섯 도반을 찾아 600리 길을 11일 동안 걸어갔다. 나무 아래에 둥글게 앉아 깨달은 내용을 설명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한 제자는 첫 법문을 듣자마자 깨달았고, 두 제자는 3일 만에, 나머지 둘은 21일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제자를 가르치는 친절한 방법이 선문(禪門)에 와서는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고스란히 계승되었는데, 다름 아닌 천칠백 공안(公案)이다.
어떤 스님이 지문 스님에게 물었다.
“연꽃이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연꽃이니라.”
“물 위에 나온 뒤에는 어떠합니까?”
“연잎마저 나왔군!”(『벽암록』 21칙)
30년 전, 백양사의 방장 서옹 스님은 선사들이 제자를 가르치는 천칠백 공안 중에 100가지 이야기를 주제로 엮은 『벽암록』을 팔십 노구에도 10년 동안 한결같이 5일에 한 번씩 강설하셨다. 한 명씩 방장실로 불러 점검하셨다. “공부한 것이 있으면 내어보아라!” “막힌 것 있으면 물어라!” 지금도 그 당당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고 서슬 퍼런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노사의 할(喝)은 제자를 깨달음으로 이끌려는 대자비심 그 자체였다. 그때를 생각하며 나 자신에게 “제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일생을 마음공부하기 위해서 삭발하고, 먹물 옷을 입고, 오로지 수행의 길을 걷기에는 오늘날의 첨단문명이 너무나 화려하고 유혹적이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원초적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수행의 길을 선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깨달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단단한 가르침을 전해야 하고, 제자는 스승의 깨달음을 온전히 빼앗아 가겠다는 결기가 필요하다.
“앉을 땐 말하기를 멈추고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우리를 지금 이 순간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시시각각 일어나는 온갖 생각입니다. 달아나는 마음이 육체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앉는 것입니다. 태풍이 닥쳤을 때의 한라산처럼 묵직하게 앉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생각, 감정, 감각, 주변에서 나는 소리 등 모든 요소를 평등하게 잠재우는 것입니다. 그러고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집중해보세요.”
숨 쉬고, 걷고, 앉고, 먹고, 말하는 일상에서 몸과 마음이 온전히 깨어있을 때, 기적이 일어나고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계묘년 새해, 지은 복이 많다면 누구나 자신을 깨달음으로 이끌어줄 참스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산다. 스승의 덕목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은, 수행에 전념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없다’는 자각은 수행자에게 지남(指南)과 같다. 원효 스님이 ‘발심수행장’에서 “급하지 아니한가(莫速急乎)?”를 외친 이유이기도 하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섹스 동영상 유출 딛고 히잡 벗었다…망명 떠난 여배우의 반란 | 중앙일보
- 강민경, 부친·오빠 사기 혐의 피소에…"왕래 끊은 사이" | 중앙일보
- 여고생도 "그런 짓 하는 곳"…모텔 된 룸카페, 복지부 뒷짐 왜 | 중앙일보
- "의사 일년 남짓 한 애가…" 조민에 씁쓸하단 의사들, 왜 | 중앙일보
- "이수만 꼭 필요" 김민종에 SM 직원 "정신 차려야"…내분 터졌다 | 중앙일보
- 규모 7.8 튀르키예 지진… 히로시마 원폭 32개보다 더 강력했다 | 중앙일보
- "방북은 이재명 위한 것"…검찰, 이재명에 'MB 유죄' 그 카드 쓰나 | 중앙일보
- 145㎝에 30㎏ '뼈말라'인데…"장원영 될래" 죽음의 다이어트 | 중앙일보
- "러 침공 안하면 어쩌지" 1년뒤…우크라 장수 된 37세 전설男 [후후월드] | 중앙일보
- "멜라니아, 백악관 상황실서 IS수괴 제거 '직관'…군견 홍보도 제안" | 중앙일보